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물건을 어지르는 행위 자체가 놀이인 듯싶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헤집고 널브러뜨리는데 딱히 뭘 찾고 있는 것 같지는 않고, 근데 또 별 목적도 없어 보이는 그런 짓(?)을 날마다 하는 걸 보면 물건을 휘적거리고 내던지는 동작 자체에 쾌감이 있다거나(나도 느껴보고 싶다) 꺼내는 과정에 나는 모를 어떤 재미가 분명 있는 것 같다.
옛날엔 나도 그런 짓을 자주 했다. 결벽증이 있는 아빠와 그 못지않게 청소의 달인인 엄마는 내 방을 혐오했다. 지금 우리 애들만 할 때의 기억은 안 나고 10대 후반의 나를 떠올려 보면 꽤 오랫동안 정리의 개념 자체가 머리에 없었던 듯하다. 그냥 이것저것 열심히 꺼냈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는 상태가 누적되어 지금 우리 애들이 해놓은 것과 비슷한 광경이 만들어지곤 했다. 환경이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있던데 그때의 나는 시각적 무시증 마냥 그런 지저분한 상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별로 영향을 받지도 않았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 아빠만 괴로웠을 뿐.
깔끔쟁이들의 숙적이던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정리정돈을 전담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즐기기도 한다. (나를 포함)네 명이 하루 종일 만들어놓은 난장판을 주로 혼자서 치우는데 빠르게, 제법 깔끔하게 정리를 한다. 아이들에게 책임감과 정리정돈 습관은 심어줘야 하니 매번 시키긴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내 몫이 되고 그럼에도 내가 개과천선했듯 애들도 언젠간 하리라 믿고 걱정 없이 그냥 내가 치우고 만다.
다른 가사노동과 달리 정리정돈은 유일하게 나에게 정신적 보상을 준다. 설거지, 빨래, 요리 등등 수많은 집안일 사이에서 정리가 이처럼 특별한 위상을 갖게 된 계기를 뚜렷이 기억한다. 업무에서 자존감이 바닥을 찍고 심하게 흔들릴 때, 머릿속이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 터질 것만 같았다. 하필 근무지도 멀리 배치되었던 때였다. 부글거리는 머리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와 개판이 된 집을 보니 마치 내 뇌의 데칼코마니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두면 엉망진창인 안과 밖 모두 터져버려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정신없이 줍고 제자리에 넣고를 반복한 후 어느덧 말끔해진 공간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후련함을 느꼈다. 회사에서는 해내는 것 하나 없었는데 온전히 끝냈다는 완결감이랄까 완성감이랄까 일종의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고작 정리정돈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겐 너무도 필요했던 정신 작용이었다.
엄마 아빠는 여전히 나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지만 어쨌든 난 그들을 따라가고 있다. 그때는 대신 치워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어지러운 꼴을 보면 멀미가 나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를 보면 결국 자식은 부모의 정리 습관을 물려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애들이 비록 지금은(그리고 앞으로도 한동안) 과거의 나처럼 돼지우리를 만들어 살지라도 언젠가 정리가 주는 만족감을 깨닫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