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바탕의 이미지는 저의 근무환경과는 전혀 무관함을 밝힙니다.)
두 달쯤 전의 일이다. 출근했더니 후텁지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덥다는 8월 초의 어느 비 내리는 하루였다. 천장에 달린 에어컨에서는 분명 바람은 나오고 있었는데 시원하지가 않았다. 아, 이거 분명 에어컨 고장 같은데. 나보다 앞서 출근해 사무실에서 일하던 두 명의 직원은 별말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확인을 해야 했다.
내가 다니는 중소기업의 사무실 건물은 상당히 낡았다. 그래, 창이 이중창이 아닌 건 오피스 건물에 이중창 쓰는 경우가 뭐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긴 한데, 문제는 우리는 새시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그런 옛날 창이다. 완전히 잘 닫히지도 않는다. 다행히(?) 한국이 사계절이 있어 봄과 가을엔 에너지 소모가 덜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냉난방 에너지가 상당한 수준으로 낭비되지 싶다. 이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그렇다 보니 에어컨 배관도 무척 낡았다. 매번 여름과 겨울 직전에 배관에 문제가 없는지 사전에 점검도 하고 그런 뒤에 작동하기는 하지만, 이번처럼 에어컨 고장이 나는 경우를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확인해 본 결과, 에어컨 고장이 맞았다.
안 그래도 회사에 짜증이 많은 사람이다.(불만이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그런데 한여름에 습도가 100%인 날에 에어컨마저 안 된다니 말 다했다. 특히 내 경우엔 여름철에 회사에서 배치해 주는 선풍기마저 거절하고 있었다. 선풍기는 틀면 서류가 날린다. 늦봄이나 초여름,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좀 덥긴 하지만 그래도 더위에 그렇게 민감한 편은 아니라서 잘 버티고 있었는데 아무리 흐린 날이라고 해도 한여름은 좀 심했다. 찜통 같은 더위에는 사무실 구조도 한몫했다. 많은 사무실이 그렇겠지만 내가 일하는 사무실도 맞바람이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간에 회의실을 만들기 위한 가벽을 설치해 두어서 바람이 잘 부는 날도 바람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그렇다 보니 체감하는 더위가 더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화가 났던 건 용무를 보려고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이럴 수가. 밖이 회사보다 훨씬 더 시원했다.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회사의 총무 담당자에게 차라리 창문을 모두 뜯고 일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당연히 될 리가 없지.)
회사에서 제시한 대책은 한 사람당 선풍기를 한 대씩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서류가 날리는 게 싫어서 지난 9번의 여름 내내 한 번도 선풍기를 쓰지 않았던 나조차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문제는 비까지 내리다 보니 창문을 활짝 열고 선풍기를 틀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꿉꿉한 실내에서 눅눅한 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총무 담당자가 일하는 층에 올라갔더니 시원했다. 그 층에는 시스템 에어컨 외에 스탠딩 에어컨이 2대 있었다. 양쪽 끝에서 대각선으로 스탠딩 에어컨을 틀어 놓고 일하니 추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시원할 수밖에. 그래. 내 이럴 줄 알았다. 너가 내가 일하는 층에서 일했다면 에어컨 고장에 이렇게 무심할 수가 없었을텐데.
우리 회사는 건물의 두 개 층을 쓰고 있다. 내가 일하는 층에는 나를 포함해 열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위층에는 스무 명 정도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위층은 스탠딩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결국 찜통더위에 노출된 것은 아래층에서 일하는 열 명 남짓한 직원뿐이었다. 개중에는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운 직원도 있었으니 실제로 일하고 있었던 사람은 아마 예닐곱 명 정도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어컨은 고장 날 수 있다. 어떤 전자기기라도, 심지어 그것이 새것이라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작동이 안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내가 화가 났던 건 에어컨이 고장 나서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었다. 더위에 노출된 직원은 고작 예닐곱 명 정도였다. 위층에는 스탠딩 에어컨이 잘 돌아가고 있었고, 도보로 이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회사가 있었다. 회의실 하나 쉽게 대여해 줄 수 없는 것일까. 직원 한 사람 앞에 5천 원씩만 나눠 주고 근처 카페에서 일하라고 해도 충분했을텐데. 그래 봤자 필요한 경비는 4만 원 안짝이었다. 전면적이진 않았지만 재택근무도 시행해 본 경험이 있는 회사다. 하물며 지금 회사에 컴퓨터나 전화에 이상이 없는 다음에야. 잠깐 자리를 비워서 근처에 시원한 곳에서 일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 같은데. 아니, 그래. 에어컨 고칠 때까지 2~3일 정도는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았다. 물론 회사에서는 진즉에 다시는 재택근무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하긴 했지만서도. 회사의 선택지에는 선풍기를 가져다주는 것, 그리고 서둘러 에어컨을 고치는 것 그 외의 선택지는 없는 듯했다.
