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지지 않는다 1

16년 만의 귀향

by 하임

나는 제주도 명예도민


제주도의 가을을 16년 만에 찾았다.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간 날은 2005년 9월쯤으로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았던 날이었다. 외지 사람이 제주도 명예도민증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한다. 제주도청의 공적조사에다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되니 일 년에 극히 소수의 분들만 명예도민증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즈음 제주도가 한참 관광이 시들해져 제주도의 지역 경제가 어려운 시기였다. 도민증을 수령하러 간 날 도청의 관광 담당자가 관광객들도 안 오는데 당시 발효된 성매매 방지 특별법 때문에 술집 언니들(?)이 다 서울로 올라가서 오피스텔 임대 경기도 아작(?)이 나고 세탁소며 택시 아저씨, 동네 미장원들의 경기가 말도 아니게 되었다고 푸념을 했다. 나는 그 당시 그런 제주도의 관광 홍보를 위해 대형 방송 프로젝트를 맡았다. 촬영 장소 잡으려고 정말 많은 곳을 발로 열심히 뛰었다. 그 덕에 도청에서 명예 도민증을 받았다.


하하.... 사실 알코올 분해효소가 전혀 없는 나의 하자(?) 몸도 큰 기여를 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날 도청 높은 분들과 회식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 박카스만 먹어도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정말 술에 약해서, 반은 화류계라고 자부하는 연예 바닥에서 버텨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소주를 받게 되면 1) 눈치를 보면서 건배는 외쳐주고 소주를 입에 대는 척하거나 2) 만약 원샷 파도타기가 벌어지면 재주껏 물과 소주를 바꿔치기한 다음 폼나게 부정 원샷(?)을 연출하면서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술자리 문화가 특이한 높은 분을 만났다. 그 회식 자리에서 제일 높으신 그분은 상대방에게 술을 따른 다음 1) 바로 손목을 잡고 잔을 입으로 이동시키고 2) 다시 손목을 꺾어 소주 한잔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상대방의 입 속으로 털어 넣게 만드는 놀라운 연속 신공을 가진 분이었다. 그날 손발 꽁꽁 묶인 느낌으로 소주 석 잔 꼼짝없이 마시게 되었다가 장시간 구토와 호흡곤란으로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었다. 작가 선생님이 놀라서 119를 호출했고 나는 응급차에 실려 제주의료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사건으로 난 소주 석 잔에 119를 탄 사람으로 알려졌고, 어떻게 남자가 술 석 잔도 못하느냐는 동정(?)도 받았다. 이런 연유로 나는 당시 제주도청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명예 도민이 되고 16년


명예도민증을 받으러 가던 날 나는 좀 큰 기대를 했다. 그전에 울산에서 명예시민증을 받았던 지인께서 기념품으로 금 10돈짜리 황금 열쇠를 받았다는 정보를 들었던 터라 뭔가 괜찮은 거 하나쯤을 받아올 거 같다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아아.. 묵직하긴 했다. 30cm 높이의 돌하르방. 집으로 돌아오던 내내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제주도를 잊어버렸다. 바람이 하도 불어서 미장원 다녀온 여자나 안 간 여자나 차이가 없다는 우스개 소리나 제주도 현지분들과 같이 가니 가성비 갑의 한 때깔하는 회를 내어 놓던 횟집이 외지 사람들만 가니 비싸고 맛없는 관광객 횟집으로 돌변하던 불쾌한 이중성 그리고 폼나게 다녀왔던 서귀포 파라다이스 호텔(지금은 없어졌다고 합니다)의 비싼 방값 등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명예도민증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서랍 속 장지갑에 깊게 찔러 넣은 뒤 곧 난 역마살이 곱빼기로 끼인 사람처럼 유럽, 미국, 일본, 동남아, 남미 등지를 일로 돌아다녔다. 그러다 밧데리가 방전되었을 땐, 차로 가면 강릉, 비행기로 가면 일본 여행을 휴가로 다녔었다. 그런데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제주도가 서 있지는 않았다. 올레 열풍이 일어 전국에서 배낭 있는 사람 치고 제주도를 안 가 본 적이 없는 때도 있었고, 중국 관광객과 중국돈이 넘쳐나서 제주도 애지 간한 관광지는 독 사진 찍을 때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릴 때도 있었고, 연예인들 중에 친환경이나 사회적 이슈 등에 일도 관심 없는 자들이 제주도에 땅 보러 다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릴 때도 있었고, 요로(YOLO) 열풍으로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처럼 번질 때에도 있었다.

이런저런 변화에도 제주도는 나의 관심 밖이었다.


16년 만의 귀향


2020년에 코로나가 왔다. 2015년 메르스 때처럼 몇 달 버티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어림없었다. 모임이 없어지고, 외출이 잦아들었다. 한동안은 심한 공포로 버스조차 탈 수 조차 없었다. 그렇다 보니 여행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렇게 2년이 흘러갔고 있었다. 그 사이 자가운전으로 강화도, 강릉, 영동, 보령, 부산 등을 다녀왔다. 그래도 모잘랐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내 안의 역마살이 심하게 춤춘 것도 아닌데, 비행기가 타고 싶어졌다. 그래서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명예도민이 되고 한 번도 가지 않았으니 16년 만의 귀향인 셈이다.

오랜만에 서랍 속 장지갑에 잘 모셔두었던 명예도민증을 꺼내 두었다. 그리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잡고 차를 렌트했다.

