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배우러갔다가 ‘나’를 알게됐다
어느덧 회사를 다닌 지 3년 차. 현실과의 타협 끝에 입사한 첫 직장입니다. 입사 당시는 정말 나에 대해 잘 안다고 당당히 착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연한 결과로써 인생의 회의감과 심지어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까지 왔습니다. 밤마다 운 적도 많았습니다. 눈꺼풀이 묵직해지도록 긴긴 생각 끝의 결론은 '자업자득이다'였습니다. 그동안 내 인생에 대한 어떤 비판의식 없이 나의 모든 면을 비호, 합리화하기 바빴고 남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곧 나의 가치임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방황 속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그때부터 일기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제 인생에 마지막 일기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만) 쓰기만 해서는 제 인생에 아무 일도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떤 액션을 취할 건데?'라는 물음이 던져졌습니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시간, 돈을 투자해서 내가 쳐다도 보지 않았던 것들, 내가 평소에 관심 있었던 것들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 봤습니다.
그 여정은 패션디자인학원에서 시작됐습니다. 한 달에 오십만 원이라는 거금을 써가면서 말이죠.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이면 지하철로 30분 거리를 가서 장장 6시간씩 수업을 들었습니다. 난생처음 옷 스케치, 재봉틀 그리고 가봉을 해보았습니다. 유명한 브랜드의 패션쇼를 보며 나만의 쇼를 열면 너무 재밌고 설레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노동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보이는 건 보이는 것일 뿐 해보지 않으면 절대 현실을 알지 못하는 법이죠.
패션디자인을 배워보고 싶어서 간 것이었지만 저에게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은 선생님과 대화였습니다. 선생님은 패션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 저와 대화를 해보면서 저의 말투, 화법을 파악하시더니 저라는 사람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나에 대해 들어보니 신선하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매 시간 던진 물음은 집에 가서도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왜 나는 세상에게 그런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았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까지 들어가서 마치 옷 하나하나를 벗기듯 나의 사고 체계가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습니다. 한번 머리를 비우고 백지장을 만들어 세상이 주입한 생각이 아닌 '나'의 생각만 남겨보니 진짜 나라는 사람은 작디작은 콩알만 한 존재였습니다.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파헤쳐보니 스스로에게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됐습니다. 내가 나를 이때까지 너무 모르고 방임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선생님은 제자를 한두 번 울려본 게 아니라는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우물 안에 있었던 저를 꺼내준 은인이고 패션디자인학원에 다닌 것은 제가 살면서 스스로 선택해서 한 것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습니다.
아직 스스로의 틀을 깨기엔 갈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우물 안에서 나왔을 때의 그 행복감을 알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힘들 때, 주변에 휘둘릴 때 스스로에게 외우는 만트라가 있습니다. '잠깐만 잠깐만 다 저리로 나가봐. 너네들이 하는 말 다 오케이. 이제 내가 판단할 차례야'. 급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나의 진실된 생각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매일 가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 방향을 잃은 듯 헤매는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죠. 그럴 때 눈 한번 딱 감고 스스로를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보세요. 예상치 못한 세상이 펼쳐질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