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 재택근무를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근무시간으로 따졌을 때, 점심시간이에요. 제가 다니는 회사는 중소기업이지만 그래도 비교적 좋은 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택근무의 여부가 그 회사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는지를 보이는 하나의 지표는 되니까요. 저는 재택근무가 무조건 좋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를 다녀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재택근무는 선악과는 전혀 무관한 영역입니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꼭 더 나쁜 것도 아니에요. 업종의 특성상, 회사의 사정상 대기업이라고 해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택근무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스템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겠지요.
지금 다니는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이 아직도 휴가대장을 수기로 입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실 한쪽에 두꺼운 책처럼 휴가대장이 있었죠. 직원마다 할당된 페이지가 있고 휴가나 출장을 쓴다면 대장에 적고 관리자의 서명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게 2015년이었고, 그 이전에 물론 대기업도 다녔었지만 더 작은 회사도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21세기가 10년도 더 지난 지금, 19세기에나 볼 법한 휴가대장이라니, 정말 놀라웠습니다. 휴가대장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적었고,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저는 휴가대장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 회사의 직원은 25명 남짓이었지요. 중간에 돈을 들여 전산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었습니다. 몇 천만 원 정도 들더라고요. 직원이 2천 명이면 몇 천만 원을 들여서 전산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가 한눈에 오늘은 몇 명이 출근했고 몇 명은 휴가인지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직원이 25명인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현재 제가 다니는 회사는 근태를 외부 시스템을 통해 관리합니다. 매달 사용료를 내고요. 이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인력이 적은 회사는 이렇게 외부에 전문화를 할 필요가 있겠죠. 모든 걸 다 자체적으로 하기는 힘듭니다. 직원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휴가대장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아주 놀라웠지만.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합니다. 주로 큰 회사 위주지요. 제가 처음 입사했던 회사도 2월부터 바로 재택근무를 하더군요.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 위주로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큰 회사들은 이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죠. 전산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아니 부서가 따로 있고, 심지어 그걸 관리해 주는 외부 회사도 있습니다. 혹시 재택근무와 관련된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그 시스템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건 좋고 나쁜 문제가 아닙니다. 회사가 더 크기 때문에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는 거에요. 반면 제가 다니는 회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이 회사는 직원의 선의에 기대어야 합니다. '직원이 근무시간에 딴짓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지'. 저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만약 제가 관리자라면 조금 부정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제 경우에는 서류 작업이 많아서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그만큼의 서류를 가지고 와서 할당량만큼의 일을 하죠. 일찍 끝나는 경우에는 조퇴를 쓰지 않고 조기퇴근합니다. ㅎㅎ
시스템은 무조건 선이고 임기응변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법치주의 사회에 살다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법이나 규칙은 일률적이어서 사람들의 개별적인 사정을 봐 주지 않죠. 모든 국민이 이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 조항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정상참작이야 되겠지만 법의 칼날은 피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더가 정말 뛰어나다면 임기응변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계속 시스템을 갖추는 쪽으로 발전해 갑니다. 바로 요즘 최대의 화두인 '공정' 때문에요. 내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도 규정되어 있는 시스템에 한해서는 납득을 합니다. 그건 모두가 정한 규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에요. 그런데 시스템이 부족한 경우, 결국 사람들로부터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대기업에 가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2편에서)
당장 볼까요. 회사가 구성원이 5인이 채 안 되면 대표 마음대로 직원을 짜를 수 있습니다. 5인이 넘어가면 그것이 안 되죠. 30인이 넘어가면 노사협의회를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시스템이 하나씩 갖추어져 나갑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도 지난 5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직원이 25명 정도였기 때문에 노사협의회가 없었죠.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시겠지만 없어도 되는 것을 설치하는 회사가...) 그런데 지난해 직원이 30명을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처음에는 회사에서 정규직원이 30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더군요. 제가 여기저기 법적 자문까지 받아가며 당장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마침내 노사협의회가 설치되었습니다. 노사협의회의 설치로 어떤 변화가 있느냐고 하면 제가 작은 변화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큰 변화는 없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설치된 노사협의회는 직원이 30명 이하로 줄어든다고 해서 쉽게 없앨 수도 없을 거고요.
시스템은 여러분을 지키는 보호막입니다. 물론 앞서도 말했지만 리더가 정말 뛰어나다면 임기응변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회사라면 전 작은 회사여도 다니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 회사가 바로 유니콘 기업이고, 그 회사는 언젠가는 대기업이 될 거에요. 아마 지금은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여러분이 그 과실을 함께 따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난 리더를 저는 사회생활하면서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당장 우리나라에 그렇게 뛰어난 리더가 있다면, 조금 과장해서 법이 필요없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나 세종대왕이 다시 오더라도 그렇게까지 하기는 힘들겠죠.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꼭 더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시스템이라도 더 완비된 회사가 당신에게 좋은 회사일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