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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Hej Jul 25. 2023

INFP는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나

글을 쓰는 아이


중학교 시절 나는 '글을 쓰는 아이'였다. 뭐 그렇게 거창할 것은 없고, 그저 읽는 걸 좋아했고, 쓰는 것도 좋아했고, 글쓰기 대회에 늘 나갔고, 그 대회에서 언제나 상을 받아오는 아이였다. 선생님들은 결과물을 가져오는 나라는 학생에게 글 쓰는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 주었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불안함이 있었다.


나에게 예술가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천부적인 창작의 재능이 있을 리 없다고, 앞으로도 그런 재능이 생길 것 같지 않다고 불안해했고, 그런 내가 나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은 순간적인 이입을 잘 해내서 그걸 잘 표현해 낸다는 점 정도였다.


그런 불안함을 터뜨려버리는 결정적인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출전한 도 대회였다. 전국 대회를 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 대회에서 입상을 해야만 했는데, 대회의 형식은 이러하다.


미리 도서 목록을 주고 그 도서를 읽어와야 하며, 대회 당일 부여되는 형식과 내용에 맞게 완결된 글을 써야 한다. 그날의 주제는 '수청을 거부해 옥에 갇힌 춘향이가 수레바퀴 아래서의 헤르만 헤세에게 편지를 쓰는 설정'이었다(사실 베르테르였는지 헷갈린다). 이 편지에 각 도서의 기본 설정 상황이나 캐릭터를 녹여야 하고, 한자가 몇 자 이상, 맞춤법 준수 등의 여러 미션이 부가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날 비가 왔다는 것이다.


나 같은 아이에게, 그날의 주제가 '춘향'이었고, '비가 왔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조건과도 같았다. 그날의 습도, 온도, 조명은 내가 춘향이에게 심하게 이입해버리는 결정적이고 탁월한 외부요인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옥에 갇혀 칼을 찬 춘향이가 되었고, 대회 시간 내내 누군지도 모르는 몽룡을 그리워하며 울면서 글을 썼다. 


이 글로 도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중3도 아니고 중2가 최우수를 받았다며 국어 선생님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을 때도, 나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그 편지는 내가 잘 써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 내가 춘향이에게 잘 이입을 했기 때문이고, 나는 그날 이미 퇴고를 하면서 건방지게도 '앞으로 이것보다 더 글을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도 대회 1등으로서 전국대회에 출전했고, 심지어 전국대회에서도 수상을 했지만, 스스로 도 대회만큼의 이입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역시도 나에게 아무런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은 더더욱이 내가 원한 방향이 아니었다.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나의 재능을 평가해 버린 주변 분들은 나에게 더 큰 기대를 하기 시작했고, 그 기대에는 어떤 경제적 비용 지출 같은 것이 따랐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때 (내가 생각하는) 우리 집 경제적 사정에 비해 과도한 인풋이 투여되는 상황에서 그에 상응하는 아웃풋을 낼 자신이 없었다. 그 불안감은 대회에서의 상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으로 귀결되었고(상장 이름이 다를 뿐 그래도 늘 수상은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노라 학교에 통보하였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 이제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고. 


당시 공감을 잘하는 천성 덕에 사회의 여러 가지 생김새에 관심이 많았고, 꽤나 이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좋아했다. 나중에 그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면서, 주변의 조언을 들을 새도 없이 법대에 진학해 법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학생이 공부를 하겠다니, 게다가 법대를 가겠다니. 얼마나 기특한 학생인가.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보란 듯이 공부를 했는데, 공부는 열심히 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참으로 정직한 일이었다. 법대를 가겠다고 결심한 이후에 한 번도 다른 분야를 생각하거나 진로를 바꾸어본 적이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알게 모르게 '글쓰기'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였던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도망가듯이 놓아버리고 선택한 것인 만큼 꼭 이루어내겠다고. 절대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의지대로 법대를 진학했고, 사법시험을 합격했고, 법조인이 되었다. 법조인이 되고 나서 쓰는 서면은 예전의 '글'과는 결이 다르다. 그리고 달라야만 한다. 과공감러인 나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 감성과 이성의 중간 지점. 


그렇지만 지금도 머릿속을 떠다니는 '글'은 나를 괴롭게 하고, 여전히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인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읽는 게 좋고, 쓰는 게 좋다.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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