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시리즈 정복기 (1)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2막의 부조리극이다.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배경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눈다. 불만을 이야기하고, 목을 매려는 시도를 하고, 나무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저 '고도'를 기다릴 뿐이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도가 누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고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을 때는 고도가 '죽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며 우리는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른 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젠가 죽음이라는 고도를 마주하였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기다림의 자세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도'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보다 '기다림'이라는 행위 자체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성찰을 하게 된다. 디디와 고고가 고도를 기다리며 그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도가 구원이든, 희망이든 결국 완벽하게 채워질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바라는 고도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자세가 결국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디디는 나무의 변화와 소년을 기억한다.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며 늙어가는 자신과 계속되는 맹목적인 기다림에 괴로워한다. 그렇지만 디디는 그 속에서 소년에게 끊임없이 고도를 본다면 나를 만났다고 전해달라 말하며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고도와의 만남에 가까워질 내일을 기약한다. 우리는 어제의 과오와 그릇된 역사를 기억한다. 기억해야만 한다. 어제를 인지하고 견뎌내고, 내일을 기다려야만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과 고통에 따른 성찰성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성찰적 근대화'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기존의 산업 사회에서의 발전은 환경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예측 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야기했다. 벡에 따르면, 이러한 위험 사회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사회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성찰성'을 가져야 한다. 성찰은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벡의 성찰적 근대화는 우리에게 고도를 향한 길을 제시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성찰하고, 고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고도는 준비된 자에게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 모른다. 누구도 럭키라는 배역에 박정자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지만 결국 배우가 직접 손을 들어 완벽하게 여성 럭키를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