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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May 08. 2020

나답게 육아 #1. 집에서도 직장처럼 업무분장

부부가 다정하게, 수시로, 마주 앉아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제부와 업무분장은 했어?”


  12월 중순이 넘어서야 출근을 하기로 되어 있던 동생이 조카가 7개월에 접어드는 5월부터 출근을 하는 걸로 계획을 바꾸었다. 제부가 육아휴직을 하고 조카를 보게 되었는데 ‘당분간 내려오지 못할 거 같으니까.’ 하며 동생이 조카와 함께 친정에 내려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에게 네가 출근한 이후, 집안일은 어떻게 나누었냐고 물어봤다. 동생은 “아이만 잘 돌보고 저녁은 준비해 달라고 했어. 청소와 빨래는 퇴근하고 내가 하는 걸로 했고.”라고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는 게 제일이니까.”라고 덧붙였다. 동생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동안 혼자 있는 낮 시간에 천기저귀 빨래하며, 이유식 만들어가며, 저녁 준비까지 다 했던 걸 알고 계셨던 친정엄마는 “너는 다 했잖아!” 하고 말씀하셨다. 엄마 팔이 안으로 굽어 딸은 살림과 육아하며 고생했었는데 직장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와 그 많은 천기저귀 빨래며 청소할 생각을 하니 안타까우셨나 보다. 엄마에게 눈짓을 하며 동생에게는 “그런 것도 생각하고. 잘했네. 그래 해보고, 둘 다 해보고 할 만큼, 양보할 수 있는 만큼 잘 정해봐.”라고 말했다.

  동생에겐 덤덤한 듯 말했지만 난 내심 놀랐다. 동생이 출근 이후의 일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도 했다. 동생이 조카를 잘 돌보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동생이 살림과 육아의 업무분장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계획했던 것보다 빨리 육아휴직을 종료하고 출근을 하게 된, 여느 직장여성들과는 조금 다른 입장 차이 때문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동생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출산을 했기 때문에 직장의 힘듦도, 전적으로 육아의 책임을 지고 아이를 보살피는 것의 고달픔도 알고 있었다. 본인이 원해서 육아휴직 도중 다시 출근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기 때문에 일의 무게를 잘 따져 현명하게 배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제 역할이 바뀌는 만큼 동생과 제부도 각자 가진 생각이 바뀌거나 또 다른 어려움을 당면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둘 다 회사일과 아이를 돌보는 일을 각자 해 보는 만큼 잘 조절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동생이 기특하게 느껴졌던 것은 나는 그러지 못했던 아쉬움이 커서이다.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는 출산으로 인해 한 사람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모유수유를 했던 내가 그만두는 것이, 승진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회사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사내커플이었지만 내가 근무했던 곳이 야근이 많았던 것도 내가 퇴사하는데 이유가 되었다.

 남편은 내가 집에 있으면 아이 키우는 것과 집안일을 할 것을 기대했고, 나는 아이를 돌보러 직장이 아닌 집으로 출근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살림이 아니냐고 했고, 난 내내 안아달라는, 돌아서면 모유 수유할 시간이 되는 아이를 두고는 내 밥도 한 끼 제대로 못 먹는다고 소리쳤다. 나도 처음 겪어보는 일의 힘듦, 분명 둘이 함께 임신을 결정하고 아이가 생겼고,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 같은 억울함, 제대로 자지 못하고, 충분히 먹지 못해 쌓이는 피로, 개수대 가득 쌓여가는 설거지와 세탁기 앞 작은 동산을 이루곤 했던 빨래가 뒤죽박죽 뒤섞여 분노가 되어 내 가슴을 컥컥 눌러오는 듯했다.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아이와 지냈던 그 시간이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 싶어 지난 사진을 찾아보니 매일매일이 이벤트였다. 아이의 장난에 스파게티 면이 온 주방에 다 흩어진 사진, 내 곁인 주방에서 놀다가 주방 하부장을 열어 파스타 소스 병을 잡아당겨 깬 사진도 있었다. 간장이 다 쏟아진 것도. 씻어 놓은 반찬 그릇이 왜 거실 TV 받침대에서 나왔을까. 화장실 화장지가 둘둘둘 풀려 있는 사진, 애는 얼굴에 크림이 군데군데 묻히고 있는 사진도 있다. 기억났다. 이때 애가 얼굴보다 바닥 장판에 크림을 발라 맨발로 다니다 미끄러질 뻔했지. 일회용 물티슈를 쓰지 않으려 응가하고 나면 바로 씻겼던 대야와 전기주전자가 방 안에 놓인 사진. 숟가락질이 미숙해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때면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심지어 매 끼 만들어야 했던 이유식, 내가 아끼던 오카리나를 산산조각 낸 사진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한 발만 물러서면,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내가 치워야 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조금 더 쉽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를 돌보고, 치워야 했던 당사자라 웃기는커녕 매 순간이 울음이었다. 작은 바람이 불어오는데 가지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온 나무가 뿌리 채 흔들리는 꼴이었다.

