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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13. 2021

늦게 피는 꽃

 이름을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 내가 아는 그 이름이 맞는지. 틀림없다. 흔한 이름이 아니어서 그 이름이 , 내가 아는 그 친구일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믿기지 않아 검색까지 해 보았다. 그 친구가 맞다. 


 초등학교 때 한 반이었던 A는 나와 관계 속에서 기억이 되지는 않는다. 영화의 한 장면 장면처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A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뒷산에 놀러갔다가 돌을 주웠는데 그게 돌도끼 모양이라며, 자기가 지도를 봤더니 이곳이 예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 분명하다며 담임 선생님께 들고 가서 돌도끼를 발견했다고 이야기 하던 모습, 귀찮은 표정을 하고 A의 이야기를 듣던 담임 선생님의 반응, 수업 시간이면 손을 들고 엉뚱한 발언을 해댔던 모습들.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것은 철칙으로 알아듣고 그대로 순응했던 나는 모범생 취급을 받았던 반면, A는 당시의 선생님들께 꽤 미움을 받았던 느낌이었다. 아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닥 인기가 있지는 않았었던 것도 같다. 수업 시간에 그 친구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었던 선생님, A를 놀이에 끼워주기 거부하던 몇몇 아이들이 기억에 스쳐 지나간다. 나 역시도 A가 가끔 말을 걸면 퉁명스럽게 반응을 하곤 했다. 


 대학교 때, 어떻게 A와 다시 연락이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A에게서 느닷없이 연락이 와 함께 밥을 먹었는데, 3수를 해서 대학에 막 진학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기억도 없고, 딱히 재미가 있던 만남도 아니어서 언제 밥 한 번 더 먹자는 약속을 미루고 미루다 지키지 못했다. 

 

그 다음엔 초등학교 반창회 때 A를 만났는지 아닌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A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닌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나서 A의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저명인의 SNS를 통해서였다. A가 집필한 책을 언급하며 훌륭한 연구물로 평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다른 유명인들이 여러 차례 A의 저서를 들먹였다. 연말이 되니 '올해의 책', '2020년을 대표하는 책' 같은 분야에 다시금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책을 보진 않았어도, 그 책에 대한 평가만으로도 A가 무엇에 대해 얼마만큼의 치열한 고민과 연구 끝에 책을 냈고, 그것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구나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A는 늦게 피어난 꽃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노력 끝에 비로소 지금 빛을 발하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자그마한 동네에 있는,  '콩나물 교실'이라 기사에도 난 열악한 학교에서 유년을 보내면서도, 쉽사리 인정 받지 못한 시간들을 지내오면서도, 끈질기게 자라서 꽃을 피워냈다. 


학창 시절을 함께 했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지. 새해가 들어 집안에 짐들을 정리하며 처치 곤란한 책 무더기들을 보고 이제는 전자 책을 사겠다, 혼자서 선포하고 전자 책 단말기까지 구입했건만, 결심을 한 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A의 책을 몇 권 구매하였다. 선생들의 예쁨을 받으며 마음 한 켠으로 A를 무시하거나 조롱했던 나의 과거를 속죄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A의 성장을 뒤에서 응원해주고 싶은 바람이 있기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의 꽃씨를 품고 있다. 어떤 환경을 만나, 얼마만큼의 속도로 자라나 언제쯤 꽃을 피울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교사로서 한 아이를 만나는 건 고작해야 3년 이내이다.  아이들은 언젠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지지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거름들을 충분히 주는 것이 교사의 몫이다. 이제 막 틔운 아이들의 싹을 내 얄팍한 시선으로 재단하지 말고, 언젠가 꽃이 되리라 무조건 기다리고 믿어야 한다.

 

 A의 책을 다 읽었다. A를 몰랐더라면 그저 똑똑한 누군가가 굉장한 책을 써냈구나 감탄하고 말 일이었다. 어린 시절 A가 품고 있었을 엄청난 씨앗에 대해, 나를 스쳐지나갔지만 내가 차마 보지 못했던 소중한 씨들을 간직하고 살았을 아이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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