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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Sep 21. 2021

나답게 육아#15. 아이의 생일 주간을 제정하며.

내 축하가 네 마음에 닿기를

  아들은 연 중 선물을 받는 날이 정해져 있다. 설, 추석, 크리스마스, 어린이날, 축일 그리고 생일. 수시로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하는 게 아이인데 아들은 딱 정해진 날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엄마의 말을 잘 따라준다. 물론 아이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지갑 잘 열리는 남편의 비공식적인 선물은 간혹 있지만. 아무튼 이렇게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라 그런지 아이는 여름을 지나면서부터 무척이나 설레어한다. “와! 이제 한 달 남았어요.”라고 주어 없이 말할 때, 눈치가 없고 무감각한 나란 엄마는 “뭐가?”라고 되물어 아이의 기대감을 김새게 한 적도 있다. 그랬던 내가 올해는 아이의 생일파티를 했다. 


 며칠 전 야채를 사러 동네 야채가게를 가면서 아이가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아 일부러 데리고 나갔다. “엄마 혼자 장바구니 들고 오려면 힘드니까 좀 도와줘.”를 이유로. 내려간 김에 다니는 야채가게보다 조금 더 먼 곳의 약국에 들러 진통제를 사서 나왔다. 그 약국 앞에 있는 야채가게 물건은 어떤지 쓱 살펴보는데 아이가 “고구마 줄기가 있어요.” 한다. 아이는 고구마 줄기를 좋아한다. 정말 몇 줄기 안되어 보이는데 사천 원이나 했다. “한 단에 오천 원이면 사는데 저건 너무 비싼데?” 하고 속삭이자, 아이는 “그래도 직접 껍질 벗기는 것보단 낫잖아요. 설마 작년 제 생일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라고 한다. 아. 그랬지. 작년 아이의 생일. 10살의 생일을 맞은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해주겠다며 고구마 줄기를 사 온 나는 결국 그날 밤 10시까지 고구마 줄기를 깠다. 저녁을 먹고서도 줄어들지 않는 수량에 남편과 아이를 불러 셋이서 허리가 아파 끙끙거리면서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별 내색 없는 아이라 그걸 기억할 줄은 몰랐다. 일 년이 지나 아이의 입을 통해 들으니 아이가 서운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생일은 미리부터 신경을 쓰자 생각했었다. 생일상에 뭘 차려주지? 미역국, 나물, 불고기, 잡채, 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더라? 주방 살림을 잘하는 편도 아니고 손도 느려서 집 앞 반찬가게의 힘을 빌려볼까 생각도 했으나 일회용품 쓰레기를 만들기는 싫고, 여러가지를 사면서 용기 가지고 가서 담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자니 장사하기 바쁜데 성가시게 하는 사람이 될까 싶어 망설여졌다. 결국 생일 전날 미역국과 나물 두 가지를 해 놨다. 불고기는 냉동실에 얼려뒀던 밀키트를, 잡채는 스티로폼 상자 없이 집에 배달해주는 한국야쿠르트 밀키트로 당일 날 만들기로 했다. 전은 집에 있는 재료로 두부전을 만들고 허전한 상은 아이가 좋아하는 양배추를 쪄 채우기로 했다. 아이의 생일 전날은 강의하고 들어오는 길에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와 야채를 사 왔고, 계획했던 메뉴 세 가지를 만드는 것은 목표 달성을 하였다. 비록 맛은 많이 아쉬웠지만. 그리고 생일 당일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그 주는 생일날 빼고는 모두 강의가 있어 새벽에 알람을 맞춰뒀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는데 ‘축하는 뭘로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별다른 축하를 해 본 적이 없다. 마음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밥을 사주거나 축하한다고 말을 하는 게 다였다. 사실 그것 이 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갑자기 ‘내가 하는 축하’가 아니라 ‘아이가 좋아할 축하’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니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옆집 친구가 핼러윈 파티를 준비해 아이들을 놀게 하던 것, 친한 선생님네 집에 갔을 때 졸업식을 마치고 오는 쌍둥이 아들들을 위해서 선생님과 막내딸이 거실 한쪽 벽에 붙어 있던 축하 문구, 그리고 친정엄마가 작년 내 생일에 생일 상에 올릴 반찬들을 반찬통 하나하나에 담아 보내오셨던 것까지. 몰랐던 걸까? 느끼지 못했던 걸까? 축하를 할 줄 몰랐다고만 말하기에는 그간 나 역시 주변에서 받아온 과분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는데. 무심히 넘길 땐 남이 주는 것도 크게 보이지 않았는데 의식하고 나니 참 감사한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중엔 효율성과 합리성이 있는데 쓰레기를 만들기 싫어하니 한번 쓰이고 버려지며 대부분 재활용도 되지 않는 파티 장식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다. 

 아이의 생일날 아침. 아이 마음에 가 닿을만한 축하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내 축하가 최소한 지구에 해가 되지는 않을 방법을 잠시 고민하였다. 크리스마스에 쓰려고 오래전 샀었던 알전구를 꺼내어 가랜더처럼 벽면에 붙였다. 그리고 뒷면에 프린트가 적은 이면지를 골라 앞면에 “생일을 축하해.”라고 프린트하고 글자에 하트를 그렸다. 풍선을 몇 개 달려고 했는데 도통 벽에 붙지를 않아 하나만 붙이고 생략했다. 그리고 아이를 깨웠다. 겨우 겨우 일어난 아이는 반짝거리는 거실 벽과 식탁 앞 벽, 자신의 이름이 붙은 생일 축하 문구를 보고는 배시시 웃는다. 

“이걸 엄마 혼자 다 했어요?” 

“그럼, 너 일어나서 기분 좋으라고 엄마가 새벽에 붙였어. 생일 축하해.” 

 학교 다녀오면 이번 생일에 먹고 싶다고 해서 주문한 떡 찾고 잡채도 해서 생일 파티하자 하니 여느 때보다 더 신이 나서는 씩씩하게 밥도 먹고 학교도 잘 갔다. 저녁엔 단 둘이서 생일 축하 파티를 했다. 해피버스데이라고 되어 있는 초를 사서 떡에 꽂고 촛불을 켰다.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사진도 찍어 남편에게 보내줬다. 아이는 연신 방실방실이었다. 이 어설픈 엄마 솜씨에도 환호하며 야무지게 잡채를 먹으며 엄지 척을 한다. 한국 야쿠르트가 잡채 맛집이었네. 자기 이름이 붙은 축하 글은 언제 뗄 거냐고 물어서 일주일은 생일 주간으로 엄마가 제정했다고 말했다고 하니 으흐흐하고 웃는다. 그날 밤,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를 벗는 나에게 다가와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낳아주셔서 고마워요. 나는 엄마가 나의 엄마라서 좋아요.”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드물게 아이의 돌잔치도 안 했던 나다. 아이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는 별개로 정말 지나치게 쉽게 지치는 체력 때문에 최소한의 것만 하고 살았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환경오염을 생각하는 나도 옳다. 그리고 축하를 주고받는 시간을 아이의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나도 옳다. 사랑하고 있음을, 네가 사랑받고 있음을 그렇게 알아가길. 사랑을 주며 나도 사랑을 깨닫는다. 네가 나에게 와 준 날.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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