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고찰

고도 시리즈 정복기 (2)

by mony
고도 시리즈 정복기 (2)


"기다리는 게 우리 일이야. 그게 최선이야"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이하 고기기)>는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를 재해석한 연극이다. 지난 12월 1일, 추가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막을 내렸다. 추상적인 대사가 난무하는 원작을 어려워하는 일반 관객들에게 <고기기>는 훌륭한 재해석극이다. 두 주인공의 속 시원한 대사들이 관객의 속을 뻥 뚫어주면서도 '기다림'이라는 원작의 철학적 메시지를 깊이 있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기>는 주인공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대역 배우인 '언더스터디' 에스터와 벨이 무대에 설 기회를 기다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은 언더스터디의 특성상 배우가 공연 중 사고로 대체되어야 할 상황이 와야 무대에 오를 수 있다. 무대 뒤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두 배우는 예술과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에스터는 벨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빙자한 훈수를 두며 '순간'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순간을 잡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의 연기 철학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부조리극보다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연극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질 찰나, 이야기는 혼란스러워진다. 이러한 스토리라인은 사실 그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런 부조리극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과 가장 가까운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 세대론과 '감수'의 의미


부르디외는 사회를 '투기장'으로 표현하며 개인의 실천은 자유와 의식적인 것보다는 아비투스가 생산하는 체화된 행위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회에서 시간을 능동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자들도 있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자들이 존재한다. 결국, 시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비투스를 통해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지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정한 지위와 같은 객관적인 조건의 부재는 행위능력의 축소로 이어진다. 부르디외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적 실천을 '기다림'과 '감수'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이 기다림은 무언가를 명확히 알고 있는 능동적인 기다림은 아니다. 부르디외가 이야기하는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으로,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들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갇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실업자를 분석하며 그들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대신 운명을 감수하거나, 비현실적 상상에 빠지거나, 요행을 바라기도 한다고 말했다.


'20대 세대론'이 대표적인 감수자들의 예시이다. 기존 청년세대로 대표됐던 586세대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행위했던 본인의 과거를 회상하며 행동하지 않는 현대의 20대를 비판한다. 하지만, 현재의 청년세대는 적극적이어야 하는 행위자로 '발명'된 사회적 범주이다. 청년들이 속한 상황과 실질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 없이 그들을 비판하는 행위는 다분히 청년을 권력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고전 사회학에서 주로 이야기되었던 것들은 '행위'하는 자들이었다. 여성이나 노인 같은 주변적 위치에 존재하는 이들은 이론적 관심에서 배제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행위능력을 감수능력보다 우선시할 경우 활동하지 않는 존재들은 열등하다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견고한 아비투스 속에서 행동하지 않는 청년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이 고도를 꿈꾸고 기다릴 수 없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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