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카바레

낡고 반짝이는 것들

by 해이지

생각해 보면 이제껏 내가 살아온 공간은 대체로 연령대가 낮은 '젊은 지역'이었다. 지금이야 지방 소멸의 폭격을 그대로 맞아 준-실버타운의 얼굴을 한 고향의 동네도 내가 나고 자랄 땐 나름 뉴타운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선 쭉 대학가에 살았으니 또한 가장 젊은 공간이었다. 취직한 직후 통근 시간을 버티지 못해 이사한 곳 역시 의도치 않게 굉장히 젊은 동네였다. 신혼부부가 많고 이삼십 대 직장인 1인 가구가 많은 그런 곳. 카페 거리가 즐비하고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오는 그런 곳. 그 사이 살았던 또 다른 동네 역시 주로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 발생 1, 2위를 다투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새롭게 자리 잡은 이 동네는 생경하고 낯설다. 사실 이 동네로 이사 올 결심에 동네의 풍경이나 질 같은 것들은 애초에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내가 동네를 선택하던 기준들, 예를 들어 막연히 회사와의 거리가 가깝다거나 카페가 많다거나 교통이 엄청 편하지 않아도 되니 사람이 적고 덜 번잡하고 술집 등 유흥업소가 적다거나 - 와는 완전히 다른 것들을 고려해야만 했다. 이를테면 초역세권, 초등학교, 대단지, 번화한 거리 같은. 그렇게 마주하게 된 이 동네의 면면은 참으로 생경하고 낯설었다.


이 동네의 첫인상은, 나고 자란 고향보다도 더 나이 든 모습이었다. 어쩌면 지하철 역 이름에 '시장'이 들어가 있는 것부터 모든 게 설명될 지도? 시장 근처엔 노포가 가득했고 그 노포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가득하다. 이 시장엔 요즘 그래도 시장에 가면 꼭 보이는 젊은이들의 카페나 가게 따위 없다. 요즘 그 흔하다는 무슨무슨 리단길 따위 근방에서 찾아볼 수 없다. 가판에 걸려 있는 옷들도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옷들이다. 근방의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한 멀티플렉스 쇼핑몰까지의 길 아래에는 무슨 <Stranger things>의 뒤집힌 세계마냥 엄청난 길이의 지하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는데, 1천 원만 내면 발 마사지를 해주는 (근데 사실은 자기가 공용 기계에 발을 넣고 해야 하는) '마사지 숍'과 형형색색의 할머니, 할아버지 옷가게, 그리고 영양제가 잔뜩 쌓여 있는 건기식 가게가 즐비하다.


이곳의 가장 클라이맥스는 바로 카바레인데, 시장부터 지하상가 골목골목에 이 카바레가 엄청나게 자리하고 있다. 지하 쇼핑몰을 지날 때마다 이런 형형색색의 옷은 누가 입는가 했더니 바로 카바레로 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카바레, 혹은 콜라텍, 무도장으로 불리는 이곳들은 이름부터 휘향 찬란하다. 백악관, 금마차, 뉴욕. 창 밖엔 지르박, 블루스, 차차, 생음악 등이 적혀 있고 심지어 이곳엔 할머니 할아버지 웨이트리스도 있다. 카바레 근처엔 춤을 배울 수 있는 무도학원도 꼭 있다.


사실 이 카바레들은 80, 90년대가 전성기였다. 당시엔 이미자, 화춘화, 태진아 같은 가수들이 자주 공연을 했던 곳이란다. 그 시절부터 이 공간을 사랑해 왔는지, 또는 나이가 든 후 더 이상 갈만 한 곳이 없어 이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부모들과의 유대감도 크지 않아 그들의 삶이 익숙지 않은 내게 이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었고, 어느덧 이 세상은 내 생활권에 함께 녹아들었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반짝이는 옷을 입은 할머니들과 왁스로 머리를 바짝 넘기고 붙는 정장과 뾰족구두를 신은 할아버지들을 보고 있으면, 종종 나는 김혜진 작가의 소설 <딸에 대하여>를 떠올린다. 대학원생 딸과 한 우동집에서 밥을 먹던 화자는 밥을 먹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오고 식사를 끝낸 직장인들이 계산대 쪽으로 몰려간다.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커진다. 어디나 온통 젊은 사람들뿐이다. 주름과 기미로 뒤덮인 얼굴. 숱 없는 머리칼과 구부정한 자세.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나를 향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일 것만 같다.


또 한편 나는 작년 영화관에서 봤던 허가영 감독의 단편 영화 <첫여름>도 떠올린다. 곧 날아갈 것처럼 반짝이는 나비 핀을 꽂고 춤을 추는 영순. 오래된 춤 파트너이자 애인의 죽음 후 그의 49제가 손녀의 결혼식과 같은 날에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발광하는 미러볼 아래에서 반짝이는 나비를 줍던 영순의 모습, 함께 손을 뻗다 사라지는 파트너의 모습, 빠른 것 같기도 느린 것 같기도 한 음악에 맞춰 천천히 스텝을 밟던 영순의 모습.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세계다.


전성기를 함께 이뤘던 카바레 중 몇 개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마저도 시장과 지하 쇼핑몰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예정돼 있어 모두 사라질 위기다. 왼발 옆으로, 오른발 붙이고, 오른발 뒤로, 왼발 붙이고... 낡고 오래된 것들이 자꾸만 쉽게 사라진다. 도시와 사람들은 그걸 못 견뎌한다. 결국 무엇이든 낡고 오래되기 마련일 텐데. 끝끝내 못 견뎌하느라 반짝이는 걸 결국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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