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창작함에 있어 우선 시의 제재가 되는 대상의 특성을 찾아내고 그 특성을 가지고 전혀 다른 이미지와 메시지로 발상 전환 시킬 때 좋은 시를 탄생 시킨다는 정의 이다.
-이 이론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메타포라는 용어와 함께 원관념과 보조관념 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기법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본다.(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우선 메타포와 원관념 보조관념에 대하여 알아본다.
■메타포(Metaphor)
-'메타포'는 우리말에 딱 이거라고 표현할 만한 단어는 없으므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영어사전에는 수사기법의 일종인 비유로 '은유' '암유' 이렇게 우리말로 번역되지만, 실제의 의미는 뉘앙스가 좀 다르다고 본다. 즉, 메타포는 단지 수사법의 일종일 뿐 아니라 대단히 많이 쓰이는 언어의 광범위한 현상이다. 이를 문학에서는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로 문학에서 구상적 사물을 가리키는 언어가 추상적,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메타포가 된다. 따라서 전의적(轉義的)인 언어는 모두 메타포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은유보다는 보다 더 추상적인 것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상징적이고 함축적인데, 그렇다고 '상징' '함축'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이를 알기 쉽게 국어사전의 정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문학]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
-간접적이고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일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은유의 기법을 활용한다.
-메타포(은유)는 직유와는 달리 설명은 완전히 생략하고 비유할 목적을 숨기면서, 표면에 직접 그 형상만을 꺼내어 독자와 상상력으로써 그 본질적인 想事性을 알게 해 나간다.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결합시키는 것이다.(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통하여 想事性을 알게 해 나간다.)
■원관념(元/原觀念), 보조 관념 (補助觀念)
-원관념(元/原觀念)
문학의 비유법에서, 비유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실제의 대상이나 의미를 이르는 말. ‘사람은 꽃이다’에서 ‘꽃’의 원관념은 ‘사람’이다.
-보조 관념 (補助觀念)
수사법에서 원관념의 뜻이나 분위기가 잘 드러나도록 도와주는, 비유하거나 비교하는 관념
■대상의 고유한 특성과 관념과의 관계
-대상의 고유한 특성은 원관념, 발상 전환한 이미지는 보조관념이라 할 수 있다(꼭 그렇지는 않지만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쉽게 접근이 된다.)
■시 감상
봄비/주용일
밤새 누에 뽕잎 갉아먹는 소리/ 자다 깨어 간지러운 귀를 판다/ 세상 잘못 살아온 나를/ 어디 멀리 있는 이가 욕을 하는지/ 귓속 간지러움 밤새 그치지 않는다./ 잎에서 잎맥으로 잎줄기로 옮겨가며/ 점, 점, 점, 사나워지는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 내 귓속 간지러움도 달팽이관을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몰려간다./ 세상 함부로 살아온 나를/ 이제는 가까이 있는 누가 욕을 하는지/ 뽕잎 갉아먹는 소리 갈수록 거칠어지고/ 자다 깨어 죄 지은 사람처럼/ 무릎 꿇고 앉아 간지러운 귀를 판다.
-시집『꽃과 함께 식사』(고요아침, 2006)
[감상]
주용일의 봄비는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를 빗소리로 이미지화한 무한상상을 펼쳐놓은 시라 할 수 있다. 아니면 뽕잎 갉아 먹는 소리를 마치 빗소리인양 이미지로 그려낸 시다.
이는 봄비를 원관념으로 하고 누에의 뽕잎 갉아먹는 것을 보조관념으로 한 시 이지만, 제목만 봄비 이고 시문의 그 어디에도 봄비에 관한 내용은 없어 제목이 봄비가 아니고 누에 또는 누에고치라면 마치 누에가 뽕잎 갉아먹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놓아 이 시는 풍경화만 그려놓은 1차정서의 시로 좋은 시로 평가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을 봄비로 해서 이 봄비가 원관념 1차정서가 되고 누에고치가 보조관념으로 2차 정서가 되어 시의 격을 완전히 다르게 한 것이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사용하는 방법은 시의 내용(전문)상에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제목은 원관념 내용은 보조관념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방식은 전자의 방식보다 조금 쉬운 측면이 있어 기교면에서는 떨어지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따로 노는 경우는 어떤 글(원문)을 놓고 개별, 개별 비슷한 단어로 단순 대치하였을 경우 주로 발생하게 된다.
불쏘시개의 사랑 /靑江 오 광진
검게 그을린 아궁이/ 작은 불쏘시개 하나/ 불을 지피네.//
뜨겁게 달아오르는/ 무쇠 솥/ 뜨거운 진액을/ 토해내며//
살포시 올라오는/ 하얀 실루엣은/ 사랑의 잔흔인가/ 기쁨의 함성인가?
[감상]
불쏘시개라는 사물을 놓고 불쏘시개의 특성을 바라보면서 그 특성을 남녀의 성행위로 묘사한, 남녀의 교합을 통해 이뤄지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시다.
-1연 : 남녀의 그 행위에서 애무와 삽입 단계
-2연 : 여성의 흥분 고조의 상태
-3연 : 오르가즘 그림
-불쏘시개의 은유는 남성의 거시기
-검게 그을린 아궁이 은유는 여자의 음부
●만약 이 시가 1차 언어의 직설적 표현 이었다면 시가 아니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원관념과, 보조관념, 대상의 발상전환 기법이 활용 되었기에 시가 되어 지탄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좋은시로 탄생된 것이다
●모두가 성인 이니까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솔직한 감상의견을 올린다.
