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내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나 괴로움을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블로그에도 이왕 소통하는 거 기분 좋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 거의 행복하고 잘 지내는 것만 적어온 것 같아서 괜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내가 최근에 겪은 불행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나와 남편은 계획했던 대로라면 지금쯤 더블린에 있는 남편의 할머니 댁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6월에 남편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약 1년 동안 요양원에 계셨는데, 그동안 우리에게 할머니 집에 지내며 관리해달라고 하셨었다. 우리는 할머니가 돌아오실지도 모르는데 집을 차지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지금 사는 동네로 왔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언장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와 이것저것 가족들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약 1년 정도는 할머니 집을 바로 팔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집이 비어있는 동안 할머니도 원하셨던 것이니 월세도 필요 없고 할머니 집에 우리 둘이 들어가서 관리하며 1년 동안 지내라며 모든 가족들(이모 셋, 삼촌 하나)의 동의하에 9월 초에 이사 가는 것으로 결론지었었다. 우리는 살고 있는 월세집 주인아저씨에게도 연락하고 새로 산 침대 매트리스 배달을 예약해놓았고 할머니 집에 들러 물건 정리도 틈틈이 하며 “지내는 동안 돈 바짝 모아서 나올 때쯤 우리가 원하는 집 살 수 있겠다.” 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특히 남편은 더블린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과 자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시어머니가 울면서 전화가 왔다.
남편의 삼촌이 갑자기 반대를 한다고. 1-2개월 사는 건 괜찮지만 1년은 싫다고 하셨다고 한다. 덩달아 큰이모도 반대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너무 미안하다며 엉엉 우셨다. 우리는 다급히 집주인 아저씨에게 연락을 하고 백화점에 주문해놓았던 매트리스도 취소했다. 그리고 남편은 많이, 정말 많이 실망했다.
남편은 새 매트리스에 누워서 잘 생각에 잔뜩 기대했었는데.. 추억이 많은 할머니네 동네에서 함께 1년간 살 생각에 행복했는데.. 이상하게 너무 잘 풀리고 행운 같은 일이라고 느끼긴 했어.. 하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3개월 뒤 이 불행은 행운으로 바뀌었다.
창문이 작아서 햇볕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지금 집에서 1년 더 살고 싶지 않고 혹시 모르니 은행에 모기지 대출 신청을 해보자고 남편을 설득해서 힘든 서류 준비 끝에 신청한 것이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살았더라면 1년 정도 돈은 모을 수 있었겠지만 모기지 대출 준비를 해서 ‘우리 집’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은 좀 더 먼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때쯤에는 아이가 생겨서 대출받는 것이 더 까다로워졌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굳은 의지로 노력하니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어버렸다.
생각나는 우리의 전화위복(轉禍爲福) 스토리는 한 가지 더 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하던 시절이었는데 우리 인생의 빌런이라고 생각하는 아저씨의 집에 방을 구해서 들어가 있던 시기이다. 우리는 세입자일 뿐인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요구하고 심지어는 남편 험담을 나에게 하는 등 너무 괴롭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서 한창 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이력서를 돌리며 일을 구하러 다닌 지 두 달이 다 되어갔었다. 남편이 영원히 일자리 못 구할 것 같다며 괴로워하던 중 그 집에 있던 또 다른 세입자와 친해지면서 남편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남편 일하던 곳에서 만난 친구의 소개로 좋은 집으로 이사도 했다.
괴롭고 견디기 힘든 시간이 지나니 뒤이어 행복이 왔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불행을 잘 견뎠을 때 작고 큰 행복이 이어졌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혹시 지금 ‘나에게는 왜 계속 불행만 오는 걸까’ 하고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행복이 지금 모퉁이를 돌아서 오고 있으니 건배할 준비를 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끔찍하게도 견디기 힘든 시기를 잘 정리해서 보내고 나면 복이 되어서, 행운이 되어서, 행복이 되어서 어떤 형태로든 다가올 거라고 확신한다.
모리사와 아키오 작가의 ‘사치스러운 고독의 맛’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인생은 진자운동과도 같아서 이번에 믿기 힘들 정도의 손해를 봤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도 곱절의 에너지를 줘서 진자가 더 크게 증폭될 게 틀림없어요.”
나는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