나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직원이 서른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공교롭게도 내 첫 직장이었던 대기업도 사무실을 두 개 층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본사 직원만 6백 명 정도는 되었겠지만. 한 번 생각해 보았다. 6백 명 정도가 일하는 회사에서 한 개 층이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런데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오히려 그쪽이 해결하기에 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3백 명이나 되는 직원을 갑자기 근처 쇼핑몰의 카페나 식당에서 일하라고 하면, 일단 돌아다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회사의 수뇌부나 경영진에게 안 좋게 비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그렇게 풀어놓으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딴짓하기도 쉽다. 그렇다고 3백 명이 일할 수 있는 업무공간을 빌리기 쉬울까. 그건 더더욱 어렵다. 게다가 3백 명이나 되는 직원을 갑자기 재택근무로 돌린다? 다른 현장과 사무실, 협력업체와 연락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텐데. 의외로 대기업의 경우엔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더 대처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많아야 열 명, 적으면 예닐곱 명의 직원들에게 그 정도의 임기응변도 발휘하지 못한단 말인가. 대기업이라면 차라리 이해를 할 수가 있다. 에어컨이 돌아가지 않는다. 직원들을 어떻게 해 줘야 할까. 총무팀장 정도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담당 임원에게, 그리고 본부장에게, 대표이사인 사장에게, 아니 오너인 회장에게까지 보고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3개 본부의 3백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을 내 맘대로 풀어 놓진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이 작은 중소기업의 대표가 예닐곱 명에 불과한 직원들을, 먼 곳도 아니고 회사 근처에서 일하도록 하지도 못할 정도라고? 무슨 의사결정 과정이 더 필요한가? 모회사의 대표에게 허락이라도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전화 한 통화면 충분할텐데. 이해를 하려야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찜통더위에 달랑 선풍기 한 대 던져 놓고는 자리에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그런데 나는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하다못해 중국도 아닌 바로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말이다.
내년이면 햇수로 십 년째 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된다. 중소기업의 근로환경이 대체로 대기업보다 많이 열악하지만 나름대로 배울 것도 많다. 쉽게 말해 인사 업무를 한다고 치자. 내가 다녔던 대기업만 해도 채용, 교육, 급여 등등의 업무가 모두 나뉘어져 있었다. 물론 대규모 신입 채용을 시행한다거나 하면 서로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맡은 일이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당장 내가 신입 공채 합숙 교육을 받을 때 우리와 함께 합숙하며 교육을 진행했던 사람은 인사팀의 교육담당자 둘뿐이었다. 가끔씩 팀장과 파트장이 다녀가긴 했지만. 그런데 중소기업은 다르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한 사람이 채용, 교육, 급여 등의 업무를 모두 담당한다. 실은 이것으로도 모자르다. 인사 외에 다른 업무도 같이 맡고 있다. 직원이 서른 명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열 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에 가면 그냥 인사, 재무, 총무 등의 모든 업무를 한 직원이 담당하는 것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체계도 없고 엉망인 것 같지만 나름대로 모든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의 일을 배운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중소기업이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 직원처럼 전문성을 띠지는 못하겠지만, 대기업의 인사팀에서 일한다면 교육을 담당했다면 채용 일은 새로운 팀에 가서 배우듯 배워야 할 것을 중소기업에서는 모든 걸 다 잘하는 제너럴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일을 한다고 해서 일이 꼭 무조건 더 많기만 한 것도 아니다. 조직이 작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업무를 하려고 하면 더 힘이 들긴 하겠지만서도.
