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 이론을 접하다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 같이 시창작의 모든 이론은 결국엔 시어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묘사가 어떻고 비유법이 어떻고 원관념이 어떻고 보조관념이 어떻고 정서가 어떻고 비틀기가 어떻고 이중 구조가 어떻고 역설법이 어떻고 도치법이 어떻고 모순법이 어떻고 상상력 확장법이 어떻고 등등 지금 까지 해온 시 강의들은 결국엔 시어를 창출해 내는 여러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다.
지금까지 나열한 위의 여러 기법들은 이미지와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언어의 연금술로 이것이 곧 시어가 되고 이 시어는 감성을 자극하여 이미지를 그려내는데 이때 사용되는 언어들은 본래의 단어의 의미로 사용되는 언어인 1차 정서의 언어가 아니고 은유적 수법으로 어떤 상징물을 그려내어 본래의 단어의 의미에 접근 될수 있도록 이미지를 그려내는 2차 정서의 시어를 사용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2차 정서의 시어를 창작해 낸다는 것은 웬만한 시인들도 힘겨운 창작이기에 1차 정서의 언어로 시를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병아리 입을 보고 <노란 병아리 주둥이> 이렇게 표현했다면 이 표현은 1차정서의 언어로 쓰여진 표현이 되고 <개나리 새싹 같은 병아리 주둥이> 이렇게 표현했다면 이는 2차 정서의 언어로 쓰여진 표현이 된다.
개나리 새싹 자체가 바로 노란 색이기에 병아리 주둥이가 노랗다는 것으로 구태여 노랗다는 색깔 표현을 안해도 바로 이미지를 상상해 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시어는 감상에 따라 똑같은 시어 인데 이를 1차 언어의 정서로 이미지를 본 뜻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2차 언어의 정서로 받아들여서 이미지를 상상해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시를 감상해 내는 시인의 능력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경우 독자는 비록 1차 정서의 언어 그대로 이미지를 받아들였다 해도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수긍할 수 있지만 만약 시를 쓴다는 시인이 1차 정서의 언어 그대로 이미지를 받아들였다면 나는 그 시인은 좀더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실 예를 들어 설명할까 한다.
나의 시 <노을에 바치는 노래>를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더니 모 시인께서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단 것을 보고 나는 그만 웃음을 웃고 만 적이 있었다
그 시의 싯귀에 <들가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들에게 / 무작정 무작정 입 맞추며>라는 싯귀가 있는데 이를 놓고 단 댓글이 좀 겸연쩍었다
그의 댓글을 소개하면
"역시 제데로 쓰셨습니다. 다수의 시인들이 이름없는 꽃이란 표현을 많이 씁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습니다. 이름 모를 꽃으로 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이 그 시인의 댓글인데 시인의 댓글이라는 점에서 많은 고민에 빠졌다. 답을 해야 하나 마나 하고 많은 생각에 젖었다
시란 수학 공식이 아니다 또한 어떤 논리도 아니다. 정서를 통해 만들어진 시어 속에서 무한 상상을 펼쳐내는 것이 시다.
위의 그 시인이 쓴 댓글은 1차 정서에서 보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1차정서가 아닌 2차 정서의 차원에서 싯적 상상을 풀어 나가야 할것이다.
이름없는 꽃이나 이름모를 꽃이나 2차 정서의 차원에서 상상한다면 똑 같은 그림 즉, 이미지를 그려주는 언어인 것이다.
이름없는 꽃이란 시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기에 나는 새로운 시어로 이름 모를 꽃이라고 했을 뿐 뜻하는 바는 바로 이름 없는 꽃 그자체를 의미했던것이다
여기서 이름 없는 꽃이나 이름 모를 꽃이나 모두 직설적 1차 언어가 아닌 2차 언어로 보잘것 없는 꽃, 누가 알아주지않는 꽃, 관심조차 주지 않는 꽃 으로 그림을 그려주고 그렇게 상상하라고 사용한 2차 언어 인데 그 시인은 이를 1차 언어로 시를 감상 했기에 그런 오류의 댓글을 단 것이다. 또한 시는 상상력을 확장해서 감상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기에 시의 싯적 상상이라는 측면에서도 나의 시론을 서술해 보는 것이다.
1차 언어 같은 시어를 2차 언어로 받아드리는 능력은 싯적 상상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면 여기서 싯적 상상력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유창섭 시인의 시론으로 대신 하며 여기에 그 시론을 올려본다
시적 상상력이란 시를 감상하는 독자의 개인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시를 읽으면서 나타나는 반응은 객관적이라기 보다 시인 자신의 직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성이나 정서적 발현에 의해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상상력의 발원은 독자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육을 통해 얻는 윤리적인 가치, 혹은 독자를 둘러싸고 있던 가정적 분위기나 다양한 간접체험을 바탕으로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에 축적된 감성을 기초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게 되는 시는 대부분 시의 이면에 감추어진 행간의 사념에 기초한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렇게 시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시를 읽는 일은 시적 의미를 더 넓게 포용하여 감성의 깊이를 아우르고 오랜 여운을 남기게 되어 독자 자신의 의식 또는 무의식 속에 깊은 인상을 주고 정서를 순화시키며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이 더 넓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의 감성과 새로운 시선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는 시적 공간에 정서적 감동을 불어넣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시에는 일반적인 다른 시인들이 쓰는 시와는 다른 변별력있는 언어와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새로운 발상에 의해 시적 깊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