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시작했어요

숫자가 나를 깨운 날

by Helena J

숫자가 사람을 깨울 때가 있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조용히, 화면 위에 떠 있는 숫자 하나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현실을 툭 건드리는 순간.


나에게는 그게 올해 초였다.


1,250만 원


2025년 한 해 동안 마트에서 쓴 돈을 처음으로 제대로 들여다봤다.


$12,412.47


원화로 환산하면 약 1,250만 원.


12개월로 나누면 월평균 $1,034. 한 달에 백만 원이 넘게, 마트에서 나간 셈이다.


식비만이 아니다. 생활용품, 세제, 샴푸, 그 외 자잘한 것들까지 모두 포함된 숫자다.

그래도 많다. 아니, 너무 많다.


월 고정 수입도 없으면서.


카드값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으면서도 다음 달이 되면 또 똑같이 살았다.


무감각하게, 아무렇지 않게.


그게 몇 년이었다.


숫자로 보기 전까지는, 그게 얼마나 많은 건지 실감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모른 척할 수 있었다.


영수증 한 장이 가계부가 되기까지


그래서 올해는 달리 해보기로 했다.


대단한 방법이 아니다.


영수증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구글 제미나이에게 던져줬다.


방법은 이렇다.


영수증에서 날짜와 결제 금액이 적힌 부분만 카메라로 찍는다.


그 사진들을 제미나이 대화창에 올리고, 딱 한마디만 한다.


"날짜별 사용액 정리해 줘."


그러면 끝이다.


엑셀 표도 만들어 주고, 차트도 알아서 뽑아준다.


따로 입력할 것도 없고, 복잡한 앱을 배울 필요도 없다.


나는 유료 버전인 제미나이 프로를 사용하고 있어서 하루에 올릴 수 있는 이미지 수에 제한이 없다.


하지만 무료 버전을 사용한다면 날짜와 금액을 직접 입력창에 타이핑하고 똑같이 요청하면 된다.


결과는 동일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를 구글 시트에 옮겨서 가계부로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가계부 양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것도 제미나이한테 물어보면 된다.


원하는 형태를 설명하면 단계별로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사람한테 이걸 백 번 물어봤으면 사이가 나빠졌을 텐데. AI는 백 번을 물어봐도 백 번 다 친절하다.


그게 참 고맙고, 동시에 조금 쓸쓸하기도 하다.


직불카드 하나가 바꾼 것


올해 1월부터 딱 하나를 바꿨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기로 했다. 직불카드만 쓰기로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신용카드는 지금 내 통장에 없는 돈을 쓰게 만든다.


한 달 뒤에 나오는 청구서는 이미 지나간 소비를 보여줄 뿐이고, 그때는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


직불카드는 다르다. 지금 내 통장에 있는 돈만 쓸 수 있다. 그게 전부다.


결과는 이렇게 나왔다.


1월 지출: $606.36 — 작년 월평균보다 약 40만 원이 줄었다.

2월 지출: $393.38 — 20일이 지난 시점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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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숫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변화다.


카드값에 끌려다니던 삶에서, 내가 먼저 숫자를 보고, 계획을 세우는 삶으로. 그 방향이 바뀐 것이 중요하다.


한 달이 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중간에 한 번 들여다보는 게 훨씬 낫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남은 열흘, 또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


그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작년의 나와 달라진 점이다.


그 누군가는 나다


절약하며 사는 것이 항상 뿌듯하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매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하루에 두 번씩 꼭 찾아오는 밥때.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시간이 또 훌쩍 지나 있다.


누군가 밥상을 차려 주고, 나는 그냥 앉아서 먹기만 했으면 하는 날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그 누군가는, 나다.


건강에서 시작해서 절약으로 흘러온 것들


처음부터 절약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건강 때문이었다.


밀가루를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통밀로 빵을 직접 굽기 시작했고, 오트밀로 간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게 출발이었다.


그랬더니 어느 날, 돈이 굳어 있었다.


통밀가루 한 봉지가 샌드위치 빵 한 봉지보다 훨씬 저렴하다.


이 단순한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고 나니, 또 뭘 집에서 만들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찾게 됐다.


하나둘씩,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것들이 늘어만 갔다.


만두도 그렇게 시작됐다.


캐나다에서 만두는 맛있지만 선뜻 손이 안 가는 가격이다.


한 봉지에 만두가 몇 개나 들었다고. 할인도 아닌데 저 가격이라고.


그러다 구독하던 유튜브 채널에서 그분이 만두를 직접 빚는 걸 봤다.


나도 한번 해볼까.


마침 집에서 키우던 녹두나물이 있었다.


저걸 만두 속에 넣으면 건강식이 되겠다 싶어서 레시피를 찾아봤다.


어머,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왜 진작에 생각을 못 했을까 싶어서 살짝 억울하기까지 했다.


만두피는 마트에서 1달러 조금 넘게 사고, 속 재료를 하나씩 넣어 빚었다. 시간은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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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먹어보고 나서, 솔직히 감동했다.


사 먹는 만두는 늘 기름지다 싶었는데, 내가 만든 건 담백하고 훨씬 맛있었다.


직접 키운 녹두나물이 들어간 만두. 이게 사치라면 사치다.


귀차니즘과 흐뭇함 사이


그렇다고 이게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날이 있다.


멍하니 서서 마트에 가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 통밀가루 있지. 오트밀 있지.


그 순간 찾아오는 감정.


아, 또 내가 만들어야 하는구나.


이 지겨움, 나만 느끼는 건 아니겠지. 그냥 이번엔 사 먹을까 하는 유혹이 쓱 올라온다.


하지만 사 먹을 때 나가는 돈을 떠올리고, 집에서 만든 맛을 비교해 보면, 어느새 손이 먼저 통밀가루를 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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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결정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시작은 언제나 귀찮다.


그렇지만 막상 시작하면,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그 귀차니즘이 어느새 증발한다.


그리고 다 되고 나서, 주방 카운터 위에 채워진 것들을 바라볼 때.


그 흐뭇함은,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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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리


절약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일이 아니더라. 내 몸을 움직이는 일이고, 귀찮음을 이겨내는 일이고, 내가 나를 챙기는 일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주방 카운터 위에 채워진 그 흐뭇함이면 충분하다.


오늘도, 그렇게 살았다.


다음 편에서는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월 고정 수입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구독하고 기다려 주실 거죠?


영상으로 만나는 이야기

https://youtu.be/sW41NFRklac?si=gFGp3FWy2BhsVgx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