두 번째 승진 누락

by honest

첫 회사를 다니던 당시의 자신만만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만나던 여자는 같은 회사를 다니던 선배였는데, 나는 자신감에 차서 '내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면 대표이사는 몰라도 부사장 정도까지는 하지 않을까?' 하고 말하고는 했었다. 대기업이긴 했지만 당시 그렇게까지 주목받던 회사는 아니었기에 도리어 '네가 그렇게 자신만만할 정도로 좋은 회사는 아니'라는 면박을 받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어느 회사에 들어가든 그 정도까지는 오를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마침 군대에서 100명이나 되는 조직을 1년 가까이 운영해 본 경험도 있었고 말이다.




대학원 생활에 실패하고 나서 다시 들어간 회사는 나를 포함해서 직원이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였다. 대표이사는 다른 일을 하면서 겸임을 하는 곳이었는데, 6명밖에 안 되는 작은 회사다 보니 만약 내가 그 회사 직원들과 마음이 정말 잘 맞았다면 다니기에 무척 좋은 곳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특히 대표이사 바로 아래에서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분과 그다음 서열에 있었던 분의 갈등이 무척 첨예했는데 회사의 막내로서 그럴 때마다 내게 동의인 듯 동의 아닌 듯 말을 거는 것이 영 불편했고, 6명의 직원의 세대를 분류하면 한 세대 위에 총괄하는 분이 계시고, 그분보다 10여 년 아래로 4명의 직원이 모여 있고, 또 그 아래로 10살이 어린 내가 있는 다이아몬드형 구조였던 까닭에 동년배가 없는 서운함을 많이 느꼈다. 결국 그 회사를 나오면서 총괄하는 분에게 회사에 무리가 가더라도 비슷한 나이의 직원을 무조건 2명 뽑으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난다.(그래도 당시 업무를 총괄하던 분은 나를 뽑아 주시기도 했고, 내게도 잘해 주셨던 분이라 여전히 뵙고, 연락하며 지낸다. 하여튼 이 오지랖은)


그 뒤에 옮긴 곳이 바로 지금의 회사다. 지금 회사도 직원이 서른 명 남짓한 작은 좋소기업이라(결코 욕이 아닙니다. 좋은 소기업이란 뜻입니다.) 만약 직원이 1천8백 명 가까이 되는 첫 회사에서 지금 이 회사로 옮겼다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갑갑함을 느꼈겠지만, 사람은 상대적인 동물이라 6명 짜리 회사에 다니다가 30명 안팎의 회사로 옮기니 그래도 비교적 다닐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는 모(母)회사 바로 옆에 있는 까닭에 모회사 직원들과도 상당히 많은 교류를 하게 된다. 지금 이 회사로 옮겼을 때의 내 나이가 서른셋. 현실에 안주할 정도의 나이는 아니지만, 10년 전의 서른셋은 지금의 서른셋과는 많이 달랐고, 그래도 이 정도 회사라면 그나마 다닐 만하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무척 마음에 들어하며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나는 이 회사의 최고(高) 학벌자이자 최고 학력자다. 학벌과 학력으로만 능력을 판별할 수 없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인맥자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처음 이 회사로 옮기고 나서 첫 승진까지는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이 회사는 다섯 개의 직급이 있는데, 직급이 명칭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급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상위 3개 직급 50%, 하위 2개 직급 50%의 정원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지만, 중간에 제도가 바뀌어 지금과 같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것은 특성이라기보다는 매우 큰 문제점인데 서른 명 남짓한 회사에서 77년생부터 83년생까지 단 6년 사이에 열 명이 넘는 직원이 무척 조밀하게 모여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식의 인사관리는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회사가 좋소이다 보니, 그렇게 회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는 사람도, 생각이 있는 사람도 없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좋소의 현실이다.(우리 회사는 비교적 고용도 안정적인 편이라서, 사람이 없어서 못 뽑는 회사는 아니다.)


첫 승진은 비교적 빨리 한 편이었다. 첫 승진 이후에 다른 회사의 인수합병과 관련해서 내가 대표에게 '배임입니다'라고 대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대표가 다른 자리에서 'honest 씨는 괜히 일찍 승진시켜 줬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보다 1년 정도 빨리 입사한 동갑내기와 같이 승진했는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생각이 난다. 상위 직급이 50%로 정원 제한이 있어서, 빨리 그 안에 들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선 첫 번째 승진이 남보다 빨랐으니, 다음 승진도 거의 그렇게 이루어질 거라고 보았다. 오래된 회사답게 이 회사는 경쟁체제라기보다는 거의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한다. 지금까지는 단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그렇게 승진했다.(2명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