 많이 웃지 못했다. 아이가 온전히 나만을 바라던 그 시간 나는 아이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기보다는 모유 수유를 하고 나면 그다음 이유식 만들 생각을, 응가하고 나면 쓰레기봉투 정리할 생각을 했다. 이유식을 먹이면서 눈을 맞추며 기특해하기보다는 흩어지는 밥알들을 치울 생각에, 옷을 갈아입히고 세탁물을 정리하는 사이 안아 달라 우는 아이를 어찌 견디나 두려웠다. 가끔 몸이 아플 때면 아이의 실수 아닌 실수에도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소리 지르기도 하고 그런 내가 후회스러워 울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애를 쓰면 쓸수록 나는 잘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의 나는 아이에게 때 되면 밥 주고, 기저귀 치우고, 재우는 기계 같은 엄마였다. 분명 손등이 다 트도록 혼자 아등바등 애를 쓰며 살았지만 내가 잘하려고 노력한 그 시간들이 과연 아이에게는 어땠을까? 아이가 한 살, 두 살 그리고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정말 중요한 것은 눈 맞춤이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내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당시의 내가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이 깨진 유리 파편처럼 마음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은 순간이면 파편들은 튀어 올라 독설이 되어 나도 찌르고 남편도 찔렀다.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참 많이도 싸웠다. 싸울 때마다 내 입에서 나왔던 말은 “살림과 육아는 별개”라는 말이었다.

 ‘완벽하게’ 잘하고 싶었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싱크대, 늘 햇살 냄새를 품고 있는 것 같은 수건, 토실토실 잘 크는 아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웃어 줄 수 있는 여유를 바랐었다.  언젠가 사촌언니가 집에 왔다가 언니에게 이모가 되는 나의 친정엄마에 대해 말했었다. 이모부가 퇴근할 즈음엔 나와 동생을 목욕시키고 머리를 새로 묶어 주더라며. 나 역시 기억 속 어린 시절엔 엄마와 매일 청소를 했었다. 그래서 고작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도 일상이 버거운 내가 이상한 걸까, 부족한 걸까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어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거라는 걸 남편은 모르는 걸까 원망했었다. 정말 모르는 걸까? 주말에 집에 있으니 알 텐데, 손 위에서만 놀려고 하는 아이, 움직임이 커지고 행동반경이 커질수록 저지레가 많아지는 아이. 나는 그때 남편이 ‘알면서.’라고만 생각했다. 그 사람이 정말로 모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남편이 내가 처한 상황을 모를 거라고 믿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할 거 같다. 나는 그가 회사일 외에 모든 일은 나에게 넘겨두고 자기 일신 하나만을 위하며 산다고 믿었다. 잘못된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확고해졌고, 사실처럼 굳어졌다.


  얼마 전 포털 메인화면에 노출되던, TV 프로그램의 짧은 영상을 보았다. 배우가 외적인 조건으로는 나무랄 데 없다고 보이는 사람과 결혼 후, 육아 중인 모습이 나왔다. 독박 육아라는 말에 소아청소년 클리닉 원장은 왜 남편에게 힘들다는 말을 못 하냐고 물었다. 배우는 남편이 “너만 애 키우냐”했다고 한다. 영상을 보던 내가 괜히 욱해선 남편에게 따지듯 물었다. “당신 민이 어릴 때 왜 그랬어? 3시까지 집 다 치워놓고 있으면 4시 30분 유치원에서 돌아와 저녁 7시까지 놀면서 거실에 온갖 장난감을 어질러 놓는 아이는 생각 못하고 왜 집이 이러냐고 말했어?” 했다. 집 치워놓고 돌아서면 또 아이가 어질러 놓는 것이 아이 키우는 집의 일상인데, 좀 도와주지 그랬냐고, 왜 아이를 키우면서 살림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냐고 했다. 남편은 “다들 그렇잖아.”라고 대답했다. 어머니 세대가 그렇게 많이들 사셨으니까.


 살림과 육아 두 가지 모두를 언제나 육아 잡지나 리빙 잡지에 나오는 박제된 한 컷처럼 해 놓을 수 없다. 최소한 나에겐 그랬고, 지금도 역시나 그러하다. 지난 시간을 생각했을 때 아쉬운 부분은 두 가지 모두를 그림처럼 완벽하게 해 낼 수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좀 더 빨리 받아들이고 인정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이룰 수 없는 목표점을 향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힘들어하기보다는 나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잘 해낼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목표점을 세웠어야 했다. 그리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대는 부부가 함께 생활을 한다는 전제하에서는 일차적으로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보살피고 당장 그때그때의 행동에 반응하기 바빠서 우리가 살림이라고 말하는 청소나 빨래, 집 정리, 식사 준비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고, 수고스럽겠지만 이런 부분을 좀 나눠서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먼저 나서서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내가 차분히 그리고 꾸준히 도움을 부탁했다면 좋았을 거다. 부모 세대는 주로 엄마가 다 해왔으니까 그에 비해 못하고 힘든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이는 두 사람의 결정으로 우리 곁에 왔는데 왜 나는 주된 양육자이며 남편은 ‘도움을 주는 보조자’인 것이 당연한가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이며 현명하고 분명한 협조와 역할 나눔이 필요했다. 그랬다면 나도 그도 덜 아프게 그 시간을 지나왔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함께 사는 생활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함께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이해와 공감을 기초로 한 일의 분배라고 생각한다. 무릎을 맞대고, 자주, 다정하게 그렇게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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