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산업혁명
AI가 만든 신약, 인체에 들어가기까지
– 이소모픽랩스의 임상 도전과 제약산업의 전환점
글로벌연합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버지니아대학교 이현우 교수
1. 서론: 인공지능의 새 지평, 생명을 설계하다
21세기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융합으로 전례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 있으며, 이제는 신약 개발이라는 생명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2025년 7월,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제약 스타트업 '이소모픽랩스(Isomorphic Labs)'가 마침내 AI가 설계한 항암제를 인간에게 투여하는 임상시험 준비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기술과 의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충격적 사건이다.
이소모픽랩스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AlphaFold)’를 기반으로 출범한 기업으로, 단순히 단백질 구조 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복잡한 상호작용을 약물 설계에 적용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들의 기술은 이제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기존 신약 개발의 비용과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하고, 성공률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2. 딥마인드와 알파폴드, 그리고 이소모픽의 탄생
딥마인드는 구글 산하의 인공지능 연구소로, 2020년 ‘알파폴드’라는 AI를 통해 단백질 접힘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하며 생물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기술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이에 맞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핵심이 된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2021년, 딥마인드는 ‘이소모픽랩스’라는 자회사를 출범시켰다. 이소모픽은 단백질뿐만 아니라 DNA, 약물 분자 등과의 상호작용까지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AI 모델을 기반으로 신약 설계 엔진을 구축해왔다. 기술은 정교해졌고, 2024년에는 알파폴드 3의 공개와 함께 노바티스, 일라이 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본격적인 산업 적용이 시작되었다.
이소모픽의 목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다. AI와 인간이 협력해 질병을 정복하는 궁극의 전환점을 만드는 것이다.
3. 인간 임상시험: AI 설계 약물의 첫 관문
2025년 7월 현재, 이소모픽랩스는 인간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콜린 머독 이소모픽 대표는 런던 킹스크로스 본사에서 “우리는 지금 AI와 함께 항암제를 설계하고 있으며, 인체 투여를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났다”고 밝혔다. AI가 설계한 약물이 인간의 몸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단지 과학적 시도를 넘어서 의학, 윤리, 산업 전반에 파장을 일으킨다.
신약 하나를 상용화하기까지 평균 10~15년, 수천억 원이 소요되며, 성공 확률은 고작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AI의 연산력과 예측 모델을 접목한 이소모픽은 이 확률을 높이고,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며, 동시에 비용까지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머독 사장은 “이 신약은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100% 확신을 가지고 임상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이는 AI의 데이터 기반 분석과 인간 과학자들의 경험이 결합해 이룬 결과이며, 인간과 기계의 협업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 ‘공동 설계자’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4. 기술의 상업화: 협업과 투자로 확장되는 AI 제약 생태계
이소모픽랩스의 기술력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주목을 받으며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2024년 알파폴드 3 공개 이후 노바티스, 일라이 릴리 등과의 협업은 기술 신뢰성을 뒷받침했고, 2025년 4월에는 스라이브 캐피털 주도로 6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 자금은 내부 신약 설계 파이프라인 구축, 글로벌 임상시험 확장, AI 인력 강화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이소모픽은 자사 설계 후보물질을 기반으로 조기 임상 완료 후 라이선스를 통한 수익화를 추진 중이다.
전통 제약기업이 신약 개발을 수직적 구조로 이끌었다면, AI 기반 생태계는 훨씬 유연하다. AI는 분자 단위부터 시작해 치료제 작용 경로, 부작용 가능성까지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약물을 신속히 설계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반복적이며 예측 가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기존 방식의 비효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5. 결론: 생명을 다시 쓰는 기술, AI 의약의 내일
이소모픽랩스의 임상시험 착수는 AI의 의학 분야 본격 진입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가 아니라, 의료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지점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기술은 이제 생명을 설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고, 이는 인간의 수명, 질병 대응, 그리고 의료 접근성에 혁명적 변화를 예고한다.
AI가 인간을 보조하는 시대에서, 인간과 AI가 함께 생명을 설계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소모픽랩스의 도전은 이 전환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AI는 신약 설계뿐 아니라, 임상시험 최적화,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 실시간 병변 모니터링까지 포괄하게 될 것이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바뀐다. 이소모픽의 여정은 과학기술의 윤리적 책임과 가능성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방향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결국 인간, 우리 자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