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어른은 있다. 그러나 어른으로 성장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어른'이란 말은 다 성장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다 성장한'이란 말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것을 의미하지만 사실 몸만 성장한 사람이 많다. 그런 의미로 우리 사회에는 육체만 성장한 어른이 많다. '성인'이란 의미도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을 말한다. 관례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성인, 즉 어른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어른은 책임이 따른다. 말과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고 노동을 해야 하고 그것으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컸다고 해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말과 행위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도덕이란 이름의 과목을 배웠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정치와 경제, 윤리를 배웠다. 그건 민주사회에서 올바른 어른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가르침이었다. 한국은 종교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다르다면 종교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편이고 내용은 다르지만 훌륭한 사람으로 살기 위한 기본적인 가르침이 교리인 종교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이건 청소년이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과연 바른 어른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일까. 지금도 유튜브에서는 물건을 훔쳐가지 않는 한국 카페의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가 많다. 순간적으로 뿌듯하지만 자전거를 도둑 맞은 경험이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둑이 집안까지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간 시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카페에 물건을 두고 가도 훔쳐가지 않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콘텐츠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내심 불편한 것도 있다. 눈에 보이는 물건은 훔쳐가지 않지만 우린 부패한 사회의 일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 중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또 아이들을 혼낼 때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을 훈육할 때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한다고. 나는 사람을 대할 때 눈을 피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늘 듣던 말 중에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않던가. 심리학에서 거짓말을 할 때 사람들의 행위 중에 눈동자를 굴린다거나 시선을 회피해서 일정한 방향으로 치켜 뜬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다. 눈동자를 마주하는 건 마음을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 눈 빛 때문에 상처입는 경우도 많다. 윽박지르거나 화를 표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대했을 때의 눈빛은 너무나 불편하다. 그런 게 예사인 어른들도 있다. 눈빛으로 남을 그렇게 능멸하거나 치욕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서 염치나 부끄러움이나 반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정말 이 사회 어른의 표본이었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그곳에서 얻어진 수입을 지역 인재의 장학금과 생활비로 지원하고 지역 문화 활성화에 도움을 준 다음 어느 순간 그간 운영해온 재단의 남은 재산을 경상대에 기부하고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어른. 마지막 진주 가을 문예 시상식에서 어른의 눈물을 봤다. 내가 알지 못했던 분이었으나 늦게라도 알게 되어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분이었다. 그분의 다큐는 아주 어렵게 만들어졌다고 들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길 원하지 않으셨던 분, 정말 어른의 행위는 흔히 보는 몸만 어른인 사람의 모습과 달랐다.
어른은 있다. 그러나 너무나 드물게 발견한다. 나도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가끔 내가 정말 어른일까, 돌아보게 된다. 몸만 어른으로 성장하고 자기 몫의 권리만 찾으려고 하고 대접받으려고 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고생했던 과거의 시간을 주입하면서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식으로 나는 삶을 알고 있다는 듯 잘난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누구나 삶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으며 먼저와 나중의 차이일 뿐이고 먼저 간 사람은 뒤에 온 사람에게 빛으로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 모든 게 선명하고 투명하게.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게 무얼까. 사려깊게 행위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가끔 제 생명을 구해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주인의 고통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반려동물의 영상을 보면 숙연해진다. 우리가 동물보다 나은 게 무엇일까. 게다가 어른으로 성장했으면서 어린이에게 모범이 되고 있는 삶을 살고나 있는가. 염치도 모르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배운 가치에 대해서 '개나 줘버리는' 몸만 어른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삼 부끄러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