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꼭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청바지를 꺼냈다. 오늘 코디는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붙박이장에 걸어 두었던 청바지를 꺼내 탁탁 펼친 다음 입고 몇 발자국 걷는데... 이게 무슨 냄새람? 갑자기 아빠가 옆에 있는 느낌이 든다.
낯선 향기의 원인은 바로 청바지였다. 명절 때 본가에 갔다가 옷에 음식물을 흘리는 바람에 세탁을 했더랬다. 섬유유연제를 아예 쓰지 않는 우리 집과 달리 본가는 향이 강하다고 유명한 섬유유연제를 그것도 아끼지 않고 팍팍 썼으므로 집 어딘가를 가든 늘 그 냄새였다. 건조기에서 막 나온 빨래도, 건조기에 들어가지 못한 빨래에도, 옷장 속에도, 한 번 입고 걸어둔 옷에도. 뭐랄까 이미 낯선 곳이 되어 버린 본가는 냄새로도 낯선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나랑은 다른, 이질적인 냄새가 나는 공간이 돼 버린 것이다.
나는 냄새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다. 어느 사람에게는 안 그러겠냐마는 좀 유난인 거 같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사람이 가까이 지나갈 땐 숨을 꼭 참는다. 사람이 지나가면서 풍기는 냄새를 맡기가 싫기 때문이다. 여기서 냄새는 악취거나 나쁘거나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고유한 냄새일 뿐이다. 앞에서 걷는 사람들 중 향수를 지독하게 뿌린 이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보다 빠르게 걸어 앞서버린다. 백화점에서 예상치 못한 향수 매장을 지날 땐 매우 괴롭다. 이때도 숨을 꾹 참는다. 머리에 바르는 헤어 오일 특유의 냄새도, 화장품 냄새도. 가끔 당근이나 번장에서 '미개봉' 의류를 구매했는데 의류에 그 사람의 향수 냄새가 묻어날 때 분노는 최대치다. 나는 그야말로 무향을 선호하는 부류의 사람이 돼버렸다. 최대한 냄새가 덜한 것.
한때는 향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냄새에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좋은 향수도 있을 거야. 가끔은 유난히 좋다고 느껴지는 냄새들이 사람과 함께 스칠 때도 있었으니까. 한참 유명하다던 니치 향수 브랜드부터, 그나마 향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편인 러쉬까지 돌아다녔지만 살 수가 없었다. 막상 이 냄새를 내 몸과 옷에 뿌린다고 하니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실제로 러쉬 향수는 사놓고 반도 못 쓰고 사용기간이 흘렀다. 이걸 옷에 뿌린다는 건, 마치 옷을 세탁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 냄새, 아빠 냄새... 같은 것들은 주로 아련하고 따뜻하고 그리운 수사로 사용되지 않나. 엄마 아빠 그리고 본가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청바지를 들고 세탁을 다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히 고민했다. 다시 무향의 세계로, 나의 고유한 체취만이 담긴 세계로. 좀 별스럽다 싶어 그대로 입고 나갔더니 외출 내내 주변에 아빠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좋은 거 같지가 않은데. 괜히 러쉬를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만다. 바디 스프레이는 좀 부담이 덜하다는데... 그래도 옷에 뿌리면 세탁을 해야 할 거 같은데... 과연 냄새 민감자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