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좋은 시 쓰는 이야기가 나올 때 시어라고 하는 용어가 등장 하곤 한다. 그러면 시어라고 하는 낱말이나 단어 들이 따로 있는 걸까?
20여년전 내가 등단을 하고 난후 나의 등단시를 같이 근무 하는 한 동료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 동료가 하는 말은 시어 사전이 있는데 이 시어 사전에 나온 낱말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야만 시가 된다면서 내 시는 어떤 시어 사전을 보고 썼느냐고 황당한 질문을 던지기에 그만 픽~ 웃고 말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시어란 시에 사용된 모든 단어들이 다 시어가 아닐까, 그러나 모든 낱말이 시에 쓰여 졌다고 해서 이 단어들을 다 시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여 나름대로 시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아니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려놓고 시어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할까 한다.
시란 일종의 언어 예술이다, 언어 예술이기에 이를 아름답게 다듬어야하고 이 다듬는 방법을 기술이라고 할 때 언어 예술에 대한 비유로 흔히 언어의 연금술사, 언어의 장인(匠人), 언어의 건축 이라는 말들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시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쓰여 지고 있는 언어를 갈고 닦아 구슬로 꿰매는 것을 의미 한다고 할 것이다.
이 언어를 갈고 닦을 때 즉 시어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외연적 언어(denotative language)’와 ‘내포적 언어(connotative language)’라는 용어를 접하게 되는데 외연적 언어란 사전적 뜻으로 쓰일 때, 즉 그 낱말 본래의 의미를 나타 낼 때이고, 내포적 언어란 함축적 의미로 쓰일 때 이다. 따라서 시의 언어. 즉 시어란 정서적 의미나 내포적 의미로 쓰이는 시만의 언어를 가리켜서 시어 또는 시의 언어라고 한다.
2 )이미지
이미지(Image)하면 보통 형태, 모습, 외형 등과 같은 의미의 그림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외연적 언어에서 받아들여지는 의미이고 시에서 이미지라 할 때는 내포적 언어에 의한 심상, 영상 등과 같은 像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풍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음악성이 중시되던 읊은 시에서는 이미지라는 용어가 중요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더니즘이라는 조류의 태동과 아울러 시각성이 중시된 보는 시로의 사조가 바뀌어 가면서 작금의 시의 세계에서는 소위 이미지즘(Imageism)이라고 하는 용어의 등장과 아울러 이미지즘 시인들이 즐겨 쓰고 강조하는 수법이 되었다.
시에 그림을 그려 주되 그 그림이 마음의 그림(Mental Picture)으로 형상화 되는 수법이라 할 것이다.
특히, 사랑, 고독, 그리움, 슬픔 등과 같이 추상적 관념어로써 구체적인 형상이나 색 감각이 없는 언어를 시어로 차용 할 때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을 가져와서 표현 하면 이미지의 실감을 느낄 수 있다.
2. 시어와 이미지 표현의 기법
1) 관조와 침잠
시어의 창출과 이미지를 표현해 나갈 때 시상의 대상이 되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 안목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 일까. 안목(眼目)이란, 뜻 그대로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다. 그런데 이 사물을 보고 분별 하는 견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일반인은 보통 사물을 바라볼 때 자기의 주관, 선입관 편견 등이 개입된다. 그러나 시에 있어서는 이러한 주관 선입관 편견 등이 개입되면 독자가 이미지를 그려내는 상상력을 방해한다고 할까 아니면 한정짓게 한다고 할까, 하여간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서 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시에서의 사물을 보는 안목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입장이어야 하고 편견이나 선입감이 없는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것을 문학에서는 관조라는 단어의 의미를 빌려와서 사용한다. 관조의 국어학적 뜻을 보면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것’ ‘미(美)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일’, ‘지혜로 모든 사물의 참모습과 나아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비추어 봄’ 등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렇듯 시에서의 사물을 바라보는 눈은 관조의 눈이어야 하고 시를 쓰는 화자나 시를 읽는 독자나 모두 시의 이미지와 한 몸이 되는 주객일체가 되고 자아는 그 객체 안으로 동화 되는 경지에 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시에서는 이를 ‘침잠’ 이라 하는바, 관조와 침잠은 곧 주객일체의 상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 관조라 하면 자연 속에 몰입하여 그 일부가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침잠의 경지에 가서는 무아, 망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작 태도는 사물을 순수하게 관조적 입장에서 보는 자세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훈련을 게을리 해서도 않된다.