그러다 고민에 빠졌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을까? 친절한 유 선생(유튜브)을 찾아갔다. 아아... 정보가 너무 많았다. 유튜브에서 볼거리 먹을거리를 찾을 때마다 오히려 더 결정 장애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16년 이전의 제주 여행을 소환해 보았다. 등산에 한참 빠져 있을 때는 성판악에서 시작해서 백록담을 찍고 관음사로 내려왔던 한라산 풀코스 내 발로 완주한 적도 있고, 해 질 녘에 서귀포 중문에서 파도타기를 했던 기억도 있었고 그다음은 산굼부리, 승마, 잠수함, 테디베어, 여미지 등등 기억이 났다. 그런데 어느 거 하나에도 임팩트는 없었고, 기억에 따라붙은 메모 역시 한 글자도 없었다. 그래서 2005년 이전의 경험은 재소환 않고,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여행 계획을 잡기로 했다. 3일 동안의 여행이라 거창하게 플랜을 세울 건 아니지만 우선 1) 제주도를 4개 지역으로 나누고 한 지역 중심으로 하루 일정 잡기 2) 역사적 의미나 생태환경적인 의미는 외면하고 인생 컷이 나오는 지역을 방문지로 선정할 것 3) 식사는 말고기, 은갈치, 흑돼지 등등 대표적인 관광객용 음식점은 피하고 한 그릇의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식당에서 하자 등과 같이 간단한 원칙 세 가지를 잡고 2박 3일의 귀향을 준비하였다.


드디어 11월 1일 16년 만의 귀향이었다. 코로나로 난리 중인데도 김포공항과 제주 공항은 여행객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정신없이 공향을 빠져나와 썩 유쾌하지 않았던 차량 렌트를 마치고, 첫날 일정을 시작하였다. 제주공항을 출발하여 비자림을 거쳐 광치기 해변, 섭지코지, 청굴물 등을 거쳐 함덕해변을 마지막으로 숙소로 이동하였다. 둘째 날은 산방산 부근으로 이동하여 산방산 유람선을 타고, 미영이네 고등어회로 점심을 먹고, 카멜리아 힐과 오설록 티 뮤지엄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애월 쪽의 돌염전을 갈려고 했는데 길도 내비게이션이 전혀 만행으로 전혀 다른 곳으로 안내를 해서 저녁 2시간을 고스란히 길에서 보냈었다. 셋째 날은 비밀의 숲, 산굼부리, 사려니 숲을 거쳐 조천읍 오름나그네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하고, 카페 앙투아네트에서 제주 바다를 보다가 비행기를 타려고 했었는데 살짝 아쉬운 감이 있어서 용두암에 갔다가 제주 동문 시장을 한 바퀴 하면서 2박 3일의 제주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함덕 해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나와 제주도의 인연의 증표처럼 소중히 생각했던 명예도민증이 별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비자림 관람료, 산방산 해상공원 이용료 등은 면제를 받았으나, 산굼부리나 카멜리아 힐과 같은 개인 소유의 관광지에서는 아무 힘을 쓰지도 못했다. 음... 다 합쳐보니 7,000원가량. 아.... 작은 돈은 아니구나.

사실 제주 여행을 준비하면서 16년 만의 귀향이라는 타이틀만 커다랗게 붙여보았지, 여행의 참 재미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코로나 시대에 가지 못하는 해외여행의 갈증 해소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주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규슈를 여행할 때 쿠로카와라는 작은 온천마을을 들른 적이 있다. 다 망해가던 시골 온천 마을을 도심의 젊은이들이 정착하면서 그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꽤 특징적인 관광지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현장을 돌아보니 젊은 친구들이 료칸의 경영자나 종업원으로 손님들을 응대하고, 나이 지긋한 분들이 청소나 요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앞으로 우리는 수직의 화살표를 내리고 수평 위에 세워지는 새로운 질서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같은 기운을 받는다. 비밀의 숲에서는 하염없이 밀려들어오는 갖가지 장비들로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인생 샷을 찍어 올리며 자발적인 제주 광고에 몰두하고 있었고, 길 가에 어떤 카페에서는 영업은 안 해도 화장실 문을 잠가두지 않는 넉넉한 배려심으로 고기 국수 덕에 아랫배 급 활성화되었던 늙은 관광객의 비상 상태를 해결해 주었고, 대기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음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는 칼국수 가게의 영업 방침이 맛집이라고 하면 기업형 식당이나 프랜차이즈에 익숙한 도시 사람들에게 맛집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 그래 관의 시대는 갔지! 지금이 민의 시대 한 가운데지 !


다시 제주도다


늦가을 팥빙수 같이 철 지난 우리들에게 제주도란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고 했다. 또한 좋은 바다, 맑은 공기, 신선한 먹을거리 등 그냥 천혜의 선물로만 관광 채워진 복 많은 섬으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던 제주도가 곳곳마다 사는 사람들의 노력과 오는 사람들의 인연으로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많은 섬으로 커가고 있었다. 흔히 연예인들의 열애 인정 보도 자료에 나오는 것처럼 "새롭게 알아나가는 아름다운 만남의 과정"으로 빠져들어가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제주는 과거와 같은 모습인데 내가 나이 덕에 고집을 버려니 제주도가 더 새롭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렇다.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되니 제주도가 더 풍성했다. 산굼부리 또한 16년 만에 방문했다. 억새 물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제주 가을에 푹 젖어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한록지 사슴상 쪽으로 걸어가다 바위틈에서 우연히 표지에 올린 꽃을 발견하였다. 아.... 꽃이다. 그냥 눈으로 볼 때보다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더 이뻤다. 억새들이 춤추는 황량한 바위틈에서 이런 색의 꽃을 찾을 수 있었다니 놀라운 뿐이었다.

이 역시 내가 나이가 드니 눈이 밝아지는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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