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한 삶, 이야기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리뷰]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by mony
01.39181955.1.jpg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촬영 장소. [위] 인도 라다크 레 람비르 포르 평원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아래] 히말라야 판공 호수 / 사진출처. © IMDb

우리는 왜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적이다. 컴퓨터 그래픽 없이 만들어진 경이로운 영상미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 이유는 '이야기'라는 본질에 있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나누는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할 수도 있을까.


추락하는 인간과 이야기의 힘


영화의 주인공 로이는 스턴트맨이다. 그는 영화 촬영 중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사랑하는 연인마저 떠나버렸다. 절망 속에서 그는 삶을 포기하려 하지만, 병원에서 만난 소녀 알렉산드리아와 가까워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섯 명의 무법자가 악당 '오디어스'를 찾아 떠나는 모험담.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01.39182585.1.jpg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로이는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무법자 중 하나로 투영하며, 알렉산드리아의 상상력을 빌려 점점 더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면서 그는 점점 더 절망에 빠진다. 결국 이야기 속 영웅들을 하나둘씩 죽이며, 자신도 죽음을 택하려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는 필사적으로 로이에게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라고 애원한다.


"그를 살려줘요."


결국, 로이는 삶을 이어간다.

01.39181643.1.jpg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영화는 절망 속에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변화시켜 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야기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는 사람에 의해 완성된다. 알렉산드리아가 없었다면, 로이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있었기에 이야기는 새로운 결말을 맞이한다.


이 영화가 한국의 관객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준 이유도 여기 있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잘 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자본주의는 일정 궤도에 오른 이후에 병폐를 드러내고 있고, 손쓸 수 없이 병들어가는 사회 속에서 젊은 세대는 미래를 기획할 수 없다. 당장 지구의 500년 후를 떠올린다면 '인류의 번영'이라는 키워드보다 '지구멸망'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만남보다는 이별을, 상승보다는 하강의 경험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야기는 삶을 바꾼다

01.39183041.1.jpg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스틸컷 / 사진출처. © IMDb

프랑스의 사상가 리오타르는 현대 사회를 포스트모던이라 정의하며 '에픽'의 종말을 지적했다. 인생을 걸 만한 거대 서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앞선 세대가 모든 걸 이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에 대한 이야기다. 자살을 공동체적 차원에서 조망한 뒤르켐의 이론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연대가 해체되면서 현대인은 더욱 고립되고 허무 속에 빠진다. 더 폴은 이러한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영화'를 말한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오랜만에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더욱 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 모두 이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고 생각하더라도 그 뒤에 살고 싶다는 걸 말할 수 있기를 바랐다. 동시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위로보다, 이 영화 한 편이 더 깊은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https://omn.kr/2ca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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