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120불로 살아낸 7일간의 기록

by Helena J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녁을 준비하려던 순간, 비상 알람이 울렸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침착하게 옷장 안 백팩을 챙겼다. 지진, 쓰나미, 화재를 대비해 늘 거기에 두었던 가방. 가족의 중요한 서류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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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한 시간 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저녁을 준비하고, 팬트리를 정리하고, 내일 장 볼 목록을 적는 이 평범한 하루가.


작은 팬트리의 의미


나에게는 작은 팬트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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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소금, 고춧가루 같은 기본양념들과 건조식품을 보관하는 곳.


장 보러 가기 전 이곳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있는 걸 또 사 오는 실수를 하니까.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메밀면을 점심용으로 빼두고, 다 쓴 깨소금도 꺼내둔다. 안 꺼내두면 또 새로 살까 봐.


잘 안 쓰는 건 뒤쪽에, 자주 쓰는 건 앞쪽에.


이런 작은 정리가 내게는 통제 가능한 일상이다.


이번엔 고춧가루가 완전히 떨어졌다. 메모지에 꼭 사야 할 것들을 적어뒀다.


냉동실은 텅 비었고, 냉장실엔 김치가 조금 남았다. 내일 배추를 사서 김치를 더 담가야겠다.


120불의 장바구니


장을 보고 왔다.


얼마나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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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춧가루가 어쩜 이렇게 비싼지. 김치 담글 재료까지 사다 보니 120불이 나왔다.


영수증을 보니 한국 고구마가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무게로 계산하는 건 살 때는 잘 모르겠더라.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한국 고구 마니까.


목표를 정하고 가면 약간 오버하긴 한다. 하지만 그런 계획조차 없이 장을 봤다면 훨씬 더 많이 썼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로 감사하다.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영상을 편집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에 대해.


한 주 식비 예산을 정하고 그 안에서 알뜰하게 장을 보는 것. 집안을 깔끔하게 정돈하며 사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은 내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 작은 성취감을 준다.


다음 영상에서 1월 한 달 생활비를 공개하려 한다.


2025년 식비와 비교했을 때 50% 이상 절약했다. 스스로도 놀랐다.


신용카드 사용을 중단한 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엔 그랬다. 많이 쓴 것 같지도 않고, 특별히 사치한 것도 없는데 카드 명세서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금액이 나오곤 했다.


사용 내역을 보면 1위는 마트, 2위는 온라인 쇼핑이었다.


그래서 2026년 1월부터는 직불카드만 사용하기로 했다.


온라인 구매도 중단했다.


눈에 보이는 현금 한도를 정확히 알고, 매주 상한선을 정해두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처럼 소비 통제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현금 안에서 생활비를 쓰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산다는 것


마음 편하게 살아간다는 것.


그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내 일상이 그렇지 못했던 날들이 정말 많았으니까. 아니, 솔직히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 말고,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특히 가족 관계 안에서의 일들,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의 문제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들이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지난 1년 동안은 이 근본적인 문제들을 묻어둔 채,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다.


달라진 마음


하지만 최근 들어 내 마음이 갑자기 급해졌다.


아이들이 이제 곧 스무 살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한 발짝 밀어내기 시작했다.


독립을 준비시키려고.


나와 아이들의 일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달라진 마음이 나를 다시 지치게 만들고 있다.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다시 도움을 받기 위해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입 밖으로 꺼낸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그 생각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바닷가 산책로에서


요즘은 집에만 있다.


산책도 거의 나가지 않는데, 그날따라 늦은 시간이라도 걷고 싶었다.


장 보러 가기 전, 자주 가는 바닷가 산책로를 걸었다.


그런데 눈물이 계속 났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고 끄억끄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한번 상상해 보시라.


나이 든 여자가 늦은 오후 산책로에서 울면서 걷는 모습을.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가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마음을 풀고 싶었다.


작은 위로들


그날,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내 마음을 아는 듯, 구독자가 두 분이나 생겼다.


그리고 읽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댓글들이 달렸다.


살아오면서 느낀 건데, 혼자인 것 같다, 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밝은 빛 한 줄기가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삶이 나를 지치게 만들더라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 같다.


그날은 정말 이상하게도 마트 두 곳을 들렀는데, 두 곳 모두에서 스쳐 지나가는 분들마저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세상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화면 속과 화면 밖


지금 여러분이 보는 영상 속 나와 이 내레이션에서의 내 마음, 참 거리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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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알뜰 장보기, 저렴한 식재료로 만드는 집밥 이야기에 들떠 있는 화면 속 나와, 실제 내 마음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이게 내가 유튜브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메라 앞에서 나는 항상 웃고 있다. 화면 속 내 모습은 편안해 보인다.


삶의 잡음을 제거한 편안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편집을 하고, 완성된 영상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는 것.


그게 나에게 힐링을 준다.


나 스스로에게 말해 주는 것 같다.


봐. 너의 삶은, 너의 일상은 평범해. 괜찮아.


정면돌파


올해는 마음먹었다. 아이들과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그래서 가끔은 이곳에서, 영상 속 모습과는 다른 내 속마음을 털어놔도 될까?


7일간의 기록


월요일 저녁부터 시작해서 화, 수, 목, 금, 토, 일. 이렇게 7일째.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막 200불, 300불 쓰던 때와, 지금 이렇게 딱 100불 한도를 정하고 장을 봤을 때를 비교하면, 특별히 덜 먹는다거나 부족하게 먹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소스 재료가 다양하게 있으면,

같은 식재료라도 훨 씬 더 맛있게,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다.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




120불로 산 식재료로 만든 일주일의 집밥.

그 안에서 찾은 작은 평화.




그리고 여전히 무겁게 남아 있는 답답함.


이 모든 게 내 일상이다.





영상으로 만나는 이야기

https://youtu.be/Q7vYIgQsP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