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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차 사회생활, 8번째 이직을 앞두고

생각망치를 읽으며 정리해 보는 현시점 이직에 대한 고찰

by EJ

최근엔 호리에 다카후미의 '생각망치' (낡은 생각을 부술 때 시작될 삶의 변화)를 읽고 있다.

내용 중 나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고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준 내용이 있어 글을 써본다.


7번째 직장에서 11년 차 CMO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11년 간의 사회인 생활 과정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고 나 자신을 마주하고 깨달음의 과정을 겪으며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나의 포지션, 업무, 우선순위, 시간, 기여도, 예산, 역할 등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3개월 전 대표님께 메일을 썼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업무, 할 수 있는 일들.. 을 생각하고 고민해도 시간이 남으니 회사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업무나 역할이 있다면 더 달라는 내용으로.


대표님도 사업이 처음이라 초기 투자 유치와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정부과제등을 신청하고, 발표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매우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은 모두 이사님이 맡아 관리하게 될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돌아온 답변은 나의 고민에 대한 해결답안은 아니었다.

각각 본부별 C레벨을 모두 모아 시작한 회사.

수년간의 경력을 통해 실력을 쌓은 전문가들을 모아 두셨기에, 업무를 돕는다고 해도 돕는 게 아닐 수 있단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지금 돈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난 뭘 하고 싶을까?


과연 내가 CMO로써 충분히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도, 업무도, 어려움도, 성공경험도.


고민의 기간 3개월 동안 국내 1위 금융사의 헬스케어 계열사에서 제안이 왔다. 그리고 series C 규모의 스타트업에서도 제안이 왔다.


포지션은 낮아진다. 그리고 더 난이도 높은 많은 일들이 있을 거란 걸 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나는 ’ 성장‘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란 것과 투명한 ‘소통과 공유’가 매우 중요한 사람이란 거다.


대기업의 프로세스를 따라야 하기에, 2번의 면접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또는 브랜딩 스토리를 질문하셨다. 순간 깊게 고민했다.


성과라 할 수 있는 숫자는 있었다. 유저수, 매출, 성장률 등. 그런데 내가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의 고민 끝에, 말씀드릴 수 있는 성과가 없다고 답했다.


에이전시와 일했고, 각각의 디렉터들과 전문가들이 있었고, 그들이 나보다 전문가였다. 당시엔 그랬다. 그리고 내 역할은 내부의 계획과 요구사항을 잘 전달하고, 내부와 외부의 목적과 기대치가 동일해질 수 있도록 공유하고 설명하는 일과 결과물에 대해 피봇팅 하며 새로운 계획을 짜고 내외부로 다시 공유하는 일이었다.


난 이 일을 매니징이라기보다 aligning 시키는 작업이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내가 잘 해왔으리라 믿는다.


시니어 헬스케어 회사에 다닐 때, 한국에 장기요양보험을 처음 만드신 고문님께서 칭찬을 해주신 게 잊히지 않는다.


”전략본부에 대해 높게 평가했던 이유는, 모두가 안에서나 밖에서나 같은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또 한 번의 선택 앞에서 생각을 정리해 보면, 재고 따지고 내가 아는 수면 위의 숫자들과 평가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나의 결정근거인가? 아니다.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구조, 같이 일할 키맨들, 결정구조, 자본과 사업모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일이 지금 나에게 왔다는 것.


일이라고 다 같은 일일까? 아니다.


가서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른 사람이라면 더 잘할 수 있었겠지만, 그 순간 그 일이 나에게 왔고, 충분히 몰입해 나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면 그걸로 된 거다. 경험상 늘, 해보면 달랐고, 해봐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했을 때 개선된다는 경험을 해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평가는 늘 고객이 해줬다. 고객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1년남짓, 이곳에서 맡았던 일들을 돌아본다.


