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커버 by 홍이삭

음악에 미친 아줌마의 분석 시리즈

by hejira

<지구가 태양을 네 번>에 이어 올리는 글. 편곡자님께서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 남기셨다는 거는 아예 헤더로 만들어서 매 포스팅마다 뜨게 만들 수 있나? 음악이랑 상관없는 포스팅에도? 일상 포스팅에도? 살다보니 이거밖에 자랑할 게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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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23일, <싱어게인> 보고 내 블로그에 올린 글 그대로 긁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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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김에 하나 더 씀



주의: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홍이삭 <기다림> 커버 - 이 글의 레퍼런스

https://youtu.be/GekKn1OmC70?si=Cc8lyfeWGimXgWJ9

편곡 홍이삭, 이진주


원곡

https://youtu.be/tz_HbLHaIMQ?si=IVtOlio-9xYwogYb

*<기다림>의 원곡자는 가수 겸 기타리스트 이승열입니다.




0:00

8분음표로 진행되는 잔잔한 피아노 변주. 여기서 8분음표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이 곡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



0:12

미칠 것 같아

기다림 내게 아직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네가 미웠어

참을 수밖에

내게 주어진 다른 길 없어

속삭여 불러보는 네 이름

느리다.. 정말 느리다.. 경연에서 이런 곡이라니! 정말 지루해지기 십상일 것 같은 이 느리고 여백 많은 멜로디를 정말 담담하게도 설득력 있게도 비는 구석 하나 없이 부른다.



1:07

어두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부서진 조각배 위에

누인 내 작은 몸

어두운 바다에서 1단계.. 부서진 조각배에서 2단계.. 누인 내 작은 몸에서 3단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 커지며 빌드업. 긴 음표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 서정적이다.



1:32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그 품 안에

아주 오래도록

후렴의 시작과 동시에 8분음표로 움직이던 피아노가 4분음표 코드들로 바뀐다. 이건 이 커버에서 정말 정말 특이하면서 중요한 트랜지션이다. 보통 많은 노래에서 빌드업을 지나 후렴으로 넘어가면 긴장과 에너지가 고조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 커버에서는, 그동안 정박의 사이 사이를 채워주며 pulse에 안정감을 더해주던 피아노의 8분음표가 갑자기 빠지면서 리스너가 무의식 중 길을 잃게 된다. 반주에 레이어가 더해지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있던 게 더 빠진 것이다. 게다가 보컬 멜로디도 언젠“가—”하면서 길게 끄는 음. 결국 리스너는 간간이 들리는 코드와 보컬의 긴 음들 사이에 가끔씩 나오는 짧은 음들을 통해서 pulse의 감을 겨우 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연출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더욱 고조된 에너지와 보다 확장된 공간에서 잔잔한 바다 위의 조각배 위에 혼자 누워있는 화자의 더욱 깊어진 외로움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더불어 원곡에서 살짝 변형된 슬픈 코드 진행도 한 몫 한다. 낮은 음역의 “그 품 안에”는 왜 이렇게 슬픈가?



2:04

구간 사이를 잇는 보컬이 아름답다. 뒤따르는 오오— 그리고 동시에 레이어들이 더해지며, 기타와 드럼이 드라마틱하게 터지기 전까지 몇 초 안 되는 사이에 마치 분노 게이지가 순식간에 상승하듯 연출된 이음새. 그동안 네 마디 프레이즈가 반복되다가 갑자기 세 마디 후 다음 구간으로 이동하기에 리스너는 무방비 상태에서 엄청난 희열을 느낌.



2:15

할 말이 많지만 앞에서 꺼낸 4분음표 얘기부터 하고 넘어가자. 이 곡을 길게 보자면, 1:32에 4분음표 코드와 시작된 후렴이 이 용암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로 조용히 시작된 이 네박 패턴이 여기서 기타와 드럼의 쾅쾅쾅쾅으로 확장되며 터짐.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만약 내가 성덕이 되어 홍가수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말씀드리고 싶다. It worked. 그렇다. 베토벤 바이올린 콘체르토도 고요한 팀파니의 4분음표 네 개로 시작해서 엄청나게 웅장한 4분음표 네 개로 발전한다.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콘체르토 중 하나이다. 이런 걸 보면 음악이 별 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음악적 장치로 슬픔, 절망, 희망, 이런 것들로 버무려진, 벅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극대화됐다. 싱어게인은 분명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인데. 이런 걸 보면 마치 초대형 뮤지션을 뽑는 경연을 보는 듯한.. 홍가수님은 노래도 잘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는 이런 구간들도 마치 보컬의 연장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노래를 하고 있든 아니든 그냥 음악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전조. 아무런 예고 없이 두 키가 확 올라갔다. 그리고 심장 에이게 하는 확고해진 코드 진행.. 분명 엄청 장조인데.. 슬프다.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이 구간이 터지며 보이는 홍아티스트의 표정을 보라. 이것은 환희인가? 뭐라 표현할 수 없으나 뭔가를 엄청나게 즐기는 걸 넘어서서 무아지경?이라고 해야 하나..



2:28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그 품 안에

언젠가. 그대가. 와.. 나의 겸손한 스마트폰을 뚫고 전달되는 이 파워가 실황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 심장이 그냥 터져버리지 않을까? 엄청나게 높고 좍 펼쳐진 소리의 벽, 4분음표로 유지되는 pulse 안에 펼쳐지는, 이번에는, 16분음표로 구성된 웅장한 레이어.. 쿵쾅쿵쾅! 그리고 그 품 안에— 도대체 이런 멜로디는 어떻게 생각해내는 것인가.. 앞 구간과는 대조적으로 끝없이 치솟아버리는..!! 이 곡에서 최고로 높은 피치에 도달하였으나 결정적으로 가슴아픈 가성이다. 마치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가고 싶은 꿈을 꾸고 또 꾸는 듯하다. 그리고, 그렇다.. 그 바로 뒤 2:56에 나오는 슬퍼 미칠 것 같은, 이번에는 진성으로 부르는 처절한 변성화음의 Ab, 마치 꿈에서 깬 듯한..



2:58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이젠 반주에서 4분음표들마저 빠졌다. 빈 공간에 처절하게 혼자가 되어 남음. 치솟던 멜로디는 아래로 침잠.




현생은 어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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