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우체통
삼 주간 나는 심하게 아팠다. 감기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후두염이 심해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의 모든 신체 기능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결국 이석증까지 오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경험과 밑으로 더 밑으로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하고나서야 내가 지친 상태라는 걸 인정했다. 잘 버텼구나, 싶었다. 지난 일 년간 나는 소리없이 안으로 아프고 통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환하게 웃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나서 이것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그러다 우연히 쓰레드에 들어가보게 되었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의 하소연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사람, 일상에서 쑥쓰러워 묻지 못했던 질문들이 쏟아졌다. 너무 많은 목소리에 당황해서 읽다가 덮고 다시 읽고 댓글 몇 개를 달고 하다가 내가 소모되는 것 같아서 두 번을 삭제하고 이젠 다시 열어보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만에 나는 동네에 있는 북카페에 왔다.
내가 요즘 자주 가는 유투브가 있다. '재지마인드'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부부의 소소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그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뭘 하며 어디를 가는지 가끔 들여다보지만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 모두를 다 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잠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그들은 서울이 얼마나 가볼 곳이 많은지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며 보여주고 구석에 숨어있는 갤러리나 박물관을 들어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또 작지만 얼마나 맛있는 음식점이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부부가 나누는 대화, 대기업을 그만 두고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때는 그들이 읽은 책에 대해서 구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그들이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적어도 나는 그것을 볼 때 나도 그들의 대화에 참여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마인드마이너 송길영씨의 새 책을 소개했다. '핵개인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었는데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그의 강연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있어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들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다. 하긴 나는 평생을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 부러웠고 똑똑한 사람이 부러웠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 부러웠고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잘 성장한 어른이 부러웠고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고 아름다운 사람이 부러웠다. 또 젊은 나이에 건전한 생각을 갖고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이 부러웠고 그것이 어울리는 얼굴의 사람을 부러워했고 이젠 젊은 사람 모두가 부럽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가끔 미움을 받았던 적도 있었고 그것이 나의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적도 있었을 것이며 그래서 새로운 사람, 나보다 나은 사람과의 인연을 맺은 적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월감이 자존감과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열등감이 스스로를 채우는 양식이 될 때도 있는 그저 세상엔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사실 이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중요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이제 40을 보는 그들 부부를 보면서 내가 정말 그렸던 삶, 살고 싶었던 것, 추구하는 생활 등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입으로는 늘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내가 부러워한 삶 때문에 나는 선뜻 소박한 삶을 선택하지 못했다. 성공하고 싶었고 배우자의 성공을 등에 업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걸 꿈꾸었고 비우기보다는 채우는 것으로 허전함을 달랬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나서는 세상을 다 볼 욕심으로 여행을 다니며 생각과 행위가 뒤틀리는 삶으로 점철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득 이즈음 끊임없는 질문들이 따라다닌다. 이젠 예전처럼 무언가를 사는 것에 흥미가 없다. 심지어 읽고 싶었지만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을 쌓아놓는 일에 대해서도 흥미를 잃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의미없이 떠들고 있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닌 것도 같다.(정신과적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에 창 밖으로 보이는 초록 잎들이 좋고 푹신한 흙길이 좋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들이 좋고 말 없이 나를 지켜봐주는 자연이, 그런 친구가 그리워진다.
나는 몰랐지만 내가 정말 그리는 삶은 소소한 삶이었던 것 같다. 송길영의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라는 책의 제목 하나가 인상적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이다 "나이들수록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열광과 지지를 받는 관록의 아티스트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안 멋진 사람이 멋있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멋졌던 사람을 더 많은 사람들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삽니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의 허세를 팔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살아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 말은 공감하면서도 공감하지 않는다. 작가의 말처럼 소박한 사람의 허세없음을 사람들이 열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린 주목할만한 사람에게 열광하고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 소박하고도 존경받을만한 언행으로 지지를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작가의 말에 공감할 것은 많다. 한국에서 장자, 장녀로 산다는 것의 의미, AI의 시대에 공존하기 위한 삶, 세계관을 주고받으며 이제 더 넓은 세상의 가능성을 가졌지만 가족이나 그룹보다 개인의 가치가 더 소중해지는 시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그의 책 속에 한 페이지씩 자리하는 사진들도 꽤 인상적이다. 특히 4시 5분 전을 가리키는 시계 그림이 나는 꽤 인상적이었다. 부부 덕분에 나도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고는 그들 부부를 내가 왜 좋아하는지 그들 부부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이제 아이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나도 혼자가 되어가는 연습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주 조금만 일찍 그들 부부처럼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의 게으름이나 방만함을 반성하지만 사실은 지금도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위로를 하며 진짜 내가 그리던 삶에 대해서 고민하기로 했다. 아직 나는 나의 캐릭터를 갖지 못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쏟아야 할 열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내가 하는 이야기가 타인에게 신뢰를 줄 것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으며 내가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과거에 연연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만의 색깔, 캐릭터를 확고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재지마인드를 운영하는 부부의 얼굴에 소박하게 내려앉은 웃음 속에 있는 자존감, 그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확고한(물론 그들도 실패를 거듭할 수도 있겠지만) 성격들이 그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세계를 확고히 하는 세계를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