스타트업은 고질적으로 초기에 선뜻 용기 내 합류하기가 어렵다. 전 직장에서 정리해고의 쓴맛을 보는 과정에서 현 대표님의 제안을 받았던 터라, 새롭게 취업에 대한 준비를 하는 시간보다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현재 몸담고 있는 에이닷큐어는,

모든 C레벨들이 동일한 연봉을 받고 모인다고 제안 주셨고, 포지션은 동일하게 CMO였다.

대표님과 첫 출근을 같이 한 1호 직원으로 시작했다.


연구 논문과 콘셉트만 있는 무형의 아이디어를 유형의 인격체로 브랜드로 상품으로 탄생시키는 게 나의 전문분야였다.


우리 설루션은 목소리를 바이오마커로 활용하여 심부전을 진단하는 AI진단 설루션이다.

목소리로 심부전(HF)의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4단계로 진단하는 AI 설루션


a.cure라는 회사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로고를 만들고, 회사명에 의미를 부여하고,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수립하고, 디자인 theme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오픈했다.

검색 최적화를 통해 누구나 어디서 에이닷큐어를 검색하면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함께 co founder로 계시는 김응주 교수님은 고대 구로병원에서 교수이자 전문의로 활동하시니, 교수님의 2.5년간의 연구에 대한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고려대학교 의료원 산학협력단으로부터 원천기술을 이전해 왔으니, MOU를 맺는 것도 의미가 크기에 MOU체결을 제안해 전략적 협력구조의 시작점을 찍었다.


에이닷큐어의 핵심내용을 담은 홍보영상과 리플릿을 만들어 2025 CES를 준비했다. 감사히도, 협력사로 '베이리스'라는 모빌리티 업체의 부스 안에 하나의 설루션으로 에이닷큐어의 설루션을 소개할 수 있었다.


기존에는 치료 중심의 헬스케어였다면, 몇 년 전부터는 예방과 진단, 개인화된 맞춤형 치료에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제약사나 의료기기사가 아닌 일반 제조사에서도 헬스케어 설루션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2025 CES에서 만난 50개 이상의 업체 중 국내 차량 시트 제조 1위 업체인 대원산업과 이야기를 이어왔고, 설루션 공동 개발 및 사업화에 대한 내용으로 MOU를 체결했다.


CES를 처음 가봤다. 일하러 갔지만 라스베이거스, 잠들지 않는 도시에 있다는 게 매우 즐겁고 설렜다.

전시 기간 내내 함께 간 동료 이사님과 잠시 앉을 틈도 없이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한국어도 영어도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한국어든 영어든 말하는 것에 자신 있다.

특히, 거짓 없이 진정성 있게 고객의 입장에서 필요한 핵심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을 통해 고객의 말을 듣는 것에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상대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신이 나에게 준 능력이라 생각한다.


목소리로 진단하는 과정에 음성/소음에 대한 전처리 기술과, 에이전트와 자유로운 대화를 하는 LLM모델이 필요했기에 관련 전문기업을 발굴하여 2곳과 MOU를 체결했다.


투자유치를 위한 IR자료를 만들며 전문가들과 에이닷큐어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 포지셔닝, 사업화 계획 등을 수립하여 대표님과 부대표님이 활용하실 수 있는 1차 무기를 만들어 드렸다.


그리고 이번 주, 대표님께 현 포지션과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고 말씀드렸다. 10년 남짓 알았고, 콧물흘리던 시절부터 나를 봐오신 터라 두텁게 쌓인 정과 신뢰가 있으리라.


적을 옳긴다 하더라도 협업점은 무수히 많다고 생각했다. 대기업 같은 조직에 가서, 5년 정도 무조건 해보라는 조언도 주셨다.


나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 한 가지를 배워야겠다 마음먹으면 빠르게 파악하고, 습득한다. 초등학교땐 네일아트를 어깨너머로 배웠었는데, 교회에서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해줄 정도로 빠르게 기술을 익혔다.


어릴 때 한문, 일본어, 영어와 같은 외국어/언어 영역은 늘 100점이었다.

