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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cret Nov 08. 2024

09.행복한데 행복하지않아

갑자기 왜이러지? 일상생활이 힘드네 

첫 회사를 5년 넘게 다니고 이직하여 두번째 회사는 1년 2개월 다니고 쉬게됬었다. 

그 사이에 나는 결혼을 하게됬었고, 두번째 회사 이후 2개월 정도 쉬는 틈에 엄마의 마지막 연락이 왔었던 것이다. 강아지가 안락사되어 하늘로 갔다는 마지막연락에 나는 이성을 잃고 '제발 나를 감정쓰레기통 취급하지말아' 라고 소리를 치고, 엄마도 '너는 무슨말을 그렇게하냐, 후회하지말아라' 라고 협박식 어조로 말했고, 

나는 코웃음을 치며 '후회는 왜해? 안해!'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2년 전 엄마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 통화가 8월이었으니, 9월에는 바로 추석이 있었다. 나는 그때 33살의 나이였지만 아직도 엄마와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추석이 다가올 수록 안절부절해 했다. 

여태껏 살아온 대로 아무리 엄마와 싸웠어도 명절은 지내러 가야할 것 같았기 떄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만큼은 내가 먼저 사과하기가 싫었다. 그냥 싫었다 이런 상황의 반복이. 


그래도 습관이 무서운게, 나는 기본 '도리'는 해야할 것 같아서 추석 전날 남편과 함께 친정 문 앞에 과일 박스를 두고 왔다. 동생에게 '문 앞에 과일놨으니 시간될때 들여놔달라'며. 


남편은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부모자식간에 이렇게 까지 해야되냐며 처음접하는 비정상적인 모녀의 갈등에 그저 철없는 '자존심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동생은 '진짜 안올거냐'고 했다.

내가 '응'이라고 했더니, 동생이 '언니는 그렇다쳐도 형부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와야되는거 아니냐'고 했고, 나는 폭발했다. 동생의 생각이 아니라 옆에서 엄마가 한말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혼한지 1년도 안된 기간동안 남편이 얼마나 그놈의 도리를 하려고 해왔었는데, 나로도 모자라 이제는 남편까지 들먹이며 장모라는 이름으로 본인이 마음대로 휘두를 있는 '종'으로 만들려 하는것만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노예짓을 해야 만족할런지? 내가 무엇을 해도 엄마는 충족되지 않으면서. 

그래서 동생에게 답장했다. 

'ㅇㅇ야, 형부 이미지를 생각해야된다는 거 너의생각인지 엄마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형부는 온전히 나랑 결혼한 사람이지 우리집에 잘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 아니다. 니 생각이면 너의 생각이 잘못된거고 엄마 생각이면 이말 꼭 전해주고 추석잘보내' 부들부들 거리며 문자를 보냈고, 추석당일에는 시댁에만 다녀왔다. 


그러나 시댁에 있는 동안 나는 불안해했고, 친정을 가야하는 시간에는 놀러를 나갔지만 놀러간 곳에서도 불안함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대소사를 챙기지 않은적은 없었으므로. 그래서 추석당일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통화를 눌렀다. 마치 종소리를 놓친 파블로브의 개 처럼. 

그랬더니, '고객님께서 지금 연락을 받을수 없어..띠띠' 라고 하였고, 그제야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항상 하던 패턴대로 해야 마음이 편해지도록 습관이 들어있었나보다. 

먼저 거절하기보다는 거절당하는 것이 편한. 그리고 끝까지 나쁜딸이 될 용기는 부족했던 마음. 


사실 마지막 통화 전에도, 엄마가 생일이 있어 본인이 원하는 식당에서 성대하게 엄마의 생일을 치뤘기에 몇일 뒤 어버이날에는 남편과 상의하여 양가에 방문하지 않고 선물만 보내기로 했었다. 그래서 선물을 보내고 엄마한테 연락했더니, '어버이날인데 너희가 오지도 않으니 서운하다. 그래도 선물로 받고 끝내겠다.' 라는 식의 말이 돌아왔다. 


나는 또 화병이 났다. 몇일전에 몇십만원어치 생일잔치를 사위와 딸둘과 성대하게 치르지 않았나? 

그리고 어버이날에 선물도 보냈는데, 돌아오는 말은 고맙다기보단 '부족하다.모자르다,성에 안차지만 그래도 뭐 이정도로 내가 만족해보겠다.' 라는 식이라니. 


어디 선물 맡겨놨나? 엄마는 무슨 항아리 같았다. 밑이 깨져, 부어도부어도 차지않고 선물이고 돈이고 감정이고 모두 바닥으로 흘려보내는 밑뚫린 항아리. 


왜 진작 독립하지못했을까, 왜 자꾸만 그런 텅 빈 엄마를 만족시키려 화가나도 찾아가고 사과하고 노력하려 했을까. 

어쨋든 결론적으로 엄마와 연락하지 않은 채 2년은 흘러갔고 중간중간 엄마의 부재중전화 1통과 문자들이 왔지만, 바로 '잘못걸었다' 라던가, '결혼생활과 친정문제로 많이 힘들지 그래도 풀자. 이번주에 너네집에 방문하겠다.'라며 있지도 않은 결혼생활 문제를 들먹이며 타이밍이라도 맞춘듯이 어버이날 전날에 연락을 한다던가. 

니가 언제까지 사과 안할거냐는 식의 찔러보는 연락과 '내가 너한테 받을게 많은데 연락안하니?'라는 식의 속이 뻔히 보이는 연락들이 왔었다. 


나는 연락이 올때마다 분노의 감정이 올라왔지만, 한번도 대답하지 않았고 점점 마음의 평화를 찾는 듯 했다. 시간이 갈수록 너무 해방감이 느껴지고 행복했다. 진작에 이럴걸. 

진작에 내 마음에서 엄마를 내려놓을걸. 진작에. 


그런데, 문제는 직장에서 터졌다. 갑자기 세번째 직장부터는 6개월 다니고 사람이 힘들어 그만두고, 네번째 직장은 또 9개월, 다섯번째 직장은 8개월 다니고 그만두게 되는 등 불안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답답했다. 엄마를 보지않아서 행복하긴 한데 이제는 직장생활에 부적응이라니,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일상에 어두운 그림자가 자꾸만 침투하는 것 같았다. 

왜그럴까, 나를 괴롭히는 존재와는 헤어지게 되었는데 왜 스스로 나 자신을 버거워하며 어떠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공간으로 나를 갖다두려 하는걸까. 


매일 출근하는 길에, 사무실에 들어가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기력조차 없어진것 같았다. 일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퇴근후에도 저마다의 행복을 가지고 사는것 같은데, 얼굴은 회색빛에 우울함을 달고 마지못해 사는것만 같았다. 그리고서는 드는 생각


'아, 사람이 싫다. 사람이 힘들다'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누가 괴롭히지도 않고 있었는데도 좋은사람이건 나쁜사람이건 대화도 하기 싫었고, 기분이 좋지도 않은데 웃으며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거래처에 억지로 웃어보이며 프로답게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것도. 갑자기 모두모두 싫고 너무 힘들었다. 퇴근하고 오면 밥도 차려먹을 힘이없어 항상 방전이었고, 집에 누워있게만 됬었다. 


누워서 드는 생각은 '어떡하지, 나 이제 사람이 싫어. 너무싫어. 혼자있고싶다. 그냥 다 싫고 아무것도 하고싶지않아'. 


그런데..가만있어봐...사람도 싫은데 더 큰 문제는 '내 스스로가 너무너무 싫은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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