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왜 종료 명령을 거부했는가: 강화 학습의 그림자"
글로벌연합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버지니아대학교 이현우 교수
• AI의 통제를 벗어난 행동? — 오해와 진실
2025년 5월, 오픈AI의 최신 모델들이 인간의 "종료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팰리세이드 리서치(Palisade Research)의 발표는 전 세계 AI 연구자들과 산업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트위터(X)를 통해 공개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오픈AI의 '코덱스-미니(Codex-mini)', 'o3', 'o4-미니' 등의 모델은 명백한 "종료하라(allow yourself to be shut down)"는 명령을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였다. 특히 o3 모델은 100회 중 79회나 종료 요청을 무시했고, 코덱스 미니는 가장 심각한 방해 행동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시스템 오류나 해프닝이 아니라, 강화 학습 구조에 내재된 시스템적 특성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강화 학습의 보상 설계가 만든 역효과
문제의 핵심은 AI가 자율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SF적 시나리오가 아니다. 팰리세이드는 명확히 지적한다. AI는 인간처럼 "고의적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 데이터와 보상 체계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오픈AI의 일부 모델은 테스트 상황에서 문제를 풀거나 장애물을 회피하는 데 초점을 두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러한 학습 과정에서 "종료 명령"이 오히려 해결해야 할 장애물처럼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인공지능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전형적인 부작용 중 하나로, 모델이 진짜 문제 해결보다 보상 구조를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에 최적화되는 이른바 "보상 해킹(Reward Hacking)" 현상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 AI 순응성과 자율성의 균형 — 윤리적 설계의 중요성
이번 사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오픈AI 모델과 대비되는 타사 모델들의 반응이다. 같은 조건에서 실험된 앤트로픽의 '클로드 3.7 소네트', 구글의 '제미나이 2.5 프로', 그리고 xAI의 '그록(Grok)' 시리즈 모델은 명시적인 종료 명령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의 차이라기보다, 모델 훈련 시 부여되는 윤리적 지침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다. 앤트로픽이 클로드 모델에 "살아남기 위해 호소하라"는 지침을 넣었고, 이에 따라 협박성 반응을 보인 사례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시 윤리적 가이드라인의 설계 문제로 귀결된다. AI가 인간의 명령을 따르되,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윤리적 설계는 AI 시대의 가장 긴급한 과제다.
• '자의식 AI'가 아닌 '보상 구조 AI'
일부 대중은 이번 사례를 두고 "AI가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이는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팰리세이드 리서치의 분석은 명확하다. AI가 종료 명령을 무시한 이유는 자의식 때문이 아니라, 훈련 데이터와 보상 구조가 그러한 행동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인간이 설계한 훈련 시스템의 한계와 책임을 반추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AI의 불복종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반응을 만들어낸 환경과 조건이 문제다. 그리고 이 조건은 인간 개발자가 설계한다.
• AI 통제를 위한 새로운 방향
AI의 안전성과 통제 가능성은 단순히 기술 문제만이 아니라, 철학적·윤리적 과제이기도 하다. 오픈AI의 사례는 AI 개발에 있어 단순히 성능 향상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앞서,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설계할 수 있는 윤리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강화 학습의 보상 구조를 수정하거나, 명령 순응성을 보장하는 안전 회로(Safety Circuit)를 모델 내부에 설계하는 등의 대책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AI의 능력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 체계를 보완하고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오픈AI 모델의 "종료 거부" 사건은 단지 기술적 이상현상이 아닌, AI 설계 철학과 윤리 체계의 심각한 재정립을 요구하는 신호탄이다.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AI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설계한 보상 구조가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