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만 한다
갑작스럽게 노브라 고백 공격부터 해서 죄송하지만 나는 노브라로 많이 다닌다.
시작은 물론 여성주의적 해방 차원, 그거였다. 스무 살이 되고 섹슈얼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때.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준 byc 리본 빤스와 부라자 말고, 약간은 보여줄 것을 염두에 둔 그런 브라를 찾아 입기 시작했다. (부라자와 브라의 차이다)
그 시절의 정점은 과연 에메필이다. AA컵도 C컵 판정을 받고 돌아온다던 그곳. 브라를 고르고 탈의실에 들어가면 이윽고 점원 언니가 들어와 등살까지 모아 내 가슴 안으로 넣어 채워주는 그곳. 90A를 입던 나는 75C 판정을 받고 돌아왔다.
볼륨을 얹고 영혼까지 모아주려면 브라는 필연적으로 작아진다. 더 가슴을 조이고 더 무겁게 얹어진다. 이렇겐 더 이상 못 산다. 페미니스트가 된 나는 패드와 와이어가 없는 브라를 거쳐 얇은 브라렛과 캡 나시 등을 입다 어느 날 브라를 벗을 것을 결심한다.
처음엔 조금 부끄럽고 신경이 쓰였지만 사실 남들은 내 가슴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 게다가 티가 잘 나지 않는 옷들이 꽤 많다. 생각해 보면 남자들은 모두 노브라지만 우리도 그들의 꼭쥐쓰를 늘 인식하진 않는다.
지금 내게 브라는 뭐랄까, 패션 아이템 중 하나다. 마치 설리가 “브래지어는 액세서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옷엔 어울리고 아닌 옷엔 안 어울린다”라고 한 것처럼.
그러나 물론 내게도 성역은 있다. 티가 잘 나지 않는 선에서만 노브라가 가능하다. 꼭쥐쓰가 잘 드러나는 딱 붙는 티셔츠라든가 이런 건 아직 무리다.
잠깐 다른 이야기로 새자면… 우리 엄마는 내가 아기이던 시절 젖꼭지를 잡고 당겨줬다고 한다. 조금 큰 내게도 당길 것을 권유했다. 왜냐? 아기를 낳았을 때 유두가 들어가 있으면 아기에게 젖 주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역시 선구안이신 우리 어머니. 애를 안 낳을 줄 어떻게 알고 또 그런 무의미한 행동을 하셨대.
아무튼. 노브라가 부담스러운 옷차림이나 자리에선 결국 붙이는 실리콘 패드 브라를 쓴다. 브라보단 훨씬 편리하다. 어쨌든 가슴을 조금 조이는 캡 나시보다도 훨씬 느낌이 없다. 현재로선 아주 좋은 옵션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본다.
흔히 미드나 영화에서 여성들은 노브라로 자주 등장한다. 셀럽들도 그렇다. 그래서 난 저 문화권은 그래도 꼭지 해방이 잘 이루어진 줄 알았다. 이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꼭지는 일종의 코르셋이었던 걸까? 꼭지가 코르셋, 노브라가 코르셋? 그럼 코르셋 벗기는 브라를 입기로 실현되는가. 아 혼란스러웡~ 뭐 어쨌거나 그래도 저곳은 두 가지 옵션이 가능하긴 할 테다. 브라를 입든, 안 입든. 스킴스의 꼭지 브라로 어쨌든 꼭지가 드러나는 옷차림이 유난히 해괴하거나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게 됐을 테니. (혹은 그전에 이미 그렇게 됐거나)
이 소식을 보고 더더욱 나는 소망한다, 꼭쥐쓰의 해방의 날을.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는 노브라가 크게 유행을 타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예전 설리의 노브라는 오로지 설리만의 노브라거나 페미니스트의 코르셋 벗기 정도였지만, 최근엔 인플루언서 중심으로 노브라 패션을 종종 볼 수 있다. 여성 패션 브랜드 룩북에서도 보인다. 그리하여 나는 조만간 이 유교국가에 크게 노브라의 유행이 찾아올 것을 강하게 예감한다. 노브라의 붐은 온다! 꼭쥐 패션의 붐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