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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Nov 08. 2017

자본주의의 민낯

여행 항공편

자본주의 민낯을 보고 싶다면 공항에 가면 된다. 항공기는 설국열차의 축소판이다. 각 등급별 좌석은 대략 2~3배 차이 난다. 합리적이라면 딱 그만큼의 대우가 맞다. 정말 그럴까?


공항마다 다르다


사실 넓은 좌석, 좀 나은 기내식, 넉넉한 전담 승무원만이 이 가격 차이의 전부라면 꽤 비싸다. 그중 가장 값어치를 하는 넓은 좌석은 5시간 이내 비행엔 필요 없다. 나머지? 난 관심 없다. 그러니 짧은 낯 비행이면 좌석 업그레이드? 할 이유가 없다. 주체할 수 없을 돈이 있어도 필요 없는 건 안 하는 거다. 돈이란 불필요한 걸 잔뜩 누리는 수단이 아니고 불편함을 없애는 도구다. 나에겐 그렇다는 거다.


더구나 인천공항이라면 별 특별할 거 없다. 체크인과 탑승할 때 별도 라인? 라운지 이용? 없다고 불편하지 않다. 행여 필요하면 대체 수단도 널렸다. 그걸 받고 있음 우쭐한 느낌? 철부지인가. 그럴 나이는 지났다. 이리 보면 한국은 아직 돈에 적나라한 차별을 감추편이다. 적어도 공항에서는. 그럼 어디?


타이항공으로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가면 이거 제대로 볼 수 있다. 일명 ‘패스트트랙’. 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다. 별도 라인? 그거 가지고 되겠나. 아예 카운터가 다른 곳에 있다. 소파에 앉아 체크인하고 별도의 보안검사대와 출국 심사를 통과한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라운지와 게이트가 나온다. 행여  걷다 지칠까 최단 경로로 준비했다. 물론 입국심사도 별도 라인이다. 줄 서기? 터미널을 가로지르며 찾아가는 게이트? 그게 뭐더라. 그땐 '돈'에 철저하게 반응하는 최고의 공항을 본 줄 알았다. 더한 곳이 있을 줄 몰랐다.


한국에서 나짱은 직항과 호찌민/하노이 경유 편이 있다. 경유편의 단점은 환승하는 수고로움이겠고 장점은 낯 비행이겠다. 경유? 시간이 아깝다? 글쎄다. 밤 비행에도 말짱할 나이를 넘기면 좀 다르다. 그러니 돌아가도 적당하다면 낯에 간다. 마침 2시간 경유라 적당했다. 아낀 비용으로 돌아올 때 좌석 업그레이드한다. 비즈니스? 말했잖나. 돈은 불편함을 없애는데 쓴다고. 어차피 모든 한국행은 자정 출발, 새벽 도착이다. 그래도 직항보다 싸니 마다할 리 없지. 이때까지 내가 꽤 기특했다. 호찌민 공항을 몰랐으니 이런 ‘미친’ 경유를 선택한 거다.


이즘에서 경유 시간... 이거 한 번 생각해본다. 시간 계산할 때 자주 실수하거든. 일단 탑승 시작시간 30분은 빼야 된다. 그러니 2시간 경유라면 1시간 반이 남는다. 그 시간 안에 입국심사와 게이트 이동을 마쳐야 된다. 줄이 길면? 게이트가 멀면? 빈둥거릴 시간 없다. 라운지? 그림의 떡이다. 더구나 목적지까지 짐이 연계되지 않으면? 짐 찾고 다시 체크인해야 되는 시간까지 추가된다. 이번에 가는 나짱이 딱 그렇다. 내 생에 최악의 환승이 아닐까 싶다.


깨알같이 돈이 반영된 곳


짐을 끌고 늦가을 옷으로 건물 밖을 뛴다. 현재 온도는 33도다. 연착도 모자라 늦게 나온 짐에 딱 한 시간 남은 거다. 환승하는 국내선이 연착되지 않았더라면? 난감함에 공항에 주저앉았을 거다. 운 나쁘면 하루를 날리고 아주 비싼 국내선 티켓을 샀겠지. 그럼 돌아올 때도 비슷했냐고? 그게 참 씁쓸하다.


