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에 대하여

생각하는 우체통

by 이성주

포털의 배우 사진 밑에 달린 캡션을 보다 보면 여배우의 포즈와 그녀가 입은 옷, 입가의 미소를 보고 '우아하다'라는 형용사로 수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아하다'라는 형용사는 고상하며 기품이 있고 아름답다는 뜻을 갖고 있다. 배우의 사진을 다시 본다. 아름답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고상하고 기품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왜냐하면 고상하고 기품 있다는 것은 내적인 아름다움이고 내적 아름다움은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눴을 때 풍겨 나오는 내적 향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교양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하는 게 그래서다.


교양 있는 사람, 기품 있고 고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말을 느리게 하고 상소리를 하지 않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이를테면 유명한 철학자나 경제학자, 심리학자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말을 한다면 교양 있고 기품 있고 고상한 사람일까. 대부분 우리가 인정하는 내용은 그런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지식과 지혜는 다르고 말의 톤이나 어조는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데 하나의 수단이지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식이 내면에서 체득되어 자신의 언어로 튀어나올 때 그리고 그것으로 삶과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긍휼의 감정이 배어있을 때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불쌍한 존재다. 태어나길 불안정한 존재로 태어났다. 표범이나 치이타처럼 빠른 발을 가지지 못했고 독수리나 매처럼 높은 곳을 날지 못하며 개처럼 예민한 코를 지니지 못했고 토끼처럼 소리에 반응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사자만큼 폭력적이고 코끼리만 한 힘을 빌려올 수 있고 복잡한 기계를 운전해 달릴 수 있고 날 수 있다. 선하기도 하지만 악하기도 하고 조변석개하기도 하고 일촉즉발로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기도 한다. 항상성은 인간에게서 기대하기가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그래서 좋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에 예측 가능한 사람, 좋은 사람의 기준에 일관성이 있는 사람을 꼽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에게 누구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면일 것이다. 현대사회라는 단어에 숨은 뜻은 복잡하고 다양함이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와 상관없이 우린 매일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고 화를 누르고 분노의 감정을 감추고 슬픔을 애써 내면에 녹인다. 남자들은 울지 말아야 하며 여자들은 큰소리로 웃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걸 멈춘 게 몇 년이 되질 않았다. 이젠 남자도 화장할 수 있고 여자도 남자처럼 꾸미고 전투적으로 힘을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것이 용인되지 않은 지역사회도 있고 은근히 경멸하거나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저 가면을 쓰고 사는 게 편하다. 그러니 고상해 보이지만 내면에 동물성을 감춘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니 그것이 세대 차이를 만들고 성대결을 부추기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아하고 고상하다는 것을 말을 느리게 하면서 육두문자를 쓰지 않으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아니, 욕설을 달고 살아도 그의 사회적 지위로 눈 감는 경우도 많은 것은 아닐까.

한동안 유행했던 '얕고도 넓은 지식'이란 타이틀을 단 책들이 많이 팔렸다. 그런 책들은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할 때 정말 요긴하게 쓰인다. 또 처음 본 사람이거나 비즈니스로 얽힌 사람과의 대화엔 절대로 필요한 책이다. 수능에 온 에너지를 쏟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서 폭넓고 사유를 요구하는 독서는 힘들었으니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한 다음 대화에서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자랑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깨닫는다. 얕고도 넓은 지식은 사람을 깊이 사귀기에 얼마나 큰 장벽인지. 결국은 짧게 만나 수박 겉핥기식 대화를 하다 헤어지거나 세상 돌아가는 속된 대화가 주제여야만 오랜 관계가 가능하다. 어쩌면 끼리끼리 만나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깊은 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얕고 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금세 알게 된다. 그저 외운듯한 지식을 나열하고 자신에게서 녹아내린 지혜가 담긴 언어가 없다는 사실을.


교양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은 결국 언어다. 그렇지만 우리가 속기 쉬운 게 있다. 지식을 나열하며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달변가가 교양을 지닌 소위 기품 있고 고상한 사람인 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언젠가 티브이를 통해 책을 정말 많이 읽은 듯한 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알게 된 지식을 나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게 목적인 사람 같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 그는 이제 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표정은 좀 더 깊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에 대한 긍휼의 마음, 혼탁한 세상을 향한 걱정스러운 감정,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는 게 많고 교양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기품 있고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람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흔하다. 학벌 우선주의에 빠진 사회일수록 그런 사람이 득세할 확률은 높다. 한국이 그런 사회가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단서는 없다. 좋은 대학을 배경으로 힘겨운 시험을 통과해 사회가 인정한 전문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내면의 교양과 기품과 성숙함을 지녔는지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고 그를 인정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성공에 집착하고 책을 읽지 않았으며 자신이 과거에 쏟은 열정으로 얻은 지위 이후에 어떠한 노력도 전진도 하지 않은 고집불통 무지한 자의 내면을 지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 알게 되지만 외면한다.


기품 있고 고상한 사람, 참된 교양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획득한 지식이 몸에 녹아들어 내면의 깊이로 침잠해서 세상이 주변의 이웃이 그의 내면의 침전물을 건드렸을 때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홍익의 언어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닐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그래서 내가 속한 이 사회의 뿌리와 시작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자신이 획득한 지위로, 얕고도 넓은 지식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자기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을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말이 조금 급해도 그가 배움이 적어도 세상의 불의에 자신의 언어로 당당히 말하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이타적인 사람, 그들이 참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닐까. 모두가 굳이 외국의 유명한 사람 이름을 알 필요가 없다. 그가 말한 한 문장을 알 필요도 없다. 외국의 비싼 가방이나 옷(원가는 아주 저렴한)을 걸치고 외국어를 중간중간 섞어 느리게 말하면서 주변의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내려다보면서 경멸하듯이 언어를 내뱉는 사람에게서 기품과 고상을 찾을 수 없다. 살면서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가치와 이념이 무엇인지 스스로 체득해서 실천하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고상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 아닐까. 성탄절에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그러나 그도 그 죽음을 피하고 싶었던 하나의 인간이었음에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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