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재택근무를 하지 않습니다

by honest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라야 재택근무를 1~2주 정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그치는 것이었다. 내심 위드코로나로의 전환이 11월 8일부터이기를 바랐고, 그 와중에 회사도 뭔가 전환기에 일주일 정도 지연된다면 2주 정도는 더 재택근무를 할 수 있을까 하지 않고 바랐었다. 2주가 언감생심이라면 1주일만이라도 그렇게 되길 바랐다. 접종완료자 70% 달성은 지난 10월 24일에야 이루어졌으니, 그 사람들이 정말 접종완료로 인정받으려면 그로부터 2주가 더 걸리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요즘 회사가 감사로 무척 바쁘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재택근무 종료를 논의할 새가 없어 일주일 정도는 더 버텼으면 했다.


위드코로나로의 전환은 11월 1일부터 한다고 했지만, 감사로 우리 회사보다도 모회사가 너무 바빴던 터라 금요일 오전까지는 이렇게 되면 운 좋게 일주일 정도 더 재택근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총무팀장이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모회사에 전화로 위드코로나 시대 재택근무 도입에 대해 문의를 하였고, 거기에서 놀라운 답을 얻었다. 그렇게 우리 회사의 재택근무도 끝이 났다. 브런치에 몇 차례 썼지만, 아이를 양육하시는 분을 위주로 거의 2년 가까이 재택근무를 경험해 보신 분도 없지 않아 있긴 하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온전히 주 2회 재택근무를 한 것은 채 1년이 안 된다. 한 달만 더 버텼으면 그래도 1년은 채울 수 있었을텐데.(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모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각 부서장 재량에 따라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는데, 그에 반해 우리 회사는 전면적으로 30%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었다. 이럴 수가. 나는 그 사실이 너무 기뻤는데, 우리 팀장은 너무 슬펐나 보다. 본인에게 그 사실을 정식으로 통보한 것도 아닌데 옆으로 총무팀장이 통화하는 소리를 듣더니 쪼르르 달려 가서, '아니 모회사도 안 한 재택근무를 우리는 그동안 왜 했냐'며 따진다.


내가 왜 재택근무를 하고 싶냐고. 저런 팀장을 안 보고 싶어서.(한숨)




내가 다니는 회사가 IT 회사는 아니니 전면 재택근무는 바랄 것도 못 된다. 그래도 우리회사도 제조업으로 분류되고, 제조업 회사만큼만은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동료나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위드코로나로의 전환과 함께 재택근무가 축소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 50% 정도 재택근무하던 것이 30%로 줄었다는 친구도 있고, 주 1회 출근하다가 이제 50% 정도로 출근한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 회사처럼 아예 폐지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 회사는 좋소기업이니까.(요즘 중소기업을 이렇게 많이 부르더라.) 어떻게 보면 좋소기업이면서도 그동안 1년 가까이 30%나 재택근무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이런데 좋소기업을 다니라고?)


지난 1년여의 재택근무를 돌아보자.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나는 재택근무를 해서 너무너무 좋았다. 브런치를 봐도 알 수 있겠지만, 나는 내가 다니는 좋소기업과 구성원들 상당수를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이렇게 회사를 다니니 정신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회사를 그만둔 것도, 집에 있는다고 해서 회사와 일과 구성원들로부터 아예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물리적인 구분을 무시할 수가 없다. 특히 혐오하는 사람을 보지 않음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의 효과가 상당하다. 내가 주 2회 재택근무를 할 때, 내가 혐오하는 A라는 사람도 주 2회 재택근무를 한다. 운이 없으면 두 사람의 재택근무일이 겹쳐 주 3회 만나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럴 확률은 상당히 떨어진다. 정말 운이 좋으면 휴일이나 휴가 등의 사유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만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30%의 재택근무가 소멸된다고 30%의 영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이제 혐오하는 사람들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한다. 그 어떤 것보다 이것이 너무 좋았다.


대기업을 다니면(나도 다녀봤다고) 회사가 크기 때문에 싫어하는 직원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자주 마주칠 수가 없다. 물론 같은 팀에 혐오하는 직원이 있다면 정말 괴롭겠지. 나도 다 겪어봤다. 그러나 대기업에서는 내가 팀을 바꾸고, 본부를 옮기고, 일하는 곳을 변경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로워도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않나. 우리 회사는 35명의 직원밖에 없고, 현실적으로 내가 갈 수 있는 팀은 둘뿐이다. 팀을 옮겨도 바로 옆 팀에 그 사람이 있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팀에 내가 혐오하는 직원이 없다고 해도 작은 탕비실에서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다. 왜냐고? 회사가 작으니까. 금요일에도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가 내가 노조에서 탈퇴하는 계기가 된 B라는 직원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다. 이게 얼마만의 일인지.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매일 있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오, 하느님.


