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 윤동주.

일본 하기시에서. 하인즈 생각.

by 하인즈 베커


일본 야마구치 지방에 하기시(県萩市)라는 곳에 와 있다. 시모노세키에서 동쪽으로 120킬로 미터쯤 떨어진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럼에도 이 동네의 역사는 만만치 않다. 이곳은 메이지 유신의 발원지이다.


우리와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몇 가지 관계가 있는데, 두 가지만 살피자면 하기는 일본인들이 '도자기의 성지'쯤으로 생각하는 곳이다. 일본 도자기 산업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그런데 이 산업을 시작한 창조자는 일본인이 아닌 이작광, 이경을 비롯한 조선의 도공들이었다. 관심 있는 분은 "일본 하기의 조선도공"이라는 책을 권한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또 하나는 이곳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어릴 때 부터 오래 살았던 곳이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120년 전 그가 조선의 총독으로 부임해 조선의 황제를 겁박하고, '을사늑약'을 쟁취한 을사년 이기도 하다.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농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이 이 굴욕적인 문서에 연서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이 다섯 명을 '을사오적'이라고 배워왔다.


이토 히로부미는 '식민지의 총독' 정도 수준의 레벨이 아니었다. 그는 1885년 일본에 내각제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겨우 45세의 나이로 초대 총리대신이 된 인물이다. 그는 이후 1909년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안중근의 총격으로 사망할 때까지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선이어야 한다. 일본에 의해 강점당한 후 대한제국은 군대를 해산당한다. 안중군은 이에 의거해 자발적 의병을 조직하며 대한제국의 대안이 되는 공식적인 군대를 창설하는데 앞장선다. 그리고 그는 군인으로써 이토를 총격한다. 그는 체포될 때 러시아 말로 '꼬레아 우라 (대한 만세)' 를 외쳤다. 따라서 안중근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약 25년간 총리대신과 추밀원 의장 등의 자리를 오가면서 늘 권력의 정점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니 이 정도 빅맨을 조선 총독으로 보내야 할 만큼 대륙을 향한 섬나라 일본의 전진욕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자명하다.


오랜 시간동안 일본의 광고와 영화, 소설, 만화, 게임, 음악 등의 컨텐츠를 보아온 입장에서 일본인들은 언제나 섬 밖 세상을 동경한다.그래서 그들은 세카이 (世界)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일본 문화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분들은 모두 동의 하시리라 믿는다.






이토 히로부미의 별장 _ 네이버 블로거 하고지비 사진



하기시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살던 집과 도쿄에서 옮겨 온 별장이 있다. 그가 원래는 귀족이 아니라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이름은 리스케였으며, 히로부미 가문으로 입양된 거고..... 이런 이야기 더 하면 밤을 새울 거 같으니 요점만 말하자면, 이 집들은 현재 이토 히로부미의 박물관 혹은 기념관이다. 지금까지 이 이유 때문에 여러 번 일본을 방문하면서도 하기를 오지 않았다. (사실 후쿠오카에서도 오사카에서도 오기 쉬운 곳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이유 때문에 기차 타고, 버스 갈아타고 여기까지 왔다. 나는 내일 그가 살던 곳에 가 볼 생각이다.


여기에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그를 허얼빈에서 처단한 스토리도 (물론, 이곳에서는 테러와 암살이라고 한다.) 반대로 이토 히로부미가 영친왕을 볼모로 잡아 일본으로 끌려간 자료도 있다고 한다. 담담히 차분하게 살펴볼 생각이다. 어쩌면 이 브런치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전쟁'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토 히로부미와 볼모로 끌려간 영친왕 _ 네이버 블로거 하고지비 사진



이런 '정말 나도 내 마음을 전혀 모르겠는 것 같은 기분'으로 후쿠오카를 출발해 신칸센을 타고도 4시간이나 걸려서 이곳에 도착했다. 피곤해 죽겠는데 일요일 빼고 일주일 내내 <하인즈의 1분 정치>를 연재한다고 덜컥 약속해 버린 덕분에, 뭔가 써야 해서 우리나라 뉴스를 찾아보았다, 다행히 '기분 좋은 뉴스'를 찾았다.


늦어도 백만 년 늦었지만, 이제라도 경찰이 전광훈을 소환해 볼까 한다는 기사였다.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을 보는 만큼 개인적으로는 기분 좋게 읽었다. 그래 한 발씩 가도, 앞으로만 가자.



https://tv.kakao.com/v/452766279

YTN 뉴스



여기까지 쓰고, 게스트 하우스 2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한대 피우러 왔다. 윤동주가 떠 올랐다. 그의 시 '사랑스런 추억'이 나도 모르게.


-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조선의 도공들도.

안중근도.

윤동주도.

이토 히로부미도. 기차타고 멀리 왔지만, 이젠 내 말을 듣고 대답해 줄 사람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


하지만 전광훈씨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한 마디만 부탁한다. 나는 좀 더 젊음을 오래 남기고 싶다. 그러니, 그걸 위해서 당신이 해 줄 일은. 그 일은.



-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뭐라고 쓸까?

담배 한 모금 빨았다.



일본 하기시의 게스트 하우스 흡연장 _ 하인즈 베커 사진.






<하인즈의 1분 정치>인데 너무 오래 읽으셔야 하는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시, 민주주의.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