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덕수궁-정동-경희궁 살고 싶다
코로나 기간 동안 두 번째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방문에서는 한국과 캐나다 양쪽에서 2주씩 모두 4주를 자가 격리했는데, 이번엔 한국에서만 7일간 자가 격리하고 캐나다에 돌아와서는 하지 않았다. 이제 정말 코로나가 지나가는 것 같다. 다른 변이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회사를 옮긴 지 오래되지 않아 장기간의 휴가를 내기 어려워 2주만 휴가를 냈는데, 자가격리 일주일을 빼고 나니 자유 시간이 겨우 일주일 남짓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곳에 가볼 수 없어서 서울 안에서만 다니는 와중에 정동-경희궁-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곳이 가장 좋았다. 강남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예전에 대체 어떻게 여기로 매일 출근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느린 외국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인 듯.
경희궁에 다녀온 이후로 매일 같이 경희궁 근처에서 살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되는 문제는 역시 집. 오래된 빌라나 아파트 가격도 상당히 높았지만, 경희궁과 덕수궁의 차 없는 거리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집이라면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가장 큰 문제는 직장인 것 같다. 개발자들이 모두 강남과 판교로 몰리는 바람에 강북에는 직장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였고, 그나마 있는 회사들도 강남이나 판교로 옮기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경희궁 근처 살면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면 평일에는 별로 즐기지 못할 것 같고... 광화문 근처에 신문사가 많아 보이던데, 이제 와서 직업을 바꿀 수도 없고. 헤드헌터 분들께 경희궁 근처 회사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려야 하나 싶다.
이번 방문에서 느낀 점은 사람들이 화가 많아 보였다는 것이다. 도로에서도 뭐 별거 아닌데 빵빵거리는 사람들도 많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정신적인 과부하가 심해져서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정도였다. 하긴. 자살률만 봐도 문제는 명확하지. 정말 사회적인 치료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다른 인상적이었던 점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이상한 태도'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는 그간 전화 상담하시는 분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종, 예를 들어 스튜어디스 분들이 지나치게 희생하시면서 업무를 하시고, 소위 '갑질' 혹은 '진상' 고객들 문제가 많았었다.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좋은 방향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게 약간 다른 의미로 이상하게 발전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항공권 변경과 관련해서 항공사에 몇 번 전화를 했는데, 외국인 상담원과는 심지어 가벼운 농담도 하면서 쉽게 일을 처리한 반면, 한국인 상담원은 굉장히 방어적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심지어 짜증을 낸다는 느낌도 받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과 제공받는 쪽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하면 되는 것인데.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한쪽으로 치우진 것을 바로잡을 때 너무 한꺼번에 반대쪽으로 치우쳐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에는 적절한 위치로 가기야 하겠지만, 반작용을 좀 줄일 수는 없는 것일까.
아무튼 이번 방문의 가장 큰 깨달음. 나는 경희궁 근처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