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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국 Jun 05. 2023

노력의 끝에 꿈은 이루어질까?

천왕봉을 오르고 내리고 2

천왕봉을 오르며 내가 선택한 코스는 가장

빨리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 중산리 칼바위 코스다.

코스 타이틀의 센터를 칼바위가 차지하는 만큼

칼바위가 지나면 코스의 절반이 지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절반은커녕 3분의 1 정도 지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그런 무력감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부분이다.

나도 무턱대고 산에 오른 건 아니고

나름 검색이라는 것을 해보며

사전 정보를 얻었더랬다.

어둠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

얼떨결에 말을 섞었던 아저씨가

이제 칼바위 지났으니 절반 지났다고

말했을 때 그를 안타깝게 생각할 정도의

배경지식은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꾸준히 힘을 내어

법계사 아래 로터리 대피소까지

방심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가 3km 정도 등산로였고

이제 2km 정도 남은 거였다.

보통은 거기서 쉬어가기 마련이지만

난 이제 진짜 절반 넘게 왔으니까

정상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난 천황봉 등산을 시작하며

기왕에 높은 산에 오르니

산의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가급적 해가 뜨기 전에 정상에 도착하고 싶었다.

법계사 구간을 통과할 때, 거의 새벽 5시 무렵이었고

주위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해가 뜰 징조였다.

해돋이 덕후인 나는 이제 해가 순식간에

떠오를 것임을 직감했다.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법계사를 지나면 천황봉의 등산로는 더 가혹해진다.

산 꼭대기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길이 험해지고 경사도 심해진다.

그래도 해 뜨는 걸 보려는 목표가 확고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상당한 거리를 올라왔다 싶을 때

벌써 하산하는 어르신이 보였다.

(그렇게 부럽고 존경스럽고... 막)

어르신, 정상까지 얼마 남았나요?

난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며 희망을

담아 질문했다.

찰나의 순간, 나에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살짝 내비친 어르신은 '많이 남았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굳이 '많이 힘들어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약간 코웃음도 치시는 거 같았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는데...못 오르겠으니 못 오르겠다.

급격하게 힘이 빠지면서

법계사를 통과하며 2km 남았다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떠올린 게

얼마나 근거 없는 추론이었는지 깨달았다.


거기까지 올라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무지하게 힘들었다고 해서 남은 여정이

길지 않은 여정이라거나 왔던 길만큼 고생스럽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우린 가끔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어떤 순간

나도 모르게 몰입하고 최선의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어떤 수준 혹은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만큼 고생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목표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대다수 목표의 성취는

노력의 양에 결코 비례하는 건 아닐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력의 끝이 반드시 목표의 성취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난 골프를 좋아하는데

시작한 지 시간이 꽤 지났고 연습도 열심히 하여

작년 겨울쯤 스크린이긴 하지만 평균 스코어가

싱글에 이르게 되었다.

난 이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방심하지 않고

연습을 멈추지 않았고 그 이후 몇 달이 지난 지금

내 골프 평균 스코어는 그때보다 5~8타 정도 꾸준히 오버가

나오고 있다. 노력은 전진을 위한 행위지만 그렇다고

정체를 차단하진 못하나 보다.

심지어 나처럼 후퇴하기도 한다.

 

목표는 대다수의 경우 내 만족보다는 멀리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걸어간다.

의욕도 없고 기대도 없는 길을 걸어간다.

이미 해는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려는 나의 꿈은 이미 박살 났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왔고 돌아갈 길보다

남은 길이 더 적은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다만 난 목표를 수정했다.

정상은 아니더라도 해가 보이는 곳을 얼른 찾아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보는 것으로 말이다.

해가...해가...막 올라와요

그래도 꽤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그럴듯한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꾸역꾸역 올라갔다.

그 정도 되면 걷고 싶어서 걷는 게 아니라

다리가 움직이는 김에 그냥 내버려 두는 느낌이다.

마침 주변이 틔어 있는 공간이 나왔고

여명이라고 하나, 붉은 빛줄기가 밑에서부터

스멀스멀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난 이제 똑바로 섰다. 하늘을 응시했다.

붉은 점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하늘 전체가 붉어지고 그 점은 순식간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 하지만 해돋이의 존재감은

내 의식을 사로잡았다.


아 좋았다. 난 해돋이 덕후니깐

힘든 여정 속에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목표를 정하고 여정을 시작한다.

목표가 분명할수록 걸음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으로 우린 최종 국면에

도달하지 못하고 좌절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높은 목표는 정점을 허락하지 않아도

그 근처 어딘가에서 우리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그 자리는 적어도 내 시작점보다는

분명히 내가 꿈꾸었던 성공의 정점에

가까운 위치일 것이다.

해가 신나게 떠오른다. 속절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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