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생 반장선거 학원이 유행이라고?

반장선거 학원과 발리

by 해이지

며칠 전 오전 발제 회의 때였다. 발제들을 읽다 보면 유난히 마음을 찌르는 소재들이 있다. 한마디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전에 마음이 아는. 주로 그런 것들이 영상으로 만들어졌을 때 반응이 좋다.


그날 내 마음을 찌른 발제 하나도 그런 류였다. 요즘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 ’반장 선거 학원‘이 인기라고. 강남, 서초, 반포 등에서 초등학교 임원 선거를 대비하는 학원이 유행하고 있으며, 공약부터 연설문, 스피치 전략까지 무려 학교 분위기와 반 분위기에 맞춰 컨설팅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금액은 당연히 반장보다 전교회장 선거 수업이 비싸며 그 가격은 2, 30만 원에 원장 1:1 맞춤 특강까지 들어가면 50만 원을 상회한다.


사교육이 치열한 지역에서 회사에 다니다 보면 뉴스에 나오는 의대 준비 유치원 반 광고를 실제로 보게 된다. 버스에서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3, 4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에게 영어 유튜브를 보여주며 따라 하라고 채근하는 부모를 실제로 보게 된다. 그 발제 앞에서 내 감정은 이미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그 감정은 당연히 분노와 짜증이다. 곧 나는 잔뜩 혀를 차며 실제 수업 모습을 담았다는 릴스 링크를 클릭했으며 영상이 재생된 지 1초도 되지 않아 모든 감정이 무장해제 되었다.


거울 앞에 서 배를 두드리며 아 아 하며 발성 연습을 하는 아기를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의대 고시고 입시 지옥이고 나발이고 그냥 이 아기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암 때론 반장이 진짜 하고 싶은 애들이 있지(나처럼) 혼자 연습이 어려우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좋겠다) 이참에 자신감도 키우고 연설도 조리 있게 준비해 보고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그럼 그럼) 아이의 귀여움에 순간 모든 실천이성이 마비되고야 말았다.


이 아이는 얼마 전 다녀온 발리의 기억을 끄집어 내주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 몸이 한참 아프던 시기 처음 발리를 방문했을 적 나는 블로그며 인스타며 온 동네방네 발리의 홀리함을 칭송하며 무신론자임에도 종교의 의미를 고찰하게 되었다느니 말을 하고 다녔다. 이번 여행은 두 번째 방문이었고 다행히 지금은 건강하다. 그랬더니 이젠 과연 이 섬엔 무신론자가 있는 것인가, 이 거대한 종교 국가에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 따위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투어 가이드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려워 결국 제미나이에게 말을 걸게 됐다.


사랑이나 행복, 건강 같은 건 전 세계 만국 부모들의 공통 바람이다. 그 외에 대체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사회마다 집단마다 조금씩 다를 거다. 아무리 휩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약간의 경향성은 있을 것 같은데 내겐 의대 고시며 사교육 같은 게 한국의 것으로 느껴진다. 정치와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이 계층 이동과 세습, 사다리를 걷어찼니 차였니 따위에서 기인하니까. 자본주의 우세의 초연결 세계에서 어느 나라, 어느 사회라고 안 그러겠냐마는 그래도 발리를 겪고 있자면 여긴 또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다리라고 한다면 이 조그마한 섬에 어떤 사다리가 있으며 그 사다리는 무얼 향해 세워져 있을까. 또 아무래도 GDP 대부분이 관광업에서 나오는 나라는 뭐가 다를 것인가?


제미나이를 비롯해 그러모은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자면, 발리섬에서 대체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건 바로 ‘종교적 가치’이다. 발리는 매일매일 짜낭사리를 문 앞에 두며 신과 만물에 감사 기도를 올린다. 그들에게 신과 종교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의미다. 그런 사회에서 좋은 아이로 성장한다는 건,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신에게 올리는 가와 무를 잘하는 것 자랑거리다. 종교 행사나 제식 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자랑거리다. 이들에게 효도란 부모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종교 행사에 매진하며 부모 곁을 잘 지키는 거란다.


물론 이 손바닥 만한 화면으로 보는 줄글이 그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너 참 한국인 같다라고 하면 나도 화낼 거면서. AI는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경향이 아직까지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세대까지도 다자녀가 흔해 셋째, 넷째의 전형적인 이름까지 있을 정도였던 발리 역시 출산율이 2.04명으로 최근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걸 보니 여기도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출산율 0.7명 나라에서 사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다만… 세상 멋지게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던 10살 남짓의 발리 아이들이든 배를 두드리며 발성 연습을 하는 한국 아이들이든 행복했음 좋겠다. 사랑하고 행복하며 건강하게.


참 발성 연습 중인 그 아이 영상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