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있는 날 준비를 하면서 나는 다짐하는 게 있다. 오늘의 대화 주제를 내가 꺼내지 말자. 오늘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오늘은 어떠한 대화에도 반론이나 부연을 하지 말자. 그리고 최근에 본 책 이야기나 나의 최대 관심사 혹은 새로 본 영화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다짐을 제대로 지켜낸 적이 별로 없다. 나는 매번 침묵을 못 견뎌하고 내가 요즘 읽은 책에서 알게 된 상식을 세상 일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정치에 흥분하고 사람들의 몰염치에 대해 지탄하며 강한 사람처럼 보이는 말과 언행으로 후회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된다. 아침의 다짐이 무색하게 저녁이면 헛헛한 감정과 자괴감으로 땅 밑으로 기어들어갈 것 같은 우울을 경험한다.
사람들은 보통 강한 사람을 싫어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자기 주장을 하는 사람을 불편해 한다. 대화의 주제는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가 하고 싶은 대화의 주제와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목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진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연극을 함께 보러 다니고, 춤을 함께 배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동호회가 활발해진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를 나눌 동호회에 가입해서 다른 곳에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내 관심사와 같은 정보를 갖고 있는 이들 앞에서는 이야기하기가 훨씬 유연하다. 그럼에도 조심해야 한다. 분위기를 자기 주도로 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적당히 동조할 것, 틀린 정보에 대해서 지적하지 말 것, 목적이 다른 사람을 향해 공격하지 말 것 등등이다. 어쩌면 그건 사람을 대하는 기본 예의에 가깝다.
세계 학생 토론대회(WSDC)라는 게 있다는 걸 나는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영화를 보고 알았다. 고등학교에서 토론 배틀을 거쳐 대표를 선정하고 토너먼트 형식으로 학교간 대결을 펼치고 전국의 대표 학생이 팀을 이뤄 한 가지 주제를 심도있게 토론하는 과정은 논리학과 철학, 인문학적 해박한 지식 등이 있어야 가능한 일처럼 보여졌다. 그리고 그런 행사는 대학에 가서도 이어진다. 그들의 지식은 더욱 깊어지고 설득력이 있으며 논리는 한층 견고해진다. 토론 배틀에서 상위권에 드는 사람은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소재를 갖고 만든 영화를 참 좋아했다. 신선했기 때문이다. 말싸움, 상대의 논리가 빈약한 곳이 어딘지 찾아 견고했던 그들의 가설을 흔들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는 스릴을 느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결국 모든 건 대화를 통해서 이뤄진다. 침묵은 상대의 감정 상태나 처한 환경을 설명할 수 없다. 이해를 받기 위해서도 대화를 하고 설득을 하기 위해서도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있을까.
많은 부부가 겪는 어려움이 대화의 부족이라고 한다. 세대간의 소통 부재, 성별간의 이해 부족도 대화 부족이 아닐까. 청년기의 남성들이 쏟아내듯 이 사회에서 역차별을 당한다고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 있을까. 저소득층,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이 여전히 성차별의 경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 적 있을까.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혼잣말처럼 우물거리고 사람들과 만나서는 세상을 조롱하고 사람들을 희화화시키고 혹은 구매욕을 채우고 과도한 소비나 자신이 취득한 직위와 힘을 과시하면서 헛헛함을 채우고 허세로 상대를 제압하는 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비참해 하며 어떻게든 동경하는 세계로의 진입을 위한 공허한 사탕발림으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가 창궐하는 시기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인물이 쇼펜하우어였다. 많은 사람들이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을 이야기하며 혼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함부로 자신의 이야기를 떠벌리지 말라고 했고 관계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말한 쇼펜하우어는 너무나도 괴팍해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코로나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교류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경험했다. 때로는 혼자 있는 것이 여럿이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 속에서 나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대화는 필수다.
세련되게 다투고 부드럽게 대화하고 설득할 수 없을까. 물론 모든 대화를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제목처럼 편안한 대화가 필요할 때가 더 많다. 그런데 내게 편안한 대화는 뭘까. 자식 자랑도 아니고, 어제 산 아름답고 비싼 물건도 아니다. 사는 이야기,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우리 사회의 이야기,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대화의 기술은 내게도 숙제다. 아침마다 다짐하는 것이고 저녁이면 실패한 내 대화술에 좌절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련되게 대화하는 법에 대한 책을 읽거나 유툽을 통해 말하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반감을 느낀 적도 있었고 잘난척을 나보다 더 많이 하는 사람의 오만한 모습을 보기도 한다. 오히려 말재주가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곤 한다. 결국 다시 아침의 다짐으로 돌아간다. 세련되게 말하고 다투고 설득해서 내편으로 만들기. 꼭 내편이 아니어도 좋다. 나와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내가 그와 대화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영원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