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

컨디션 난조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법

by 은예진

아마자키 아쓰코, 도리이 린코 지음, 원선미 옮김, 마인드 빌딩 펴냄


폐경이 되고 일 년 동안은 몸에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본디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었고 내 한계를 알아서 오버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그럭저럭 문제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떨어졌다. 무릎과 손바닥에 상처가 나고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나도 모르는 사이 폐경 이후 조금씩 쇠약해지고 있던 몸이 그 기회를 통해 한꺼번에 무너졌다.


지독한 두통과 소화불량, 어지럼증, 이명, 관절 통증 우울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괴롭혔다. 그 시기에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종합병원 산부인과를 찾아가 유방암 병력이 있지만 호르몬성이 아니니 상담을 통해 호르몬 치료를 받았더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온갖 갱년기 증세를 겪으며 그 시기를 통과했지만 위축된 비뇨생식기의 후유증으로 방광염에 걸려 있거나 염증이 없어도 방광과 옆구리 통증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항생제 남용이 계속되면서 전정신경염으로 쓰러졌고 이후로는 약을 먹으며 관리하지만 거의 항상 어지럽다.


갱년기 증세로 고생할 무렵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빨리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오 년이라고 하니 오 년만 지나면 살만 하겠지. 오 년 지났는데 아직 힘드니 칠 년이면 되려나. 그리고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갱년기 증상이 수그러들고 여성 호르몬이 저하된 몸에 적응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후의 시간은 예전과는 다르다. 나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 아픈 것뿐만 아니라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마치 주사기로 몸에서 진액을 뽑아내 버린 것처럼 휘청거린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의 삼분의 일만 해도 힘겹다. 어처구니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본에서 28년 동안 7만 명의 환자를 치료한 침구사 아마자키 아쓰코는 유독 여성들이 더 통증을 호소하고 늘 어딘가 아프다고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남성들도 갱년기를 겪기는 하지만 여성처럼 한 순간에 호르몬이 끊기지 않고 적응할 수 있는 시기를 두고 저하가 되기 때문에 과도기적 문제에 덜 시달린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여성들에게는 성역할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기인한 '화병'이 있다. 우리나라보다 더 성역할에 보수적인 일본 여성들도 화병과 유사한 증상에 시달리는데 아마자키 아스코는 그 증상들을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설명한다.


자율신경계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균형이 깨지면 심박수 증가, 손발의 냉기, 과민성 대장증상, 수면장애, 만성피로, 무기력 등 다양한 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특별한 병명도 없이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증상을 보면 자율신경실조증에 해당하는 것들이 많다. 여성뿐만 아니라 생체리듬과 어긋난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이 주로 겪는 증상들이다.


아마자키 아쓰코가 '여자는 늘 어딘가 아프다'를 통해서 하는 조언은 특별할 게 없다. 센스 있는 사람 역할에서 내려오고 누군가 언짢음을 떠안으려 하지도 말고 나 자신을 우선시하며 살라는 말이다. 내 몸이 아플 때까지 나를 혹사시키지 말고 적당히 살라는 조언이다. 그게 책 한 권 읽는다고 될 일일까? 그렇게 쉬우면 아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읽는 동안은 조금이나마 환기가 되기 때문이다. 뻔히 아는 내용도 교육받으면 효과가 있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환기는 행동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




딸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는 부모들의 태도에서는 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소연을 해도 들어주고 넌지시 비추기만 해도 알아서 처리해 주는 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딸의 마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살림도 잘하고 아이도 잘 키우며 맞벌이도 하며 시부모에게까지 잘하기를 바라는 남편은 또 어떠한가? 여성의 돌봄 노동을 당연시 여기는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추려다가 보면 어느새 갱년기가 오고 그 과정에 고갈되기 십상이다. 고갈되기 전에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나는 여기까지 할 수 있어. 이게 나의 최선이야. 그리고 그 선은 조금 여분을 남겨줘야 한다. 아파보니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낮추는 게 좋다. 찜찜해도 참아야 한다. 우리는 오래 살게 뻔하기 때문이다. 2024년 대한민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86.6세다. 아껴야 한다. 그래서 아마자키 아쓰코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가 드리는 어드바이스는 '구애되지 말라. 속박되지 말라. 몸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라'입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가지고 온 것은 이 책을 핑계로 오래 아팠고 앞으로도 계속 아플게 뻔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아픈 건 그냥 아픈 거다. 불편하고 생활 리듬이 망가지지만 시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결국은 회복된다. (물론 회복을 못하고 죽기도 한다. 그건 큰 병이니까 차원이 다르다.) 그 회복이 비록 예전의 상태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적당히 사람 노릇 할 수 있을 만큼은 된다. 그러니까 너무 안달복달할 필요 없이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 아프다고 해서 내가 모자란 사람도 아니고 불쌍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아픈 것뿐이다. 몸의 아픔도 마음의 아픔도 마찬가지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고 나쁘면 또 좋아지고 좋으면 나빠지기 마련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나무가 새순을 틔우고 무성한 잎을 자랑하다 황갈색으로 물들면 떨어트리는 것처럼 말이다. 거의 항상 컨디션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다.


아프면 잠시 멈춰서 기다리자. 나이 든 사람의 장점은 이 기다림에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이 있으니까. 끝날 것 같지 않던 일도 마침내 끝나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맥 놓고 무작정 기다리라는 것은 아니다. 아프면 당연히 치료를 위해 공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 과정에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무릎이 꺾이고 좌절하는 날이 없지 않다. 지난여름 아침마다 병원에 들러 수액으로 항생제를 맞고 출근하는 길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날이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럴까 싶었다. 세상 가장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왜' 따위는 없다.


너무 힘들 때는 숨을 깊이 들이쉬어 보자. 들숨은 교감 신경을 날숨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한다. 4초 들이쉬고 7초 멈춘 뒤 8초 내쉬면 자율신경계가 안정을 찾는다. 흐트러진 마음이 다시 한 곳으로 모이면 일어설 의지가 생긴다. 물론 신경안정제를 먹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동안 '크레바스 건너기'를 읽어주시고 하트 눌러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렇게 이번 크레바스를 건넜습니다. 건넜으니 조금 더 긍정적인 시기를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브런치 북 제목은 '아프지만, 오래 살고 싶습니다'로 정했습니다. 꺾이기 전에 오래 살고 싶은 이 마음 여기저기 모아 놓고 힘들 때 꺼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브런치북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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