첫 승진을 했을 당시만 해도 비교적 회사에 만족하며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계획도 있었다. 나는 아직 내 석사논문을 공간(공식적 간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승진하고 나서 1년 뒤에 모회사의 큰 공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면 우리 회사는 자동적으로 업무량이 줄어들게 되는데, 그때 업무시간에 석사논문을 손 보아서 공간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대략 큰 공사가 1~2년 정도는 지속될 계획이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회사에서 부도 위기의 다른 회사를 떠안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쌍지팡이를 짚고 반대하다가 지금의 팀으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좋소기업답게 사람을 쫓아내는 일도 좋소기업다웠다. 대기업에서 대기발령을 내더라도 인사팀에서 사전에 면담을 하거나 귀띰을 해 주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회사 벽에 인사발령 통보가 붙기 10분 전에야 탕비실에서 컵을 씻다가 우연히 인사발령 계획을 전해 들었다. 총무팀장은 원래 그조차도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고 들었는데, 인사발령 통보가 붙기 전에 퇴근할까봐 어쩔 수 없이 그때 말해 주었다. 이 회사가 생긴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방적 인사발령이었다.(이후로도 없었다.)


지금의 팀에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성 직원과 또 네 살 많은 여성 직원이 있었고, 네 살 많은 여성 직원이 구조상 다음 팀장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다행히(?) 나는 한 살 많은 여성 직원보다 한 해 일찍 승진해 있었는데, 어머니뻘인 그때의 팀장 아래에서 반드시 먼저 다음 직급 승진이 꼭 이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여성 직원 사이의 우애가 남달랐고, 네 살 많은 여성 직원은 한 살 어린 내가 직급표 상에서 한 살 많은 여성 직원보다 위에 있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적도 있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이 팀장이 되면 다른 여성 직원을 먼저 챙겨 줄 것이라는 것은 뻔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소의 승진 인사는 대기업처럼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기업은 경기에 따라 인사규모가 달라지기는 하더라도 승진 인사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반해, 좋소는 좋소답게 부정기적으로 대표의 마음에 따라서 어쩔 때는 승진을 시키기도 하고, 어쩔 때는 승진을 시키지 않기도 한다. 결국 나는 승진 1순위자였지만, 어머니뻘 팀장 아래에 있던 4년 동안에는 승진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4년 사이의 초기에 승진 인사가 한 차례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승진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여서 승진이 어려웠고, 이후로 내가 승진 적기에 들어섰을 때는 승진 인사가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다, 좋소에 다니는 내 탓이지.


결국 팀장이 바뀌고 1년 정도 뒤에 이루어진 승진 인사에서 나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승진에 탈락하고 말았다. 그게 벌써 1년 반 전의 일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고, 나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는 일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다. 브런치에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 정확히 기억 나진 않는데, 그렇게 나는 결국 회사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심판까지 가게 되었고, 쉽지 않은 싸움에서 당연히(?) 패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와의 분쟁을 겪으면서 요청한 자료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또 깨달았다. 전임 팀장은 나의 근무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으로 평가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팀장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성 직원의 승진을 먼저 시키기 위해서 내 근무평가에 대해 가차없을 정도로 점수를 낮게 책정했다는 것. 같은 팀에 근무하는 한 살 많은 여성 직원 분은 그나마 이 팀에서 나와 가장 관계가 좋은 분으로 나는 처음부터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예측했고, 그분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서운하거나 한 것도 없다. 그리고 당연히 팀장이 그분을 먼저 승진시키기 위해 애쓸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한 고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나는 우리 회사에서 연공서열 승진에서 빗겨나 있는 단 한 명의 직원보다도 점수가 더 낮았다. 그분은 하루에 30분만 일을 하고, 7시간 30분 동안 유튜브로 세계여행을 하는 직원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도.


겉으로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통해 서류가 오가는 과정에서 팀장과 나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날이 선 주장을 주고받았고, 회사의 왕따는 자처하던 나였지만 업무협조를 위해 나름대로 팀에서는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던 내가 아예 팀원들과도 소통을 차단하게 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다.(나는 이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ㅎㅎ) 팀장은 처음 승진에 누락되었던 내게 '자신이 최선을 다해 애썼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라며, 다음 번엔 꼭 승진할 수 있도록 더 애써 보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을 믿지도 않았지만, 그 말 뒤에 있는 진실을 인식하게 되자,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다'는 확신이 드는 한편으로, 기분이 매우 좋지 않기도 했었다.


그게 벌써 1년 반 전의 일이다. 이후로 나는 회사를 두 달 정도 쉬기도 했고, 또 아내와의 가족문제도 있었다.(회사에서는 아무도 모르지만) 여러 차례의 평지풍파를 겪은 나는 많이 둥글해졌고, 회사 사람들과의 교류는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내가 맡은 업무에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연말에 나는 하루의 연차가 남았던 까닭에, 31일에 하루를 쉬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문제로 얕은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 어차피 연차수당이 몇 푼 되지도 않아서 차라리 쉬는 게 이득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차피 쉬고 부모님 댁에 내려가 보았자 지루하고 빈둥대는 날뿐일 것 같아서, 결국에는 31일에 출근하고 말았다. 30일 저녁에 갑작스레 친구와의 약속이 생겼던 까닭도 있다. 그런데 31일 오후에 생각지도 않았던 승진자 발표가 있었다. 지난 승진 이후 1년 반만이었다. 내심 이번에는 승진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나보다 나중에 입사한 두 명의 직원이 나를 추월해서 먼저 승진한 것이었다. 아마 그 두 직원은 내가 지금 직급으로 승진하고 나서 정규 직원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상위 직급에 있을 때, 그때 입사를 한 사람이 그 사이에 한 번 승진을 하고, 또 다시 승진을 해서 이제는 나를 넘어서기까지 한 셈이다. 충분히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너무 놀라웠고, 또 불쾌했다.