객관적으로 나는 우리 팀에서도 회사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직원으로 매일 왕복 출퇴근 시간 2시간 30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출퇴근 준비에 드는 시간은 덤이다. 교통비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해도 하루에 왕복 3천 원을 쓰는 셈인데, 그 모든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항상 지하철정기권을 충전해서 다녔었는데 지난 11개월 동안은 한 번도 정기권을 충전하지 않았다. 이 말인 즉슨, 한 달 교통비가 5만5천 원도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전 같았으면 정기권 충전료 5만 5천 원에 시외에서 타는 지하철비와 버스비 등을 합쳐 한 달에 교통비만 7만 원은 썼을텐데.




물론 나도 관리자라면 재택근무에 찬성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그랬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충실하게 업무로 보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당연히 재택근무는 재량껏 일하게 되다 보니 일이 급할 때는 시간외근무도 인정받지 못하고 집에서 새벽 1시, 2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와 한갓지게 시간을 보낸 경우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았을지 물어보면 대답은 하나마나다. 재택근무 덕분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선후배와 친구들을 점심 때 그들의 직장 근처로 이동해서 만나고 오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지난 1년 내 행복의 가장 큰 근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니지 않는가. 내가 내 월급만큼만 일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그보다 더한다. 재택근무하는 날을 한갓지게 보낸 대신에 회사에서 일할 때는 집중도가 엄청 올라갔었다. 물론 매일 그렇게 일하는 게 맞기는 하지. 내게 그렇게 일한 데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고, 회사에서 평가도 좋아진다면 누가 말리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할 거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기업은 좋소기업이 아닌가. 올 한 해(아직도 2개월이 남았지만) 내가 한 일을 곰곰이 따져보았다.(재택근무를 하면서) 이걸 따져보니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을 때에 비해서 적게 쳐도 지금까지 30% 이상 성과를 더 냈고, 거의 50% 가까이 더했다고 할 수 있을 만하다. 심지어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 직원이나 팀장급과 비교해도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 팀장은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 자기 눈앞에서 허우적대며 일하는 사람만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할테니까. 가끔은 내가 공산주의 사회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결과물보다 일을 하는 태도만 중요하다면 우리는 뭐하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가.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에는 월요일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월요일이 재택근무인 경우가 있기도 했고, 월요일에 회사를 나간다고 해서 꼭 꼴 보기 싫은 놈이 그 자리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하물며 꼴 보기 싫은 놈이 자리를 지킨다고 해도 작은 사무실에 사람이 듬성듬성 앉아 있으면 공간적 압박이 훨씬 덜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내일부터는 회사에 나가면 안 그래도 좁은 사무실의 모든 좌석에 직원들이 앉아 있을 거고, 내가 꼴도 보기 싫어하는, 혐오하는 직원들이 A, B, C, ... 거의 모두가 다 출근해 있을 확률이 높다. 다른 층(그래 봤자 아래층 1층 더 있을 뿐이지만)에 근무하는 직원조차 물을 뜨겠다며, 커피를 마시겠다며 탕비실에 나타나겠지. 그래서 총무팀에 탕비실이라도 다른 층으로 옮겨 달라고 농담 섞어 얘기했다. 그러면 내가 물을 안 마시거나 커피를 안 마시는 방법으로 A와 B와 탕비실에서 마주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지 않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동안 회사에서 휴가를 적극 쓰라고 할 때 그것이라도 쓰지 않고 버틸 것을 그랬다. 뭐 좋아하는 회사라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그렇게 주구장창 따라갔는지. 가만히 보면 내가 제일 혐오하는 직원들은 말 한마디 안 듣고 재택근무 때 온전히 쉬니 휴가도 하루도 쓰지 않고 모아두었는가 보던데. 좋소기업을 다니면 좋지 않은 이유는 100만 가지도 넘겠지만, 이것은 차후에 다시 정리하고, 결국 이렇게 좋소기업답게 재택근무가 칼 같이 끝나고 말았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것은 또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도 조만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다만 쉽게 한마디로 요약해서, 재택근무만 봐도 좋소기업은 다닐 곳이 못 됩니다, 여러분. 노력해서, 아니 죽어도 대기업 가세요. 귀신이 되어도 대기업 귀신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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