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하세요? 2

개인의 민원과 회사의 시스템

by honest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로 전 사회가 재택근무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죠. 물론 처음부터 해당되지는 않았습니다. 1편에서도 적었지만 처음 재택근무는 일부 대기업에 한정된 이야기였겠죠. 중소기업인 제가 다니는 회사는 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휴원하고 학교들이 개학을 미루기 시작했죠. 그 바람에 이 작은 회사도 제한된 인원들에 한정해 재택근무를 실시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영유아나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로 조건이 제한되었거든요.


팀장님 한 분에 팀원 세 명이 근무하는 팀에서 이후 한 달 정도 저와 팀장님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출근하는 것에는 크게 불만이 없었습니다. 저출생이 심각한 대한민국에서 자녀양육에 우호적인 환경은 얼마든지 만들어 주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저는 팀장님과 덜 친한 편이라 팀장님의 잡담이며 수다를 주로 다른 두 분이 받아주었었는데 이제는 하필 회사에 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죠. 이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세 사람이 상대하던 팀장을 혼자 상대해야 했으니까요. 심지어 세 명이 상대한다고 했을 때도 저의 몫은 가장 적었습니다.


이후 저는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했고, 세 번의 도전 끝에 저 혼자 출근한지 약 한 달 남짓 되어 재택근무를 쟁취해 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의 민원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건 당연하죠. 그래도 룰이 있는 회사인데요. 마침 이때, 관공서들도 재택근무를 실시하기 시작했거든요. 저의 재택근무는 온전한 재택근무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순환식 재택이었는데 저는 한 명뿐이라 임의로 제가 요일을 정해 회사에 나가면 되었죠.


그래도 꿀맛 같았던 재택근무였는데 한 달 보름여만에 끝났습니다. 5월이 되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 속 거리두기(현재의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로 조정되면서 재택근무가 끝났죠. 다시 모든 팀원이 출근해서 일을 한지 몇 주 안 되어 뒷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갑자기 제게 물어왔습니다. "honest 씨, 내가 재택근무를 계속하면 어떨 것 같아요?" 요는 그랬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매일 가지 않는데, 나는 재택근무할 때 오히려 생산성이 더 높았고 업무 결과물도 더 많았다. 내가 재택근무를 더해도 혹시 팀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면, 내가 재택근무를 더하면 어떻겠느냐.


냉정하게 말해서 저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육아친화적인 노동자라고 하더라도요. 일단 그럼 그동안 방학 때는 어떻게 하셨던 건가요. 그리고 남편 분도 계신데, 왜 선생님만 재택근무를 계속하셔야 하는 건가요. 가장 큰 문제는 이분의 자녀는 그래도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한 명이었죠. 옆자리 선생님은 5살짜리 자녀가 2명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더 어린 자녀를 돌보는 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만 뭐 제 회사도 아니고 이런 문제로 굳이 남과 얼굴 붉힐 필요 있겠습니까. 저는 저 많은 이야기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만 했죠. 그랬더니 5살 자녀를 두고는 재택근무를 할 수가 없다. 아이를 계속 봐야 하기 때문에 라고 이야기하시더군요. 저는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회사에서 결정하는 대로 따를 밖에요.


그렇게 그분은 마침내 재택근무를 더 얻어 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작은 회사에 재택근무를 더하게 된 직원이 몇 명 있었을까요. 2명 있었습니다. 2명을 위해서 회사는 새로운 지침을 만들고 운영을 시작했죠. 그분이 재택근무를 하신다고 해서 저에게 손해가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반대하진 않았던 것이고요. 다만 '상대적 박탈감'은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가? 더 어린 애를 둔 부모는?' 물론 거기에 저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해당되었다면 저도 회사에 적극적으로 민원을 넣었겠죠. 그래서 저는 모르는 척 지나갔습니다.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인 공정은 결국 룰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미 법칙이 있다면 그걸 따르면 되겠죠. 그런데 어떤 사람을 위해서 새로운 법칙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공정하다고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큰 회사가 좋은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있는 만큼 법칙이 더 정교하고 세부적으로 잘 마련되어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이번 코로나19 이슈 같은 경우는 큰 회사라고 해서 미리 그에 맞는 규정을 준비해 두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직원이 2천 명 정도 있다고 하면(제가 다녔던 회사가 직원이 2천 명이라 늘 이렇게 예를 들게 되네요.), 당장 이번 사례 같은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직원이 한두 명이 아니지 않을까요? 또 어린이집을 보내는 부모도 꽤 많았을 겁니다. 회사에서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 상당히 세밀하게 지침을 만들었겠죠. 시간도 좀 걸렸을 거고요. 제가 다니는 회사도 인사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 여러 법령과 규정을 참고해 열심히 지침을 만드셨지만, 저는 더 많은 조건과 상황이 고려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회사에는 그걸 적용받을 사람이 몇 없으니까요.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엄청난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있어서 우리 모두를 설득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부분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택근무를 더하게 된 것은 좋은 것이죠. 직원의 애로사항을 회사가 적극적으로 해소해 준 것이니까요. 그런데 모든 직원이 그걸 보고 '내가 손해 본 것도 없고, 이건 무조건 좋은 일이지!'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사람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저도 '내가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야 무슨 상관이냐'라고 생각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수양의 시간을 거쳐야 했거든요.(웃음) 우리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꾸뻬 씨의 행복여행>에서도 제1원칙이 비교하지 않는 것이던데.




물론 이렇게 한 개인의 적극적인 민원 제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저도 수혜(?) 아닌 수혜를 입은 적이 몇 번 있죠.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재택근무도 해 보았고(당연히 저의 민원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제가 민원을 넣지 않았다면 그조차도 그때부터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노사협의회를 만들 때도 적극적으로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습니다. 큰 회사라면 쉽지 않았을 일이죠.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의 장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단, 대화가 통하는 경우에요.


이렇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 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재택근무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