벌집 / 문정희
벌집을 들여다본 일이 있는가./ 구멍마다 허공이 담긴/ 그 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사랑은 모텔에서/ 프러포즈는 이벤트로/ 아이는 시험관으로/ 장례는 땡처리 하듯 화장으로/ 또는 배 밑으로 밀어 넣는 뼈 시린 수장(水葬)!/ 티브이와 왕따와 듣보잡들과/ 안방까지 쳐들어오는 흙탕물을 나눠 마시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살 처분하고 남은 닭과 돼지와 오리를/ 퀵 배달로 시켜 먹고/ 구멍마다 허공이 담긴/ 그 집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정체모를 기형의 벌들이/ 꿀 대신 독을 물어 나르며/ 붕붕거리고 있는가
[감상]
-듣보잡 : '듣도 보도 못한 잡것' 을 뜻하며 상대방을 비하할 때 쓰는 표현.
-위의 문정희의 시 벌집을 감상함에 있어 벌집의 특성을 가지고 발상 전환한 이미지의 관념적 측면에서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이미지로 접근하여 감상해 본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사용하는 방법은, 시의 내용(전문)상에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제목은 원관념 내용은 보조관념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이의 시는 그 어디에도 원관념을 찾아 낼수 없다. 제목도 보조관념이고 내용에도 보조관념을 형상화 해 놓았을 뿐이다. 그러면 이 시에서 원관념은 무엇이고 보조관념은 무엇일까?
또한 원관념 보조관념 차원에서 볼 때 보통 제목에는 원관념을 내용은 보조관념 인데 이 시는 제목에 원관념이 아닌 보조관념을 썼다.
이렇게 살펴볼 때 보조관념인 벌집의 원관념은 아파트 또는 다세대 주택인 원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보조관념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이미지 형성의 시어들을 볼 때 오늘날의 신세대 젊은 사람들의 아파트 모습과 원룸 모습이 너무나 일치되고 있다. 편리 지상주의와 배금사상에 젖은 현실에서 일회용 간편주의와 배려심 없는 자기본위적 행태에 경고를 주는 메시지를 담아낸 시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짚어본다.
시문의 내용에 보조관념만 등장한 이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이론을 떠나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발상전환 하기>의 주제와 가장 근접한 시로,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하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벌집으로 형상화 해서 이미지와 메시지를 담아 가정의 정체성과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해 경종과 경고를 하고 있다.
갈대 / 고영민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있는 흰 꼬리들은/ 뚝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드는가.
머루 / 고영민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대지/ 유두가 검은 년은 남자 복이 없다는데,/ 봐라, 네 년도 나처럼 남자 복은 글렀네//
넝쿨에 기대 앉아/ 눈 감고 생각하건대/ 한때 네 눈(目)이 생기던 그 곳을/ 머루라 하고,//
아예, 캄캄한 네 이름을 머루라 하고//
너도 나처럼/ 유두가 검고,/ 머루는 익고,/ 너는 새끼를 두 번 지우고/ 유두가 검어졌대지.
[감상]
위의 고영민의 시에서 갈대를 개 꼬랑지로, 머루를 유두로 만들 듯, 갈대가 흔들리는 것이 개 꼬랑지가 사람을 반겨 흔들리는 것 같고, 머루는 애를 낳은 여자의 유두와 같지 않은가? 분홍빛 처녀의 유두와 달리, 검은 유두엔 일종의 한과 서글픔이 있다. 이처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의미를 확장했으면 그걸 가지고 시인만의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가면 그것이 곧 발상 전환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원 대상은 굳이 내가 상징을 부여하지 않아도 저절로 상징성을 갖게 된다. 즉 메타포를 제시하게 된다.
■나가기
본 소고에서 기술한 주제는 시상의 공간과도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상의 공간을 생각해 보고 이 공간의 세계에 대하여 나름의 소견을 기술해 봄으로써 소고를 마칠까 한다.
시상의 공간 이라함은 시가 펼쳐나가는 시의 세계로 시속에서 펼쳐지는 영역이라고 나름대로 정의 한다. 이러한 영역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은 무한의 공간으로 우주의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하고 어쩌면 그 세계보다도 더 무한한 상상의 공간까지도 포함하는 영역이라 생각 한다.
그러면 이 무한의 상상을 펴기 위해서 시인은 어떤 사고를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는 고정관념으로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발상의 전환을 방해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이러한 사례로 장석주 시인은 그의 시론에 명상과 시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그 답을 하고 있다.
<시를 쓰는 자들이 “비가 온다.”고 표현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본디 비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온다.”는 것은 사람의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사람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있어온 현상이다. 비는 언제나 있다. 그것은 오고 가지 않는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도 비라는 현상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주체로 고정시키고 사물들을 객체화하는 인간 중심의 오래된 인습이 비를 제 몸 가까이 끌어당겨 “비가 온다.”라고 쓰게 한다. 국소적 공간 경험에 갇혀 있는 자들만이 “비가 온다.”고 쓴다. 좋은 시인은 “비가 온다.”라고 쓰지 않는다. 제 몸의 경험을 받들어 쓴다.>
장석주 시인의 시의 명상에 관한 시론 소개를 통하여 시상의 공간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설명했다.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잡아 발상 전환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통상의 고정관념이 아닌 무한 상상을 펼치는 상상력에서 제 몸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펼쳐 낼 때 발상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히면서 본 주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