작은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담당한다는 건 그만큼 업무재량권의 범위도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모든 걸 책임지고 알아서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당장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총무 담당자와 해당 팀장은 같이 움직인다. 서른 명 남짓한 이 작은 회사에서 총무팀장에게 별도의 사무실이 있을 리 없고, 총무 담당자가 알게 되는 사실을 해당 팀장이 모르게 될 리도 없다. 모든 걸 다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쳐도, 이 회사의 대표에게 한 번, 만약 그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해도 모회사의 대표에게 한 번만 더 보고하면 끝날 일이다. 대기업이라면 총무 담당자가 해당 팀장에게 가서 알리고, 담당 임원에게 보고한 뒤에, 본부장에게 갔다가, 대표이사를 거쳐, 오너까지 가야 할 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오너는 '에어컨 고장 난 게 그렇게 큰일입니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데 중소기업은 다르다. 대표가 한 층만 내려와도 바로 '아, 에어컨이 고장 나서 덥구나' 하고 알 수가 있는 구조다.
나는 이렇게 신속하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최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면 그렇지만, 한국은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 사이에 질의 차이가 있다. 에어컨이 고장났구나. 그러면 어떻게 대처하면 가장 좋을까? 하는 문제에 있어 중소기업 근로자는 대기업 근로자처럼 능동적이고 효율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다. 한편으로는 회사 규모가 적어서 그러려니 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다녔던 대기업에서 한 층의 에어컨이 고장 나 3백 명의 직원이 찜통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면 과연 그걸 견뎌 낼 수 있을까. 그런데 중소기업에서는 그래 봤자 예닐곱 명만 불편할 뿐이니 '너희들만 참으면 되잖아' 이런 생각이 없지 않을지도 모른다.(아마도 그렇겠지.) 그러니까 중소기업인 것이다. 그것도 한국의 중소기업. 서구의 선진국이라면 이런 대처에 있어 기업의 규모에 따른 차이는 없었을텐데.
어찌 보면 재량권을 발휘해서 충분히 더 편하고, 더 즐겁고, 더 수월하게 일하게 만들 수 있는데 한국의 중소기업에서는 그것이 안 된다. 인력의 질이 차이가 나는 데서 오는 실제적 부족함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고,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업무를 진행시킬 수 있는 업무 센스도 없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그럼 그냥 자리에서 선풍기 틀고 일하면 되잖아. 이 정도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풍기를 틀어도 더우니까 근처 카페에서 일할 수 있다거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회사의 회의실 하나를 빌릴 수 있다는 생각 같은 데에 이르기까지는 아마도 귀찮고 번거로울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테고.
결국 에어컨은 건물관리인이 밤을 새워 가며 배관을 확인한 끝에 하루만에 고쳤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아마도 나를 조금의 더위도 참지 못하는 엄청난 진상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건 에어컨을 고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에어컨이 틀어져야 하는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에어컨은 덥기 때문에 트는 것이고, 문제를 해결한다면 덥지 않도록 해 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려면 서구 선진국에 있는 회사를 다녀야겠지. 한국의 중소기업에서는 에어컨이 고장 난 것에 대한 해결책은 에어컨을 고치는 것뿐이다. 그것이 한국의 중소기업이 그 수준에 머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비록 에어컨은 고쳤지만 (에어컨을 고쳤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나는 출근하면서 다짐을 했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만 내가 시원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서 근무하겠다고. 이것이 중소기업이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 알아서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어찌 보면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와 맞지 않고 엉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잘 맞고 보람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평생을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사람들의 질이 다르다는 생각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내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그런 시선과 수준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인지에 미치면 정말로 참담하고 슬프기가 이루 말로 다할 데가 없다.
당신이 중소기업을 다니지 말아야 하는 이유 가운데 큰 것 하나는 바로 어울리는 사람들 때문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