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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을 보고

by 메추리

영화 '박열'을 보고

박열. 멋진 인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독립운동을, 혁명을 꿈꾸는 무정부주의자로 산 것 같지만 그는 몇 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치밀함이 있다.

첨엔 동거하다 관동대지진 희생양으로 함께 투옥된 후미코와 감옥에서 찍은 사진 한장이 모티브가 되어 영화화된 실화. 책을 들고 있는 후미코와 후미코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퇴폐적이면서도 당당한 묘한 그런 사진. 그리고, 그 사진에 역사적 사실로 멋진 스토리를 엮어낸 이준인 감독의 스토리텔링도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는 데 오른쪽 오십대 아저씨는 코까지 골며 잔다. 왼쪽 와이프는 가끔 졸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보며 저럴 수 있지 라는 생각도 든다. 뭐 사람이 다 다르니.

영화는 잔잔하다. 간간이 터지는 대사에서 웃기도 울기도 한다. 후미코와 박열의 마음을 확인하는 소소한 대사를 들으며 나도 극에 확 몰입되었다. 일본 천황제의 불합리성을 외치고,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밝히고, 대역죄인을 자청하며 재판을 받는 과정은 박열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조선인 최초의 일본 대역죄인이라. 그 타이틀 한번 멋지다. ㅎㅎ

이준익의 영화는 따뜻하다. 꼭 안성기, 박중훈이 나왔던 '라디오스타'를 볼 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그건, 설국열차와 옥자를 거치며 돈은 퍼부었으나 내 취향과 점 점 점 멀어진 봉준호 감독과 다른 행보다. 좀 더 인간의 감성을 깊게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훌륭한 연기를 해 준 후미코 역의 최희서 고맙다. 그녀가 일본배우가 아니었다니 그저 놀랍다. 어떻게 그런 연기를.

너무나도 당당하게 박열을 연기한 이제훈도 고맙다. 이제 수지와 조정석의 영화로 기억되는 건축학개론은 잊어도 될 듯 하다. 온전히 박열 캐릭터를 흡수해 자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 이런 감동 오랜만에 느껴 본다. '개새끼'라는 시도, 박열과 후미코 간에 오간 동거서약도, 동지로서의 우정과 사랑도, 끓어오르는 젊음과 국가와 시대에 대한 신념도 멋지다.

아름다운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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