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학과 시


*형용사의 동사화

-형용사를 동사로 변형시키기-


이근모(시인)


시에서 형용사 사용은 화자의 감정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감정 표현이 감정을 쏟아 붓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데 감정을 드러낼수록 시적 영감은 반감된다. 하여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묘사를 하는 형용사들은 거의 추상어적 성격이 강하다. 또한 시에서 추상어의 사용은 독자로 하여금 이미지를 그려내는데 명확한 상상력을 부여 할 수 없기 때문에 추상어에 대한 구체적 그림을 그려주고 추상어의 직접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주문을 한다. 이러한 주문들을 명확 하게 하는 것이 형용사를 형용사 그 자체로 사용 하지 말고 이 형용사를 동사로 변용해서 사용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추상어의 그림도 그려내는 효과까지도 얻어내고 시를 감상 하는 느낌 또한 새롭고 신선하게 느낌을 준다.


이를 정리 요약하면

<형용사는 감정의 직접노출로 독자의 상상력을 마비시키므로 이를 동사화 해서 역동성을 키울 때 은유와 상징이 되살아나서 추상어적 형용사는 그림까지도 그려내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다음은 시에서 형용사 사용이 왜 부적절 한가를 설파한 안도현 시인의 시론이다 이를 소개해본다


티.에스 엘리어트는 일찍이 시가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라고 강조하면서 시에서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경계했다. 형용사는 시인의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구실을 한다. 쉽게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형용사가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 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그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진다. 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 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 그가 제시한 형용사를 따라다니다 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는 뒤에 오는 말(명사)을 치장하는 역할을 한다. 쓸데없는 치장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특히 형용사 중에 색채를 표현하는 ‘빨갛다·파랗다·노랗다·하얗다’와 같은 감각형용사는 아예 잊어버려라. 조지훈이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민들레꽃> 앞부분)라고 했더라도, 서정주가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국화 옆에서> 부분)라고 했더라도 당신은 ‘노오란’이라는 말이 아예 한국어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우리는 그동안 ‘노오란’을 시에 너무 많이 동원했고, 혹사시켰다. 제발 ‘노오란 개나리’ ‘빨간 장미’ ‘빠알간 고추잠자리’ ‘파란 바다’ ‘파아란 가을하늘’ ‘검은 밤’ ‘하얀 백지’ ‘하아얀 눈송이’라고 쓰지 마라. 그 색채 형용사들을 쉬게 하라. 색채 형용사들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동사의 역동성으로 채워 시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라. 기어가게 하라. 뛰어가게 하라. 날아가게 하라.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인 어휘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다. 동사는 감각의 세계다. 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 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하는 게 다 동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는 동사가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잘 자, 많이 먹어, 이리 와, 빨리 가, 울지 마, 웃어 봐, 때리지 마, 안아 줘….” (<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한겨레, 2007. 12. 16.) 그러니 당신은 가능하면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이상의 내용을 볼때 <감각 형용사는 아예 잊어버리고 동사를 사용하라.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즉 글쓰는 이의 삶을 써라> 이렇게 결어를 맺으며 졸시 한 편을 올린다.



불면(不眠) / 이근모


봉창의 문풍지가 달빛을 삼키는 밤

불현 듯 찾아오는 적막한 소리가

가냘프게 퍼득인다


이밤의 적막은 어디서 왔나

적막이 부르는 노래에

초침 소리는 장단 맞춰 어둠을 일렁인다


이밤에 흐느끼는 냄새는

그리움이 타는 냄새

외로움이 타는 냄새


흐느낌을 어루만지는 미등은

차겁고 컴컴한 이불속에 누워

새벽을 구걸한다


대체 누가 버린 밤이기에

그리워 한올한올 매듭짓는 숨이

외로운 밤을 꿰매고 있는가


밤새 드나들던

그리움도 외로움도

소름 돋치게 찬란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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