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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아름답고 두려운 여정에 대하여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 나와 상대를 바로 보기 시작할 때

by EJ

“You made me feel something I never thought I could feel again.”

“너는 내가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던 감정을 느끼게 해 줬어.”


– 영화 ‘러브 앤 드럭스(Love and Other Drugs)’ 중에서



출장에서 돌아온 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TV를 켰다.

앤 해서웨이와 제이크 질렌할이 나오는 ‘러브 앤 드럭스’.

아주 오래전 봤던, 그저 볼만했던 영화라고 생각했던 영화라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기 딱 좋은 로맨스 영화겠거니 했다.


근데 다시 보다 보니 이번엔 이 서사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앤해서웨이(매기)의 불안과 연약함,

파킨슨이란 병에 의해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에 완전히 의존해야만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을 떠날 상대들에 대한

지레짐작, 미안함, 죄책감, 수치심, 연약함,

상처받기 싫은 방어기제,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에 대한 분노, 억울함..

그래서 선택한 섹스파트너로서의 관계들.


감정적 노동이 없고,

그저 육체적인 즐거움이 필요할 때,

내가 여자로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필요할 때,

그럴 때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로 자신을 지켜온 여자.


제이크 질렌할(제레미)의 깊이 없는 가벼운 관계들.

남성으로서 너무 매력적이지만,

어떠한 모습으로써 자신을 포장했던 외부의 모습만 봤던 여성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바로 보게 해 준 매기를 만나,

자신이 자신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고,

스스로 신뢰함으로 더 나은 선택들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경험.


그 과정에서 진짜 사랑을 경험하고,

달라지는 스스로를 느끼는 제레미.


“You meet thousands of people and none of them really touch you. And then you meet one person and your life is changed. Forever.”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나도 아무도 진짜로 널 건드리지 못하지.

그러다 단 한 사람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어. 영원히.”


제레미가 시카고 세미나에 참석하던 날,

매기는 건너편에서 파킨슨 환우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같은 시간, 서로 다른 공간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감정의 파동을 겪는다.


매기는 처음으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 안에서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감정, 그리고 사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느낀다.

함께 모인 파킨슨 환자 중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랑받고 있어요.”

그 말은 매기의 얼어붙은 마음을 아주 조금 녹인다.


반면 제레미는,

한 중년 남자의 조언을 듣는다.

“나는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고통을 함께 겪는 삶은 피할지도 몰라요.”


그 말은 사랑조차 버거워지는 병의 현실을

너무 날것 그대로 건네온다.


그리고 그 순간,

카메라가 매기를 잡는다.

너무나 아름답고 섹시한 매기의 얼굴 뒤로

병이 깊어진 한 여성 환자의 떨리는 모습이 포개진다.


제레미는 사랑을 느끼면서 동시에 깊은 두려움에 잠긴다.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그 의문이 그를 압도한다.


그 후 제레미는 무모할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파킨슨 치료제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하지만 매기는 점점 지쳐간다.


그가 찾는 건 ‘약’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의 행동은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고,

그 불안은 끝내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의 그림자를 키운다.


그래서 매기는 부탁한다.

떠나 달라고.

그리고 둘은 헤어진다.


몇 달 후,

제레미는 제약사 내에서 중요한 승진을 앞두고 있고,

매기는 새로운 남성과 식사 중이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마주친다.


“잘 지냈어?”

그 짧은 인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태도로

매기에게 또 한 번의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제레미는 몰랐다.

그녀의 마음을.


그날 밤,

제레미는 과거 매기와 함께 찍었던 영상을 다시 꺼내본다.


매기의 영상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난 아마 이 병을 안고 살아갈 거야.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겠지.

어떤 날은 당신을 사랑하는 게 무서울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난 괜찮아.

행복해.”


제레미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도망쳤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의 무게였다는 것.


그리고 매기에게 달려간다.

밤새 그녀의 카페 앞에서 기다리고,

거절당하고,

또 기다리고,

이번엔 고속도로를 달려 그녀를 향해 쫓아간다.


매기는 계속 그를 밀어낸다.

사랑해서 놓아주려 한다.

하지만 이번엔 제레미가 말한다.


Maggie:

“I’m gonna need you more than you need me.”

제이미:

“That’s okay.”

Maggie:

“No it’s not! It isn’t fair! … I can’t ask you to do that.”

제이미:

“You didn’t.”

Maggie:

“I may have to go somewhere..”

제이미:

“You’ll go there. I just may have to carry you.”


“난 네가 필요할 거야, 네가 날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그래도 좋아.”

“그럴 순 없어! 그건 공평하지 않아… 난 여기저기 가야 할지 몰라.”

“넌 거기까지 갈 수 있어. 다만 내가 널 데리고 가는 것뿐이야.”

"난 그렇게 해달라고 할 수 없어"

"네가 요구한 게 아니야."


"호화로운 삶과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 말고,

나는 우리가 함께 하길 원해.”


그 장면에서,

나는 사랑이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사랑은 확신이었다.

선택이었고,

책임이었고,

무너져도 곁에 있는 태도였다.


러브 앤 드럭스는 단순히 병든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두려움 많은 두 사람이

서로의 불완전함을 마주하고,

그럼에도 서로를 ‘선택하는’ 이야기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랑이란

“내가 너를 지킬게”가 아니라,

“나는 나조차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함께할게”라는 말이라는 걸.


“You made me feel something I never thought I could feel again.”

“너는 내가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던 감정을 느끼게 해 줬어.”


그 말처럼,

사랑은 우리 안의 죽어있던 감각을 다시 일으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각을

두려움 없이 안아주는 것.

그게 어른의 사랑이다.


한국나이로 서른여섯이 된 나에게,

결혼도 연애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인걸 알면,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왜 아직 솔로냐고,

눈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고.


아마 이번에 러브 앤 드럭스를 보며

그토록 마음 깊은 곳에서의 눈물이 터져 나온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의 지난 상처들,

나를 바로 보지 못했던 왜곡된 시각들.

자기 연민에 빠져 상대를 더 불안하게 했던 못난 나와의 이별,

사랑하면 누구나 두려움과 불안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과 나를 선택해 준 상대를 선택하는 약속, 책임, 태도.


신이 나에게 예비하신 인연은 분명 있으리라 믿는다.

그전에, 내가 스스로 건강히 바로 스는 것이 먼 저란 걸 안다.

신은 나와 나의 인연 모두에게 역사하시며,

우리가 만나기 전 준비되어야 하는 부분들을 아픔, 기쁨, 슬픔을 통해 배우게 하신다.

깨어지게 하신다.


그리고 바로 보게 하신다.

나 자신을. 그리고 상대를.

그래서, 이 삶을 한번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매일이다.


사랑, 그 아름답지만 불완전한 여정에서 이제는 다른 선택들을 하며

신의 사랑에 닿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금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선택을 하면 펼쳐지는

놀라운 삶의 결과물들을 같이 경험하시길..


https://youtu.be/LZDir3e680o?si=QgXaNS5QB_2JNv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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