가정문제를 겪고 나서 세상의 많은 일이 다 사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도 승진 누락의 충격에도 비교적 담담히 일상을 보내고 회사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다. 특히 우리 회사가 경쟁이 치열한 민간 대기업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아니 서른 명의 직원이 모두 연공서열 순으로 승진했는데, 특별히 나만 예외로 취급하는 이유가 뭔가. 한 명의 직원은 본인도 승진을 포기했고, 모두가 그 직원이 왜 승진하지 못하는지 알고 있다. 실은 나도 그 직원처럼 되고 싶다. 하루에 30분만 일하고, 자리에서 자면서 7시간 30분을 놀다가 퇴근하는데 무슨 승진까지. 나는 솔직히 그 사람의 일을 맡는다면 15분만 일할 자신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든지 승진에서 제외한다 해도 대찬성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어려운 일을 할 직원과 쉬운 일을 할 직원을 나눠서 일을 시키는 이 회사에서, 나는 어려운 일을 할 직원에 속해 있다. 나는 지난번에 승진에서 탈락한 뒤에 여러 차례 회사에 호소했다. 승진은 시켜 주지 않아도 되니 나도 제발 (암묵적인) 쉬운 일을 할 직원 그룹에 넣어달라고. 그러나 회사는 요지부동이다. 어느 조직을 가든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생산성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러면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은 일을 겪은 뒤의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세상의 많은 일은 필연보다는 우연에 의해 좌우되며,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상식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개개인에 의한 임의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법과 규칙 같은 제도와 시스템을 만든다. 그러나 이런 좋소의 시스템이 그렇게 체계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건,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것 아닌가. 나는 좋소는 작기 때문에 내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실은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악의와 임의가 더 많이 발현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은 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장 승진부터가 그렇다. 대기업은 시스템이 있어 인원엔 다소가 있지만, 매년 예측 가능한 기간에 정기적으로 인사를 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서른 남짓한 직원이 다니는 회사에 우습게도 나와 동갑내기가 나를 포함해 네 명이나 있다. 그중에 한 명은 1년 반 전에 승진을 했고, 작년에 입사해 아직 한 차례도 승진하지 못한 신입 취급을 받는 직원도 있는 반면(경력이 아마 10년이 넘을텐데) 계약직으로 곧 퇴사를 해야 하는 직원도 있다. 재작년에 처음 승진했을 때는 분노만 가득 찼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나는 실제로 그런 나의 반응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세상은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곳인 것을. 그러고 나서 곰곰이 다른 직원들이 서 있는 곳을 떠올려 보니, 그래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떠올리며 나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은 사람이 가장 하지 않아야 할 행동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업무에서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생활의 영역에 있어서는 승진에서 또 탈락한 덕분(?)에 회사에서의 단체생활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외할 수 있는 큰 혜택(?)을 입고 있다. 이게 1년에 몇백만 원에 달하는 복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심 이 상황을 부러워하는 직원들도 상당히 있다는 것은 비밀은 아니다.




다음 승진은 언제 있을지도 모르겠고, 과연 내가 다음에는 승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상위 직급 50%는 거의 다 차서, 앞으로는 퇴직자가 나와야만 승진을 할 수 있는 구조인데, 내년 여름에 퇴직하는 사람 뒤로는 몇 년이 지나야만 퇴직자가 나온다.(결국, 승진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고작 몇백만 원의 돈이나 승진보다 나는 '가오'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승진을 하려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야 할 거라는 걸, 막연히 모르지 않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승진이 보장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 삶이 안타깝다. 보상이 이렇게 이루어지다 보니 나 스스로도 느낀다. 나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에 맞는 보상이 없고,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태업을 하고 더 게으르게 일했을 때 나는 나에게 주어진 보상이 그나마 적절하다는 자기합리화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늘 덕업일치를 이루는 사람들의 삶이 최선이라고 부러워하며 살았다. 나는 이미 덕업일치하는 삶은 어려워진 셈이지만 그래도 내 자아 실현에 큰 부분을 담당하는 직장생활에 좀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 속에서 사는 게 내 삶을 더 아끼는 것 아닐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보상과 상관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삶을 위해서도 더 나은 길임을.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란 사람이 당할 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성인군자는 못 된다. 결국 지금의 환경은 회사도, 나도 서로를 갉아먹는 중이다.


다른 꿈을, 다른 길을, 나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안타깝게도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또 알아야 하겠지. 현재 주어진 상황에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또 나름대로 나만의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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