다른 과목은 30점에서 70점 정도를 맞아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것에만 몰두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도 나의 성적에 대해 한 번도 나무라거나 혼내신 적이 없다. 돌아보면.. 참 감사하다. 몰입하고 집중해서 학습하는 능력이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다른 특성을 지닌 내가 '틀리다'라고 하시지 않았다.

그저 우리 딸은 좀 다르다. 예체능 계열의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욕심을 접으셨다.


이는 졸업 후 나의 직장생활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났다.

한 회사에서 업무를 배우면, 오랜 시간 해당 업무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 걸어왔다면 어땠을까?


한 회 사에서의 최장 기간은 3년 남짓.

11년의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7개의 기업들 그리고 작은 영어 회화 학원과 작은 개인 브랜드 사업을 경험했다.


매번 고민했다. 나는 왜 한 곳에 오래 못 다닐까? 참을성이 없는 걸까? 능력이 부족한 걸까? 사람들과 잘 못 지내는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쉽게 포기하는 걸까 등등.


그러나 생각망치를 통해 이런 사람도 성공할 수 있구나, 희망을 가져본다.


그동안의 경험과 경력이 스티브잡스의 말처럼 연결되어 아름다운 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나를 의심하는 쪽보단 순간에 몰입하며 나 자신을 믿는 선택을 하려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달라진 생각은,

그간 이직하며 나의 목표를 확고히 해본 적이 있는가? 싶다. 빠르게 브랜드와 제품을 만들어 론칭하고, 초기 마케팅과 세일즈를 경험하며 전체 흐름은 알았지만 정말 그 과정에서 피봇팅을 하며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의 깊은 전문가적 관점이 쌓였는가? 에 대한 답변은, 경험해보지 못했다.이다.


모든 순간들이 타이밍과 나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엔 목표치에 대한 성공까지의 경험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분들을 위해 생각망치에서 내가 관점을 바꿀 수 있었던 주요 내용과 KEY POINT를 나눈다.


'그리고 사회인이 된 뒤에는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그때마다 주변사람이 혀를 내두를 만큼 깊이 몰입했고, 그 몰입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었다. 이처럼 한 가지 일에 원숭이처럼 몰입하지만 그만큼 쉽게 싫증도 낸다. 많은 사람이 이런 성향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은 '성장이 빠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80점을 받는 데 성공하면 그 일에 싫증을 내고 '다음'을 향한다. 어느 정도 몰입하면 그 분야의 핵심 지식은 대부분 얻을 수 있다. 사실 '싫증'을 자주 느끼는 것은 끈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익숙해졌고 더는 배울 게 없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성장의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사람 이상으로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그것들이 새로운 도전에서 무기가 된다.'


최근 1년 사이에 싫증이 난 일이 몇 가지 있는가?

싫증난 일을 나열한 '싫증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기타 연주, 영어회화, 게임... 얼마나 많은 일에 싫증이 났는지 눈에 보이게 가시화 하자. 싫증이 난다는 것은 익숙해져서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요컨대 '싫증 리스트'는 곧 '성장 리스트'다.

1년 후 리스트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확인하자. 성장의 증표다.


어쩌면, 나는 싫증을 낸 게 아니라 못해서 포기한 걸지 모른다. 그런데, 포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를 깊게 안다면 안 맞는다 생각했을 때 나의 고유의 색을 버리고 뭔지 모를 색을 입혀 검은색을 만드는 것보다, 나의 색을 선명하고 아름답게 고수하는 게 현명하다 생각한다.


누구는 나를 a라서 좋아하고 누구는 나를 a라서 싫어한다.

신은 나를 a로 만드셨으니, a로 충실하게 사는 게 신의 눈에도 세상의 관점에서도 좋다.


더 많이 웃고, 즐기자. 억지로 이런 척 저런 척하지 말고, 솔직하게 고유한 당신의 캐릭터 대로 살기 바란다.

어차피 이 순간도 이미 당신의 베스트 시나리오대로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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