어떤 목적의식 속에서 현실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보면 그 사물의 순수성을 감지 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비운 마음의 맑고 깨끗한 심성을 유지하고 분수에 맞는 사상을 지녔을 때 그 사물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가령 어느 한 대상을 놓고 시를 쓸 때 첫째 관조적 입장으로 쓰고 둘째 그 대상의 역사성을 보고 그대상의 역사성이 현실 사회에서는 어떻게 비추어 지고 있는가 역사의식과 현실과의 비교를 통하여 역사의식에 반할 때는 이를 순수한 정신 속으로의 비판을, 그리고 누구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객관적 감정 이입 등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3. 맺음말
서당 개 3년이라면 풍월이라는 말 같이 나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단지 시가 좋아서 시를 쓰고 이들과 가까이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그들이 사용하는 문학용어들을 귀담아 들었다가 그 용어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개념을 파악한 후 나름대로의 시에 대한 견해를 노트해 보는 것에 불과 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글 역시 정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허나 문학인이라면 다수가 이러한 견해들을 갖고 있기에 그 통상적 견해를 서술 할 뿐이다.
지금까지 시를 창작 하는 안목이라는 주제로 시어와 이미지 그리고 사물을 대하는 관조와 침잠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와 연관해서 시 한 편을 감상해 보고자 한다.
가구의 힘 /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 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나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 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1991)-
[개관 정리]
◆ 성격 : 성찰적, 관조적, 냉소적
◆시구의 해석
*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여 양심에 가책을 받음.
*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 빈 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 마디 해 주었다.→ 외삼촌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 태도가 냉소적 어조를 낳게 함.
*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 지적인 존재로 보이려는 외삼촌의 허위의식을 지적함.
물건의 사용 가치보다는 교환 가치(가격과 동일한 개념)를 추구함을 보여줌.
* 상심한 가슴을 덮일 때가 있는 법이다 → '추억의 힘'을 지닌 가구의 치유적 기능에 주목하고 있음.
*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 이해할 것 → 시적 화자의 가구론
* 그런 맥락 → 낡은 가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지난날의 삶의 기억(추억)이 아픈 마음을 감싸 줌.
*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 계속 생각해서 결론을 내고 싶어서
* 서글픈 가구론 →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자신의 처지 때문에 '서글픈'이라고 말함.
화자의 가구론이 화자의 처지에서는 스스로의 무능함을 합리화하는 듯도 하기 때문에 가고를 서글프게 바라본다.
◆ 제재 : 낡은 가구
◆ 주제 : 낡고 오래된 가구의 힘 = 삶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주는 힘
낡은 가구를 통해 인식하게 되는 추억(기억)의 소중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졸부가 된 외삼촌에 대한 거부감
◆ 2연 : 오래 된 낡은 가구에 대한 몽상(가구 = 추억의 힘)
◆ 3연 : '나'의 서글픈 가구론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오래 되고 낡은 가구에 대한 몽상을 통해 현실적 무능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물질과 정신을 대립시키며, 오래된 가구가 가지는 추억과 기억의 힘을 노래한다. 그 가구의 힘으로 우리는 삶의 고통과 힘겨움을 치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심사평]
박형준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보여준다는 건 우선 마음 놓이는 일이다. '가구의 힘'은 우리의 살림살이가 사람다운 살림살이이기 위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구심적인 힘에 대한 한 성찰이다. 가구를 통해서 얘기되는 그 성찰은 졸부의 새로 산 가구들을 혐오하면서 낡았지만 세월의 때와 생활의 상처와 따라서 인간적 숨결의 명암이 배어 있는 가구를 칭송한다. 작자는 그것을 '추억의 힘'이라고 부른다.
한 집안에서부터 민족 단위에 이르기까지 공동체가 공유하는 추억은 사실 그 구성원의 삶의 자기 동일성, 역사성과 품위를 뒷받침하는 물증이요 후광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동화된 움직임 속에서 늘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오늘의 삶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상품의 물신화와 그에 따르는 마음의 황폐화를 생각하면 가난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아주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가구의 힘'에 들어 있는 생각과 감정은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사 위원 : 김남조, 신경림, 정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