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미친 아줌마의 분석 시리즈
혹시 성덕이라는 제목을 보고 낚여서 오신 홍이삭 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시작하겠다 여기서 성덕이라는 건 홍이삭 님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작년이었나? 내가 블로그에 쓴 홍이삭의 <별 같아서> 글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중2때 (맞다 정확히 중2때였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가수 김정민한테 팬레터를 한 400 통 정도 보냈던 거 같은데. 맞다 그땐 인스타 디엠 이런 거 말고 진짜 "편지지"라는 것을 문구점 혹은 "팬시점"에서 사서 당시 우리들 사이에 유행하던 끝이 엄청 뾰족하던 그 펜(이름 생각 안나)으로 한글자 한글자 새기듯이 팬레터를 적어 소속사에 snail mail로 보내던 시절이었다. AI? AI가 뭐세요? 전 과거에서 왔어요
팬레터를 한 384 통 정도 보냈을 때 나에게 한장의 우편물이 왔다. 중딩한테 올 우편물이 어딨나? 열었다. 두어 번 접혀진 흰색 16절지를 열었다. To XX (내 이름) 그리고 종이를 가득 채운 정민이옵빠의 친필사인 그리고 그 밑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속사에서 보내온, 384 통의 팬레터에의 답장이었다.
미친X마냥 마구 소리지르고 중간 평수 대 정도 되는 아파트였던 우리 집 전체를 폴짝폴짝 뛰면서 마구 누비고 다니다가 소리를 조금 더 지르고는 당장 집앞 문구점에 가서 "코팅"을 했다. 코팅.. 이런 거 요즘도 하나.. 우리 엄마가 "나때는 짜장면이 50원이었다" 이런 얘기 자주 하셨는데
아쉽게도 가보처럼 보관했던 그 코팅된 사인은 더이상 없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내적친밀감 느끼고 사돈의 팔촌의 십육촌 관계라도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은 팬심.. 이런 거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거다.
아무튼. 자고 일어나서 <별 같아서> 작편곡자님께서 친히 남겨주신 짤막한 댓글을 보고 과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뭐시여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거시여 꿈을 꾸는 거시여 나는 누구여 이런 생각이 들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때 포스팅을 그대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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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문자님의 요청으로 홍이삭 님의 <별 같아서>를 감상해보겠습니다!
2019 년 EP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앨범. 작곡 작사를 홍이삭 님, 이진주 님이 같이 하셨고 편곡은 은희영 님이 하셨네요.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으로 읽어주세요^^
https://youtu.be/ePD0nB1R4jg?si=japZkchpN77sVeIT
홍이삭 <별 같아서>
0:00
(전주)
A플랫 장조 안에서 중간에 숨어있는 느린 반음계(Eb-E-F)를 타고 차분한 네 박자의 피아노 전주로 시작해요. 샵5음인 E가 어딘지 모를 나른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죠.
0:14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쉽지 않아
원한대로 흘러가는 얘긴 없는가봐
오늘도 방에 앉아 나를 읊어본다
아픈 시간의 내 삶을 바라보면
지난 흔적 속 풍경이 문득 떠올라
깊숙이 숨어 있는 무심하게 지났던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듯한 독백. 바로 옆에서 말을 걸어주는 듯해요.
0:59
잊혀져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첫 후렴. 젠틀한 목소리와 밤 하늘을 수놓는 듯한 예쁜 피아노 반주로 후렴이 시작해요. 그리고 “밤이 깊어질 때 더욱”은 화음과 합해져 정말 아름다운 멜로디네요. 특히 어느 분의 작품인지 모르겠지만 “..같아서 밤이-”와 함께 피아노가 낮은 음역으로 내려와 차분하게 코드를 연주하는데 가사와 정말 잘 어울리는 편곡 같습니다. 밑에서 더 자세히 얘기해봐요.
1:29
바랜 기억 위에 쌓인 먼질 털어내면
잊고 있던 시간들이 문득 떠올라
다시 그 자리에 앉아 나와 마주한다
2절 시작과 함께 드럼을 포함 악기들이 더해졌어요. 1절에 비해 축약된 벌스.
