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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Apr 25. 2023

나는 왜 그녀들을 엄마의 자리에 앉혔던가.

지나간 모든 그녀들에게 미안함을 담아. 

  도서관 수업을 듣고 있다. 인연이란 게 이런 걸까? 마흔 전에는 우습게 여겼던 말들이 마흔 하고도 넷이 되니까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처음 만남은 선생님이 만든 카드로, 두 번째는 선생님과의 일회성 줌 수업에서, 세 번째 만남이 도서관이었다. 무심히 지역 도서관에 예정된 프로그램을 보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 내가 아는 그 이름이 맞는지 수업계획서를 통해 재확인하고서 나는 스케쥴러에 등록한 체 수강 신청 날을 기다렸다. 정말 빠르게 마감되었던 그 수업. 그 걸 접수하는 데 성공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은 이 수업을 듣느라 돈 벌러 가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내게는 이 수업은 교재비 5천 원만 내면 되는 수업이 아니라 (최대로 잡는다면) 10만 원씩 11번의 수입을 포기하고 가는 수업인 셈. 


  그림책을 매개로 하는 심리학 수업 "그림책으로 독서치유". 어제는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수업이 어떻냐고 물어보시는데 가고 싶은 데 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고 했다. 좋은데 괴롭고,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일요일부터 책가방 챙기느라 마음이 부산하다.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어떤 날은 말개진 마음으로, 어떤 날은 견딜 수 없는 무거움으로. 그런 시간을 거치며 '아~' 하고 알게 된 것도, 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너저분하게 남은 찌꺼기들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 전에는 선생님이 숙제를 내셨다. 내가 세상에 온 사명을 생각해 보라는 거였다. 아무 말 대잔치를 하듯, 툭툭 던지듯 적다 보면 결국 나와 남을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어떤 것이 나온다고, 그것이 진짜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란 인간은 도통 찾아봐도 그런 게 없는 거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났다. 그래도 떠오르는 것이 없고 나란 인간의 형편없는 모습만 남는 거였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는 '나'를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나쁜 ㄴ이었던 거다, 내가. 

'어쩌지? 선생님이 카톡으로 보내보라고 하셨는데 어쩌지?' 고민하다가 화요일 아침 도서관 입구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께 고발하듯 내 이야기를 했다. 말을 하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선생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쁜 년인 거 있죠. 친구가 잘 되는 게 배가 아프고요. 친구가 아이와 잘 지내는 것도 싫어요." 선생님은 '하하'하고 호탕하게 말씀하시려다가 내가 그냥 그걸 찾은 정도가 아니라 괴로움 속에 있다는 걸 아신 듯 "그랬구나."라고 하셨다. 선생님 제가 사명이 없어서 그렇게나 흔들리며 살았나 봐요 하자 더 찾아보자라고 하신다. 

못된 년, 니가 이러니 사람이 없지. 나쁜 년 니가 사람이니. 그 뒤 며칠을 더 이렇게 앓듯 했다. 선생님은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잘 다독이며 다정하게 찾아보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발견한 '나'를 혹독하게 나무랐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 꼬라지인가?"를 고민하다가 동생네 갔다가 내려오신 친정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알았다. 그냥 알아졌다. 언제나처럼 편한 척 하지만 묘하게 불편한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내가 그간 그렇게나 다른 여성들을 쉽게 좋아하고, 우상화하고,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 다가가지 못하고, 결국엔 관계를 끊어냈던 이유를. 나는 그녀들을 친정엄마로 삼고 싶었던 거였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아마도 엄마도 나를 사랑하셨을 테지만 내가 받고 싶었던 만큼은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엄마에게 과연 딸인가?라는 생각을 했고, 늦은 사춘기를 보냈던 대학시절 아빠에게 말씀드린 적도 있지만 자식의 정체성과 관련된 저 질문에 나의 아빠는 부인에게 서운한 남편의 심정만 이야기했더랬다. 아이를 낳고서 부모님을 대놓고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게 십 년이 넘었으니까 이제 그건 그만. 나와 나의 부모님은 좋은 상성이 아니었던 거다. 전적으로 나의 문제도, 전적으로 부모님의 문제도 아닌, 우리 선생님의 표현대로라면 아마도 사주팔자. 문제는 나는 현실적으로 육체적으로 엄마가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엄마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어릴 때부터 친구도, 선생님도,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나는 요구했던 거였다. 그들이 나의 엄마가 되어주길. 누구 한 명이라도 부디 나의 엄마가 되어 주길. 그래서 다른 친구, 다른 학생, 다른 직원, 다른 구성원이 아닌 나를 가장 예뻐해 주길, 나를 보듬어주길. 끊임없이, 그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끊임없이 갈구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 내가 15살이었다면 친구도 15살이다. 갠들. 오히려 다른 친구와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눈을 흘기며 삐져 되는 내가 부담스럽기만 하지. 몇 번의 그런 경험으로 내 전략은 바뀌었었나 보다. 급 착한 딸, 뭐든 맡겨 놓으면 믿을 수 있는 딸의 포지션을 취했다. (허, 참, 나 적으면서도 어이가 없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나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엄마랑 친하게 지내는 법을 몰랐다는 거. 그러니 어딘가에 가서든 힘이 있고 마음이 넓거나 포근함이 있는 여성이라면 잘 보이려 노력해 놓고도 그들이 다가오면 나는 뒷걸음질 쳤다는 거. 그리고 나와 그녀 둘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이 끼이면 나는 '또' 애정의 순위에서 밀릴까 봐 불안감이 시샘과 질투로 나왔고 혼자서 그 난리를 치는 나를 내가 못 견뎌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숨어버리기의 반복이었다. 알고 나니 보이고, 보이고 나니 적을 수 있으며, 적고 보니 참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하며 지나간 모든 그녀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어제 전화 온 선생님께는 전화 통화라서 이걸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고 짧게 말씀드렸다. "제가 왜 그 친구를 좋아했냐면요. 엄마로 생각했나 봐요. 그런데 또 원하지 않는 장녀 자리잖아요?" 거기까지만 말씀드렸어도 선생님은 충분히 아신 것 같다. 관계를 좋아지게 하는데 우리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를 알아주는 데 있다고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그랬구나.' 해주라고 하신다. 그랬구나. 내가 그래서 그렇게나 사랑받고 싶은데 또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른척하며 거리를 벌렸구나. 그랬구나. 나는 엄마에게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참 컸구나. 내가 그런 마음이었구나. 


 힘이 좋은 날은 '그래그래 괜찮아.'가 잘 되고 힘이 빠진 날은 억울함이 훅 올라온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간의 모든 방법은 실패전략이었다. 같은 방법, 같은 패턴을 사십 년 이상 지속한 나는 도대체 얼마나 힘이 센 건가. 그 에너지를 내게 돌리면 나는 조금 더 빨리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제는 방법을 바꿀 순간. 

사명에서 시작해 나의 인간관계 고민을 찾아냈다.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회피했지만 결코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 나를 칭찬한다. 뭐든 부글부글 끓어야 불을 끌 때가 온다. 이 주를 잡고 고민하자 그간 나를 묶고 있던 매듭을 하나 풀어냈다. 잘했다. 잘했다. 애썼다.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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