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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08. 2021

새로움을 만들어 가려면

 워킹 쓰루. 

작년 같이 이 말이 많이 썼던 시기가 또 있나 싶다. 드라이빙 쓰루라는 표현도 여전히 어색한 마당에, 애초에 워킹 쓰루라는 표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게 되며 작년 아이들이 치른 첫 학력 평가 시험, 수능 수험표 배부, 수능 성적표 배부에 이어 졸업식까지 워킹 쓰루의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걸어 와서 필요한 것들을 수령하고 지나가는 방식. 


 졸업식이 그리 될 거라는 건 이미 얼마 전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지라 학교에서 공식적인 안내가 전달되었을 때에도 모두가 당연스레 생각했다. 정문 앞 마련된 한 켠의 공간에서 학급별로 시차를 두어 졸업장과 졸업 앨범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하고 가정 통신문까지 발송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들 '코로나'라는 벽에 막혀 모든 것을 생략하고 간소화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졸업식을 사흘 앞둔 날. 문득 생각하니, 작년처럼 예정된 졸업식을 취소하는 게 아니라, 이것 또한 엄연히 졸업'식'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골방 같은 곳에서 잠깐 들렀다 가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동안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그래도 끝까지 자기 몫을 해낸 아이들인데, 누구보다 졸업을 축하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3학년 담임 선생님들께 의견을 구하니 다행히 모두 내 생각에 공감해주셨다. 쓸 수 있는 예산을 탈탈 털어 보니 겨우 19,900원이었고, 졸업식까진 이제 이틀도 남은 상태였다. 돈도 시간도 부족했고, 코로나 방역 수칙이 운신의 폭을 좁혔다. 


 간단하게나마 식장을 꾸며보자 마음을 먹었다.  한 시간가량 인터넷을 뒤지며 예산 안에 들어오며 다음날 도착이 가능한 장식물을 찾았다. 사비 80원을 보태 졸업 축하 장식용 풍선 세트를 구입했다. 디자인 프로그램에서 졸업 축하 그림들을 몇 장 골라 크게 출력하고, 음악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을 통해 졸업식장에 쓸 노래들을 골라봐 달라고 부탁했다. 졸업식 전날엔, 3학년 선생님들을 교실에 불러 모아 단체 사진을 몇 장 찍고, 졸업 앨범을 찍어주는 사진관에 부탁하여 학급별 사진도 몇 장 받았다. 같이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 동료 선생님이 사진들과 이미지를 한 데 모아 그럴듯한 영상을 뚝딱 만들어 주셨다. 

 

 졸업식 전날 밤, 폭설이 내리는 모습을 보며 차마 다음날 일찍 와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없어 새벽 일찍 집을 나섰고, 졸업식장을 풍선과 각종 프린트물로 장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학교에서 제일 멀리 사는 선생님 두어 분이 나타나 거들어주셨고,  다른 선생님들도 출근하자마자 손을 보태주셨다. 


그렇게 19,980원을 들여 만든 그럴듯한 졸업식장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막상 졸업식장에 나타난 아이들은 처음엔 쭈뼛쭈뼛해 하며 어색해 했다. 어디서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선생님께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니, 식장으로 달려오셔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고 즐기다 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띄워 주셨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식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다 다음 학급 시간이 되어 선생님들이 나가달라 이야기해야 아쉽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큰 강당에서 함께 모여 졸업식을 치를 때는 식 시간에 맞추느라 번호 순서대로 이름을 외치며 그저 졸업장을 나눠주기에만 급급했는데, 이전과는 달리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풍선이 장식된 벽 앞에서 함께 기념 촬영도 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쯤되니 하룻 사이에 뚝딱 골라낸 음악과 급히 찍은 사진을 이어 붙인 영상조차도 꽤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저는 솔직히, 예전에 늘상 하던 졸업식보다 오늘 같은 졸업식이 의미도 있어 보이고 훨씬 좋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술을 안 마신지 꽤 오래 되었는데, 졸업식을 마치고 오후 시간 내내 흐뭇한 기분에 잔뜩 취해 있었다. 


어떠한 일을 하며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늘 해 오던 방식에서 생각하면 장애물은 곧 한계가 된다. 생각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 그러나 그 장애물을 딛고 올라서려 한다면, 지금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장애물을 딛도록 손을 잡아주고 힘을 보탤 수 있는 것이 바로 일을 함께 해 나가는 동료들. 내 옆의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찾을 때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주고, 성공의 기쁨도 실패의 부담도 같이 나누어질 수 있는 이들이라 신뢰할 수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꿈을 꾸고, 그것을 실현해 갈 수 있다. 


 지난 1년의 시간에 나도 '코로나'라는 세 글자 뒤에 숨어 할 수 있는 일에 손을 놔 버리고, 상상할 수 있었던 일들로부터도 도망친 채 그저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며 나태해진 나를 '답답하다'란 투덜거림으로 감춰온 것은 아니었는지. 

  학교라는 곳은 태생적으로 관성이 지배하는 곳. 의도치 않게 맞닥뜨리는 장애물은 그러한 관성을 방해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 속에서 함께  돌파구를 찾아 나가고, 관성의 고리를 끊을 때 내게 주어진 세상은 훨씬 더 넓고 다양한 색을 지닌 곳이 될 것이다. 


 이렇게 졸업식을 치르며 올해를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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