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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28. 2020

짝짝이 양말

 시험 감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늘 '쏜 살 같은', '눈 깜짝 할 새에 지나간' 이 시간을 수식하는 말로 붙곤 하지만, 요즘 같이 눈과 귀를 현혹하는 것들이 시시각각 쏟아지는 이 때, 고요함 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보내는 1분 1초는 정말 더디게 흐른다. 원경(창 밖의 풍경)과 근경(시험 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살피다, 문득 시선이 내 양말에 가 닿았다. 이런, 양말이 짝짝이이다. 분명 검은 색 양말을 꺼내 신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쪽은 짙은 파란색 양말, 한 쪽은 검은 색 양말이다. 새벽에 출근하느라 자는 가족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미드만 켜 놓고 서두른 탓이다. 딱히 강박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시간 이후부터 짝짝이 양말은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마냥 내 신경을 슬쩍슬쩍 건들이며 괴롭혔다. 

 작년엔가, 비가 많이 왔던 어느 날 양말이 젖을지 몰라 새 양말 한 켤레를 자동차 어딘가에 넣어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그걸 찾아서 갈아신을까 하며 주머니 속에 있는 차 키를 만져봤다가,  이럴 줄 알았으면 양말이 쏙 감춰지는 부츠를 신고 올 걸 신고 벗기 불편해서 출근 직전에 마음을 바꿔 먹은 내 탓을 해 봤다가. 

 그러다 문득 '오늘 내가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온 걸 몇 명이나 알아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테스트를 해보는 거다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졌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양말이 짝짝이였다는 것을 알아 본 사람은 0명이었다. 

 

  내가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해서 늘 신경을 쓰고 사는 나만의 약점, 치부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쩌면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것, 그냥 지나쳐도 될 것, 아니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인데도 굳이 남의 시선을 의식해 가며 위축된 채 피곤하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타인을 의식하며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는 나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투영하며 스스로를 옭죄고 움츠러들 게 만들기도 한다. 학교에서도 친구와의 관계를 힘들어 하는 아이들의 문제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단점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니, 누군가에게 다가서서 마음을 여는 것을 힘겨워 한다. 

 

 내 자신에게,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어야겠다. 네가 생각하는 너의 그 부분은, 남들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던 짝짝이 양말과도 비슷한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땐 너무나 큰 문제 같아도, 한 걸음만 바깥에서 보면 작은 것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짝짝이 양말을 신은 채 당당하게 한 걸음 걸어 나와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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