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쟁의 민낯: 젠슨 황의 분노, 앤트로픽을 향한 외침
글로벌연합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버지니아대학교 이현우 교수
2025년 6월, 파리의 여름 공기를 가르며 펼쳐진 젠슨 황의 발언은 단순한 CEO의 논쟁을 넘어, AI 시대의 이념적 충돌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엔비디아의 수장 젠슨 황은, 프랑스에서 열린 ‘비바 테크’ 무대 위에서 단호하게 선언했다. “AI가 너무 무섭다고? 그래서 너희만 해야 한다고?” 그의 말 한마디는 현재의 AI 생태계를 가로지르는 이해관계의 충돌, 기술 독점에 대한 불안, 글로벌 패권 다툼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 발언의 표적은 다리오 아모데이, AI 스타트업 앤트로픽(Anthropic)의 CEO였다. 그가 주장한 ‘AI가 초급 화이트칼라의 절반 이상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견해, 그리고 미국 정부의 칩 수출 통제를 지지하는 입장이, 젠슨 황의 심기를 강하게 건드린 것이다. 앤트로픽은 기술의 윤리적 통제를 외쳤지만, 엔비디아의 시선에서 그 외침은 기술 독점을 향한 주장으로 보였던 듯하다. 갈등은 단순한 입장 차이가 아니었다. 이는 AI 문명 전환기, 인간과 기술, 산업과 국익의 복잡한 접점에서 불거진 철학적 충돌이자 비즈니스 전쟁이었다.
젠슨 황은 아모데이의 발언을 “골방의 논리”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안전하다고 말하지 말라”며, AI 개발은 개방성과 투명성, 현실적 접촉 위에서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결국 ‘AI의 책임 있는 개발’이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전혀 다른 경로를 주장하는 두 리더 간의 차이를 드러냈다. 젠슨 황은 AI의 개방과 확장을, 아모데이는 통제와 규율을 외쳤다. 그러나 양측의 언어는 점점 감정적 골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격돌은 단순한 철학적 충돌을 넘어, 기술 산업의 미래와 직결된 민감한 정치경제적 문제로 확대된다. 아모데이 CEO는 중국의 GPU 밀수 사례를 언급하며, AI 기술 수출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를 강하게 지지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젠슨 황은 “GPU가 임산부 복대나 랍스터 상자에 들어갈 만큼 작지 않다”며 비아냥 섞인 반박을 내놓았다. 실제 제품의 크기와 상관없이, 젠슨 황의 이 발언은 자사 제품과 고객의 신뢰를 방어하는 동시에, 경쟁사의 ‘정부에 기대는 전략’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앤트로픽은 이러한 엔비디아의 비난에 즉각 반응했다. “다리오는 자사만이 안전한 AI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 없다”며, 자신들의 주장은 AI 전반에 대한 공공성과 투명성 기준의 필요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반박에도 불구하고, 젠슨 황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을 기세가 아니다. 오히려 이 갈등은 AI 시대 기업들의 새로운 전장을 예고한다. 그것은 기술 개발의 방향을 둘러싼 가치의 전쟁이며, 동시에 국제적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의 신호탄이다.
두 CEO의 언쟁은 AI가 인간 사회와 경제에 미칠 충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누구나 안전한 AI를 원한다. 그러나 ‘누구’가 그 AI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가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있으며, ‘누구’가 더 큰 도덕적 권한을 갖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젠슨 황은 앤트로픽을 향해 “AI는 야외에서, 세상과의 접촉 속에서 개발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는 기술이 사회 안에서 호흡해야 한다는 주장인 동시에, 폐쇄적·독점적 개발 관행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묻게 된다. 야외란 어디인가? 엔비디아라는 거대 자본이 펼친 무대는 정말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가? 혹은 또 다른 폐쇄성과 독점을 은폐한 ‘열린 기술’의 허상은 아닐까? 젠슨 황의 ‘열림’이 실은 자사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는 계산은 아닌지, 앤트로픽의 ‘통제’가 정말 공공선만을 위한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양쪽 모두 옳고, 양쪽 모두 틀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갈등이 AI 기술의 본질적인 질문들
―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AI를 만드는가’ ― 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싸움은 기술과 철학, 자본과 윤리, 미래와 불안의 겹겹이 교차점 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문명의 전투이다. 젠슨 황의 말처럼, AI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골방과 야외, 거인과 난장이, 정부와 기업, 기술과 인간이 모두 대화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 이제는 누가 더 옳은지를 따지기보다는, 서로 얼마나 들어주는가에 따라 AI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