1:52
잊혀져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후렴으로 바로 이어졌어요. 여전히 차분한 보컬이에요. 이쯤에서 얘기해봐요. “밤이 깊어질 때”의 멜로디는 왜 아름답게 들리는가? 간단하게, C조에서 도미솔 코드가 있다면, 이 코드를 도미솔, 미솔도, 솔도미,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데, 여기서 “미”가 베이스가 되는 “미솔도” 즉 화성학에서 I6라고 표기하는 이 코드는 잘 쓰였을 때 장르를 불문 정말 특별한 감동을 줄 수가 있어요. 경우에 따라서 슬픔, 멜랑콜리, 감동, 희망, 등등을 (개인적으로는) 표현하는 코드인 것 같습니다. 그 코드가 바로 “밤이”에서 쓰였습니다~ 여기선 바로 Ab/C이겠네요.
참고로, 홍이삭 님이 싱어게인에서 부르신 이승열 님의 <기다림>에서도 나오죠. “언젠가— 그대가—” 원곡은 I-V6-vi.. 이렇게 이어지는 코드 진행을 홍이삭 님께서는 클라이막스에서 I-I6-IV.. 이렇게 바꾸셨는데 바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그 코드입니다! 과몰입 죄송..
(2:32 바로 여기..)
https://youtu.be/GekKn1OmC70?si=Cc8lyfeWGimXgWJ9
그리고 “깊어질 때 더욱”은 계이름으로 불러보면 “도솔솔-파미레”가 되겠는데, “도”와 “솔”로 이루어진 멜로디 중 유명한 예쁜 멜로디가 꽤 많은데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작곡자가 좋은 멜로디와 좋은 화성을 조합하여 예쁘게 잘 쓰셨다는 내용 없는 말이었습니다..ㅎㅎ
2:16
흘러가는 시간 돌이켜 보면
너를 위한 의미가 되고
헤매는 수많은 별들이
제 위치를 찾듯이
노래에 따라 다양하지만 보통 벌스-후렴-벌스-후렴-브리지-후렴의 구조를 많은 노래들이 따른다고 봤을 때 (이 노래에 해당), 이 브리지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화자가 진짜로 하고 싶은 내밀한 얘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이 부분은 후렴의 뒷부분(“깊어질 때 더욱”)과 비슷한 멜로디로 구성된 브리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특이하게 이 앞 구간의 마지막 음절 “나”와 이 구간의 시작 음절 “흘러”가 같은 음(C)으로 연결되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세 키 내려온 F조로 전조가 됐어요. 보통 빌드업을 위해 조를 바꿀 때 더 높은 키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몇 단계 내려오면서 더 차분한 또는 더 진정성(=임팩트) 있는 목소리가 들리는 효과가 나는 것 같아요.
한 예로, 분위기나 모든 것에서 전혀 다른 곡이긴 하지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에서도 극적인 순간에 세 키 내려가는 전조가 나오는데요. (연식 나오나요?) 재미를 위해 다음 영상의 3:50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E플랫에서 C로의 전조입니다.
https://youtu.be/Ua-vVBfopHA?si=cu1MKTNIv4QQAwK0
본론으로 돌아와. 전조로 낮아진 음역과 함께 가사를 곱씹어보면 화자의 메시지가 더 잘 들리는 것 같죠. 너를 위한 의미. 헤매는 수많은 별들이 제 위치를 찾듯이..
2:46
잊혀져가는 어제는
반짝이는 별 같아서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밤이 깊어질 때 더욱
빛나
그리고 이 구간의 시작 부분에 갑작스러운 전조가 또 한 번 나오는데 이번에는 시작 키보다 두 키 높은 B플랫까지 껑충 올라갔어요. 드럼을 비롯한 몇몇 악기가 순간적으로 빠지면서 극적으로 들려요. 그리고 “별 같아서”에서 드라마틱한 빌드업! 반복되는 가사, 밤은 계속 계속 계속 깊어지지만.. 마지막 “밤이”에서는 저 위에 A까지 멜로디가 솟구치네요. 밤의 깊은 어둠이 정말 정말 어둡지만..
빛나. 반짝이는 별은 밤이 깊을수록 빛나요.
3:28
(후주)
높은 음역의 피아노 솔로가 다시 한 번 밤 하늘의 별을 수놓는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이 듣고 위로받았으면 하는 숨겨져 있는 귀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