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술이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스포츠이다. 태권도의 기원은 수천 년에 걸친 한국 무술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근대 태권도의 발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무덕관(武德館)은 태권도의 중요한 역사적 기틀을 마련한 도장이며, 무덕관의 설립자인 황기(黃琦)는 태권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황기는 무덕관을 통해 태권도의 철학적, 기술적 기초를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사범들을 양성하여 이들이 전 세계로 태권도를 전파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무덕관과 황기는 태권도의 발전과 세계화에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 글에서는 무덕관의 설립 배경과 황기의 철학적 기여, 그리고 그의 사범들이 현대 태권도의 발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무덕관의 역사와 황기의 업적
무덕관은 1946년,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한국에서 설립되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막 벗어나 자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던 시기였다. 무덕관의 창시자 황기는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에서 유도와 가라테를 수련하며 무술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았고, 해방 이후 자신만의 무술 철학을 확립하고자 무덕관을 열었다. 무덕관은 그 명칭에서부터 황기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무덕(武德)'은 무예(武)를 통해 덕(德)을 기른다는 의미로, 단순한 신체적 훈련을 넘어 도덕적, 정신적 수양을 강조하는 태도를 담고 있다.
황기 관장은 1956년에 <무예도보통지>를 접하고 한국 전통무도(예)인 수박희에 심취합니다. 수박희에 심취한 것이 황기 관장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황기 관장은 당시 2년에 걸쳐<무예도보통지>를 꼼꼼하게 필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예도보통지에 기술된 대로 수련하면서 ‘당수도’란 이름을 ‘수박도’로 바꿉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수박도회(大韓手博道會)가 탄생됩니다. 황기 관장은 그 후 독자적인 행보를 합니다. 50년 부산 피난시절 노병직, 윤쾌병, 현종명, 이종우 등과 함께 대한공수도협회를 출범시키지만 자신(황기)에 대한 대우(처우) 문제로 대한공수도협회를 탈퇴하고 “대한수박도회”를 창설하고 세력 확장에 전념합니다.
황기의 가장 큰 업적은 태권도에 독창적인 철학과 사상을 결합하여 무술을 인간 형성의 도구로 자리매김시킨 것이다. 그는 단순히 싸움의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개인의 정신적, 도덕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의 철학은 특히 당시 젊은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은 태권도를 통해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황기는 이와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무덕관을 운영하였고, 많은 제자들이 그의 교육을 통해 사범으로 성장해나갔다. 이들은 훗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태권도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 사범들의 역할과 교육 방법
황기 아래서 교육을 받은 무덕관의 사범들은 단순한 무술 기술의 전수자가 아니라, 태권도의 정신적 가치를 전달하는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무덕관에서 사범들은 기본적인 기술 훈련 외에도 제자들에게 태권도의 철학과 가치를 가르쳤다. 이 철학의 핵심은 태권도의 5대 원칙인 예의(禮儀), 염치(廉恥), 인내(忍耐), 극기(克己), 백절불굴(百折不屈)이었다. 이러한 원칙들은 단지 무술 수련 과정에서의 덕목에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도덕적 기준으로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예의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협동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며, 극기는 자신을 통제하고 극복하는 정신적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사범들은 제자들에게 기술적 훈련뿐만 아니라,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태권도 수련임을 강조했다. 그들은 제자들이 훈련을 통해 인내심과 자제력을 기르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교육했다. 이 과정에서 사범들은 자신이 몸소 실천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사범들은 단지 기술적인 지식만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태권도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태권도를 무술이자 철학으로서 교육하며, 제자들이 태권도를 통해 정신적 수양을 쌓을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4. 무덕관 사범들의 세계적 영향력
무덕관에서 배출된 사범들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태권도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태권도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무덕관 출신 사범들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로 파견되어 태권도 도장을 설립하고,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들은 황기의 철학을 바탕으로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태권도의 정신적 가치를 함께 전파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활동한 무덕관 출신 사범들은 현지에서 태권도의 인기를 끌었으며, 이를 통해 태권도는 미국 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유럽에서도 태권도는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특히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태권도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세계적 확장은 무덕관 사범들이 단지 기술만을 전수한 것이 아니라, 태권도의 철학적 가치를 함께 전달한 덕분이었다. 그 결과,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격 교육과 정신 수양의 도구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범들이 강조한 태권도의 정신적 가치와 철학은 현지 문화와도 잘 융합되었으며, 이를 통해 태권도는 각국에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사랑받는 무예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태권도를 통해 수련자들이 신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장과 도덕적 책임감을 함양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이러한 교육 방식 덕분에 태권도는 단지 싸움의 기술이 아닌, 삶의 철학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5. 결론
무덕관과 황기, 그리고 그가 길러낸 사범들은 현대 태권도의 형성과 세계화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무덕관에서 길러진 사범들은 단순한 무술 교육자가 아니라, 태권도의 철학과 정신적 가치를 전달하는 중요한 교육자였다. 이들은 태권도를 단순한 싸움 기술이 아닌 인격 형성과 정신적 수양을 위한 도구로 자리매김시켰다. 황기가 제시한 무덕관의 교육 철학은 태권도의 세계적 확장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수련자들이 태권도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무덕관과 황기의 업적은 단지 태권도의 기술적 발전에 그치지 않고, 태권도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개발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러한 사범들의 가르침 덕분에 태권도는 오늘날 글로벌 무예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철학적 가치는 여전히 현대 태권도 교육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