정말 이러면 안 된다 싶다. 게이트에서 항공기까지 별도의 차량이 운행된다. 버스 아니다. 경유지에선 승무원이 마중 나온다. 짐 찾는 곳과 환승 경로를 세세히 안내한다. 행여 누락될까 미리 환승 편 체크인까지 해준다. 갈 때 기억에 쓴웃음이 났다. 짐도 당연히 빨리 나온다. 짐 나오는 시간이 이리 중요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대기줄도 없다. 다시 짐 붙이고 출국심사 심지어 보안심사까지 일사천리다. 어떻게? 외교관/장애인/승무원 라인에 ‘당당히’ 비즈니스와 퍼스트도 쓰여있다. 이런 공항은 또 처음이다. 방콕은 타이항공만 편의를 준다. 여기는? 모든 비즈니스석 이상이다. 옆에 끝도 없는 줄이 보인다. 낯 비행이었다면, 아니 체력만 거뜬해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다면 바로 내가 섰을 줄이다.


어쩌면 이리 깨알같이 돈을 반영해놨을까. 저렇다면 좌석 업그레이드 가격은 저렴한 거다. 끝없는 대기줄에 임박한 탑승 시간, 놓쳤을 때 망연자실함과 그 후에 번거로움으로 바싹바싹 타들어간다면 말이다. 돌아올 때도 이코노미석이었다면? 인천행 비행기는 못 탔다고 본다. 이거 백퍼 확신한다. 운이 좋으면 내 이름을 부르는 승무원을 따라 대기줄에서 나왔을지도. 정말 아주 아주 운이 좋다면 말이다. 대기 시간 1도 없는 특혜에도 게이트에 도착한 건 탑승 5분 전이었다.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우쭐하냐고? 그래야 정상일까? 난 불편했다. 항공사는 사기업이다. 하지만 공항은 일정 부분 공적 공간이다. 그곳에서 지나친 특혜를 준다는 건... 반칙이다. 그것도 기준이 돈이라면 참 조악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짱에서 최고의 순간은 공항 밖 흡연 벤치였다.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하나 남은 담배를 내게 권했다. 그리고 빈 담배 값을 정성스럽게 재떨이로 만들어 둘 사이에 놓으셨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베트남’이라고 소개했고 우린 조용히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무엇보다 따뜻했다. 그 사람 마음이 느껴졌다랄까.


왜 그러셨는지 짐작된다. 해 질 녘에 떠나는 울적함과 허리 통증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 묻어났을 거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웠던 거 아닐까. 모르는 이라도 맘이 쓰인 거 아닐까. 아마도 내 짐작이 맞을 거다. 표정과 몸짓으로 사람을 읽으면 정확하거든. 사람의 비언어적인 부분은 거짓말에 서툴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니 꽤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 자리를 떠나며 반가웠다고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건넸다. 정말 정말 고맙고 따뜻했으니까.


세상이 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그걸 기준으로 혜택이 도를 넘고 차별이 일상이 된다면 삶은 더 팍팍해질 거다. 팍팍한 삶에서 대가 없는 선의와 진심 어린 행동이 나올 리 없다. 나 살기도 힘든데 옆 사람이 보이겠나. 그런 세상이라면 저 할아버지 같은 분을 오가다 만날 수 있을까? 낯선 이에게 사심 없이 따뜻한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건넬 수 있을까? 불가능할 거다.


모두에게 똑같이 공평한 세상? 그런 건 없다. 하지만 늘 적당해야 된다. 더구나 모든 혜택의 기준이 단지 ‘돈’이라면 너무 후진 세상 아닌가. 난 내가 좀 더 불편하고 덜 누려도 지금, 이 곳이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면 좋겠다. 그게 잠시 머물다가는 허무한 생들의 유일한 의미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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