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그렇지만 나는 미성년자였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버티는 수밖에...
중학교 때, 엄마들끼리도 잘 아는 친구집에서 자고 오는게 유행이었다. 순수하게 친구집에서 잠옷을 입고 밤새 수다떨며 놀고싶었다. 물론, 지금 생각했을때 부모님 입장에서 안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히.
나는 그럼에도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나 ㅇㅇ네서 자고오면 안되?ㅇㅇ네 어머니도 허락하셔서'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도끼눈으로 '정신나간 소리좀 그만해 진짜'라며 분노게이지를 올렸다. 그러다가 옆에 동생이 갖고 놀던 딱딱한 아기모형 인형을 소리지르며 나에게 던졌고, 나는 눈을 맞았다.
너무 아프면 소리도 안나오지 않나. 나는 소리도 못지르고 그자리에서 그냥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나서도 계속되는 엄마의 폭언 '나가죽어라 미친년 왜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니' ..어질어질하던 와중에 거울을 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져있었다. 나는 아무 흔적도 없던 폭력과 폭언에서 이제, 상처나서 선명하게 보이는 내 눈을 보니..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저녁에 돌아오면 엄마는 자초지종 자기 유리한대로만 얘기하고, 나를 천하의 불량배, 불효녀 날라리로 묘사하여 아빠도 나한테 눈을 흘기며 제발 조용히 살라는 식으로 나를 대했다. 물론 아빠는 엄마처럼 폭력에 폭언은 전혀하지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나를 보호하지도 않았다.
학교에서는 전교 20등 안에도 들고, 눈에 잘 튀지도 않았던 나인데, 집에만 가면 불량배에 까져가지고 말도 안듣는 골칫덩어리 취급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받는 스트레스를 학교에서 푸는 식으로 점점바꼈고, 엄마의 괴롭힘이 너무심하니 학교에서는 기가 쎄서 누가 건드리면 지지않고 터트리는 성격이 되가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가 바라보는 대로 되어갔을지도.
어떤날은 영어 시험 점수가 85점에서 95점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부모님의 사인과 한줄평을 시험지에 적어서 오라고 했었다. 나는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내밀었는데 엄마는 '뭐야 이게?'라더니 한줄평에
'성적이 많이 좋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잘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나는 성적이 올랐는데, 뭐가 좋지 않다는거고 뭐를 더 잘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되어 또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른 날은 뭐때문인지도 모르겠는데 또 화풀이 당하며 머리채잡히고, 질질끌려가고 발로 차이며
나도 분노로 '아악!!'소리를 질렀는데, 엄마가 옆집에 매일 챙피하다며 나를 끌고 아파트 꼭대기층으로 갔다.
그러곤 복도에 놓여져있던 나무막대기 같은걸 들고 나를 때릴 기세로 또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진짜 엄마가 나를 아파트에서 밀어 죽일거같아서, 너무무서워서 뒷말은 기억이 안난다. 그러고 갑자기 잠잠해지더니 '야 아빠한테는 말하지마라. 아빠가 너 이런줄 알면 놀랜다' 라고 해서 나는 알았다고 하고 그날일을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가스라이팅인듯....이런일은 꼭 엄마랑 나랑 단 둘이 있을때 일어났고, 둘만 있을때 일어났던 일방적은 폭언과 폭력은 저녁에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항상 "ㅇㅇ이(나)랑 또 싸웠다"로 바뀌어 있었고, 나는 엄마랑 같은 가해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래서 스스로도 엄마랑 맨날 싸우는 문제아라고 생각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나를 때리고 폭언할때, 머리를 안맞으려고 팔로 막아내고, 안맞기위해서 문을 닫고 들어가 문을 힘껏 막고, 내팔을 손톱으로 긁으며 난리를 칠때, 그 엄마의 팔을 밀어내는 것이 항상 같이 '몸싸움'을 한 구제불능 막장딸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대학생이 될때까지 단연코 그 20년의 세월동안 단한번도 엄마를 때려본 적이 없다.
억울할만치..차라리 그때 나도 맞서서 몇대 때리고 나올걸 그럼 이렇게 긴시간 억울하지도 않지라는 나쁜생각이 35살이 된 아직까지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