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개발 방법론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참가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교육 시작 1주일쯤 전에 간단한 사전 설문을 실시하곤 한다. 설문에는 교육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는데, 가끔 ‘교육체계 개발을 배우고 싶다’는 답을 적는 분들이 계신다. ‘교육과정개발’을 가르치는 교육인데 ‘교육체계개발’을 배우고 싶다니…… 몹시 당황스럽다.
오늘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셨다. ‘교육체계개발’을 배우고 싶다고 정확하게 적어주셨고, 나는 교육 담당자에게 그 분과 연락해 보라고 요청했다. 교육과정이 무엇을 다루는지 미리 알려드리지 않으면 교육 첫날, 당황스러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등이 가려운데 허벅지를 긁어드리는 꼴이 되면 안 되니까!
교육과정 개발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설계이고 교육체계 개발은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어떤 흐름으로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큰 그림을 설계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교육체계 개발은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설계하는 작업'이고 교육과정 개발은 하나의 건물을 짓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려운 개념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교육과정개발과 교육체계 개발을 같은 것으로 생각할까?
1. 현장에서는 두 작업이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
교육체계를 설계하다 보면, 결국 개별 교육과정도 개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 일이 그 일’ 같다는 느낌이 든다.
2. ‘교육’이라는 말이 붙으면 다 비슷해 보이기 때문
HRD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한 비전문가나 초급 기획자 입장에서는 ‘교육과정’, ‘교육체계’, ‘교육 프로그램’, ‘교육 시스템’ 같은 단어들이 비슷하게 들리고,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3. 용어가 혼용되기 때문
‘교육체계’를 영어로 ‘Curriculum’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Curriculum’이라는 단어는 “학습자가 따라가야 할 학습 여정” 혹은 “전체 학습 경로”를 뜻하기 때문에 교육과정개발과 교육체계개발 모두에 사용될 수 있다. 결국 맥락 없이 단어만 보고는 어느 수준의 일을 말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4. 교육과정개발 경험만으로 교육체계를 구축하는 경우
HRD 실무자가 교육과정개발 경험은 많지만, 체계 구축 경험은 부족한 경우 기존의 익숙한 방식으로 전체 체계를 개별 커리큘럼의 집합처럼 해석하게 되고, 그 결과 교육체계와 교육과정의 차이를 모호하게 인식하게 된다.
HRD 실무에서 쓰이는 용어를 억지로 표준화하자고 주장하고 싶은 게 아니다. 현장은 살아 있고, 조직마다 문화가 다르며, 용어는 그에 맞춰 유연하게 진화하기 마련이다. “이건 꼭 이 말로 써야 한다”는 식의 규정은 오히려 소통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 즉 교육을 기획하고, 체계를 설계하며, 실행까지 이끄는 사람이라면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 개발과 교육체계 개발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해야, 내가 지금 어떤 범위의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론과 접근법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HRD 전문가라면 ‘말에 대한 감각’도 전문성의 일부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명확한 개념 위에서 유연한 소통이 가능하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교육체계 개발’을 배우고 싶다는 기대를 품고 ‘교육과정 개발’ 교육에 참가 신청하신 분을 떠올리며, 강의 교안을 덕지덕지 수정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